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대학 국문학과 91학번 동기였던 세 친구 - 재하, 현식, 광석은 오랜 만에 모교 앞에서 만난다. 오늘은 바로 같은 학과 여자 동기였던 유정이 모교 앞에<오늘의 책>이라는 헌책방을 여는 날이다. 본래<오늘의 책>은 유정을 비롯한 세 친구가 대학시절 날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붙어살다시피 했던 학교 앞 유일한 인문사회과학 서점이었다. 그들이 졸업할 무렵,<오늘의 책>은 인문사회과학의 쇠락과 서점의 재정난, 그리고 시대적인 분위기로 인해 문을 닫고 말았다. 세 친구는 졸업 후 오랫동안 유정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다만 그들의 같은 학과 선배이자, 유정의 연인이었던 지원이 뒤늦게 노동운동에 투신했다가 의문사 했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을 뿐. 오늘 유정이 문을 연 헌책방<오늘의 책>은 마치 옛 시절<오늘의 책>을 복원해놓은 듯 이미 철 지난 그 시절의 헌 책들로 가득하다. 지난 시절의 향수에 젖은 세 친구는 유정과의 해후를 기대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철지난 이야기들로 가득한<오늘의 책>안에서 각자 대학시절에 대한 추억과 회한으로 불편함을 느낀다. 교수와의 불화로 박사과정을 포기한 채 냉소적으로 변한 현식, 허무적인 대학 생활을 마치고 독립영화감독으로 변신한 재하, 이혼을 앞두고 여전히 옛사랑을 잊지 못하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 광석은 오래 전부터 자리 잡았던 유정에 대한 개인적 애정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또한 이러한 애정의 이면에는 죽은 선배 지원에 대한 죄의식과 질투가 자신들도 모르게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지원에 대한 비난과 그들 스스로의 무력감으로 이어져 간다. 그런 어색한 해후의 자리에 드디어 나타난 유정은 세 친구에게 지원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털어놓는데...
무대에는 지나간 시대의 책들이 빼곡이 꽂혀있는 서점이 차려있고 이제 막 문을 열 이곳에서 91(92?) 학번인 네 친구들이 해후한다. 서점의 주인으로 이들 해후의 구심점이라 할 유일한 여자동기 유정은 연극의 막바지에 등장한다.
오랜만의 해후라는 상황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드라마의 대부분은 과거에서 현재에 징검다리처럼 놓여있는 사건의 조각들을 다시 재구성하면서 찌거기처럼 남겨있는 오해를 풀어내는 것이다. 잘 조절된 드라마투르기를 통해 조금씩 밝혀지는 이들의 '과거'에는 운동과 연애가 있다. 그러나 이들의 만남에 감도는 어색함과 불편함은 얽혀있던 연애감정이나 추락하고 있던 학생운동의 절망을 다시 대면해야 된다는 것에 있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그닥 절실해 보이지 않는 이들의 만남이 어색함과 불편함의 근원은 아닐까. 불타는 청춘의 시절은 이제 명백한 '과거'라고 여기는 서른즈음에, 되불러들일 아무런 동기 없이 지난 시절을 대면해야 할 때 시선이 엇나가고 대화는 맴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건 젊은 날의 열정이건 이들에게 그 모든 것들은 과거일 뿐이다. 그리움이 곧 절실함은 아닌 것이다. 선배의 죽음 역시 이미 지나버린 과거에 속하는 사건일 뿐이다. 그래서 이들의 예기치 않은 만남은 충동없는 '고백'으로 이어지고 오해를 해결하지만, 그 오해가 현재의 삶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점에서, 연극은 풀어야 할 갈등없는 화해에서 막을 내린다.
이 연극의 매력과 불안은 '고백'에서 비롯된다. 어쨌든 '고백'이라는 형식은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지만 대체 왜 나는 과거와 마주서 있는가가 분명치 않다. 선배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그의 죽음이 이들의 삶에 어떤 선택을 놓아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재의 삶에 의미있는 사건이지 않다. 그것은 선배의 부인이었던 '유정'에게마저도 그렇다.
1990년대 학번들의 대학 시절을 둘러싼 자전적 이야기다.
사회과학 서점 ‘오늘의 책’에서 만난 주인공들이 ‘민족해방(National Liberation)’과 ‘민중민주(People Democracy)’, ‘국제사회주의(International Socialism)’ 진영으로 나눠 싸웠던 시절을 회고하며 1990년대 학생운동권 후일담을 들려준다.
실제로 서울 신촌에 있었던 사회과학 서점인 ‘오늘의 책’을 배경으로 극이 펼쳐진다. 교수와 불화 때문에 박사과정을 포기한 뒤 냉소적인 소설가로 변모한 현식, 독립영화 감독 재하, 일간지 문화부 기자 광석, 그리고 이들 모두가 사랑했던 유정은 91학번 동기사이다. 대학 선배 지원과 결혼했던 유정은 지원이 죽은 뒤 사회과학 서점을 열기로 하고 개업 전에 동기들을 부른다. 현식과 재하, 광석이 차례로 서점에 모여 들고, 대학시절 읽었던 책을 뒤적이며 과거를 회상한다.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 《철학의 기초 이론》, 《역사적 유물론》, 《정치경제학원론》 등 당대 필독서들이 대거 등장하고, 기형도와 김소진, 브레히트, 김귀정, 강경대 등 지금은 아득하게 잊힌 이름들이 주인공들 대화에서 다시 화제가 된다. “80년대 선배들 눈에 우리는 학생운동 흉내 내는 어설픈 후배”였다는 자괴감과“ 이제 고작 서른 넘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옛날 책들에 파묻혀서, 옛날 생각이나 하고 살겠다는 거냐”는 냉소가 겹치면서 ‘386 이후 세대’의 윤곽이 드러난다. 이들은 선배들에게는 어설프게 학생운동 흉내 내는 것처럼, 후배들에겐 낡은 정신에 매달려 폭력이나 일삼는 것처럼 비쳐진 중간세대였다. 연극은 이들 세대가 겪어야했던 갈등과 그로 인한 상처를 섬세하게 조명했다.
2006년 김재엽이 연출을 맡아 극단 드림플레이가 혜화동일번지에서 초연했다. 당시 4700여 권의 인문사회과학서적으로 빼곡한 헌책방 ‘오늘의 책’을 무대에 재현해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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