한국희곡

김근 '모퉁이, 당신'

clint 2017. 6. 21. 10:20

 

 

 

 

김근의 '모퉁이, 당신'은 키스를 갈구하는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모노드라마다.

소년은 우연히 마주친 성인 남자에게 성애와 완벽히 분리된, 생의 미지의 영역을 경험하는 행위로서 키스를 요구한다. 한쪽은 어둠이고 다른 한쪽에는 가로등이 어슴푸레 비추고 있는 어느 모퉁이를 무대로 삼아, 밝은 쪽 모퉁이 벽에 기대 있는 벤치 위에 놓인 가방의 독백이었음이 보여 진다. 아무도 없는 빛과 어둠, 그러나 완전한 빛이 아닌 어두운 밝음 속에서 키스를 통해 소통하려는 시도는 번번이 좌절되고 만다. 읽는 이 또는 관객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모퉁이는 달라지지 않고 또 다른 가방의 독백이 시작될 뿐이다.

 

 

 

 

 

그런 건 상관없다니까요. 당신이 나를 소녀라고 부르든 청소녀, 이 말은 좀 이상하네요, 아무튼, 그 무엇으로 부르든. 그러고 보니 여긴 골목의 모퉁이군요. 이쪽은 밝고 저쪽은 무척 어둡네요. 내가 이쪽으로 가면 당신 눈엔 보이지 않겠죠? 봐요. 안 보이죠? , 이렇게 나오면 다시 보여요. 난 모퉁이 이쪽에 있을 수도 있고 저쪽에 있을 수도 있어요. 당신에겐 내가 보일 수도 있고, 안 보일 수도 있죠. 안 보인다고 내가 없는 건 아니에요. 중요한 건 내가 있다는 당신의 믿음이죠. 당신은 이 모퉁이의 밝은 쪽도 어두운 쪽도 선택할 수 있어요. 당신이 어느 쪽을 선택한다고 해도 모퉁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죠. 달라지는 건 당신의 선택이에요. 내가 아저씨, 아줌마, 처녀, 총각이든, 당신이 소년, 소녀, 노인, 노파여도 상관없어요. 당신이 뭐든 내가 뭐든 지금 필요한 건 당신과 나의 키스뿐이에요. 당신 혹 내 정체성에 대해서 의심하는 거예요? 내 정체성에 대해서든 당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든 그런 건 고민할 필요는 없어요. 말했잖아요.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모퉁이는 달라지지 않아요.”

 

 

 

 

김근  작가

1973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했고 시집 뱀소년의 외출,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당신이 어두운 세수를 할 때가 있다. 2014년 현재 불편동인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