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홍원기 '굴비는 맛이 좋다'

clint 2016. 3. 7. 13:50

 

 

 

 

 

아침. 33평 아파트에 사는 ‘미스터 옹’의 아침식탁은 평온하다. 이제 아파트 융자금도 끝났고 직장을 그만두고 완벽한 전업주부로서 내조를 하게 된 정숙한 아내와 속 안 썩이고 공부에 열중하는 중학생 딸이 있을 뿐이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전형적인 중산층으로서의 안락한 삶을 누리게 된 것이다. 다만 신경이 쓰이는 일이 있다면, 아침마다 걸려오는 귀찮은 전화. 따로 사시는 어머니는 빨리 아들 하나를 더 낳으라고 성화이시고, 출가한 여동생은 先山을 짤라 팔아서 남편 사업자금으로 융통을 해달란다. 거기다가 이제는 할 일이 없어진 탓일까, 아내가 둘째를 낳겠다고 떼를 쓰면서 잠자리에서의 남편의 무능력을 탓한다. 이 같은 아우성을 한 마디로 묵살하고 출근을 준비하던 옹은, 자가용 키를 찾지 못하고 아내를 윽박지르며 아파트를 샅샅이 뒤진다. 한편 옹의 아파트 위층에 있는 남자는 교통사고로 이미 죽은 魂인데, 병원 영안실에서 자기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가족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삶의 미련 못 버리겠다는 듯, 생전에 반복했던 집에서의 일상을 더듬어보고 있다...... 가 한 전화지! 옹은 출근을 잠시 미루고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으며 회상에 젖는다. 어제일까? 아니면 며칠 전일까? 핸드폰으로 연락을 한 첫사랑 그녀. 그녀는 며칠 전에 채팅을 통해 만났던 여자가 바로 자기임을 밝히면서, 옹의 절친한 친구 ‘규범’의 죽음을 알린다. 그날 늦은 밤. 딱 한 잔 더 하자는 후배를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온 옹. 안방에서 아내와 뒹구는 사내를 발견하고 부엌칼을 집어 들고 이를 갈다가,딸한테 정신적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선 사건을 조용히 해결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옹을 똑 닮은 그 사내는 자기가 이 집의 진짜 주인이라 우기며, 옹에게 술에 취해 홋수를 잘못 알고 들어온 모양이니 어서 나가라 오히려 큰 소리다. 동조하던 아내가 둘의 생김새가 너무 닮은 것을 발견하고 경비실로 연락한다......

 

 

 

 

작가의 글
주인공 “미스터 옹”의 元祖는 고소설 “옹고집전”에 나오는 “옹생원”이다. 옹고집전의 옹생원은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자기와 똑 닮은 ‘가짜옹생원’을 내세운 스님의 道力(당시 도덕률의 잣대)에 의해 징벌을 당하고 회개하고 용서받는다. 現在人 “미스터 옹”은 33평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해 불철주야로 일하던 386세대 家長이다. 현재인 ‘ 미스터 옹’도 ‘가짜 옹’ 때문에 집에서 쫓겨난다. 옹은 회개하지도 용서받지도 않는다. 옹은 다시 집으로 돌아 와 ‘가짜 옹’을 죽인다. 순간, 옹은 자기가 죽인 ‘가짜 옹’이 목을 매고 죽은 자기 자신임을 깨닫는다. 아서 밀러는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미국 자본주의 문명 속에서 꿈을 잃고 허덕이는 소시민의 비극을 말하였고, 쎔 쉐퍼드는 “매장된 아이”에서 가정의 붕괴를 통해 기독교에 바탕을 둔 미국문명의 정체성 붕괴를 말하였다. 나는 ‘미스터 옹’의 부조리한 죽음을 통해, 궁극적 삶의 진실,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방황하는 現在人의 실존적 위기를 ‘웃기는 비극’으로 발견하려 한다. 중산층을 자부하며 아파트와 인터넷문명 속에 안주하면서도, 잃어버린 지난날의 꿈과 사랑을 갈구하는 現在人 “미스터 옹”의 자기 성찰을 통해 더듬어 보는, 극단적 이기심과 자폐성향으로 붕괴돼 가고 있는 21세기 초 한국문명과 한국인의 자화상을 그려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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