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은 동네슈퍼를 경영하고 있는 중년의 여자다. 밤이면 신호등이 꺼지고 들어오는 노란 보호등을 따라 눈을 깜박이며 시간을 맞추는 것이 취미다. 그래서 낮에 존다. 오후면 어김없이 누군가 2100원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고 사라진다. 디스플러스를 사가는 남자일거라는 확신을 갖고 수현은 오후를 지킨다. 그와 대면한 수현은 그 남자의 하얗고 가는 손에 반한다. 수현은 그를 위해 이것저것 챙겨주기 시작하고 급기야 동네슈퍼에는 갖가지 반찬재료들인 부식까지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남자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안 수현은 여자를 스토킹하기 시작하고 그 여자가 운영하는 한국무용학원까지 등록해 무용을 배우기 시작한다. 미정은 그런 수현 역을 맡은 배우다. 미정은 수현을 연기하면서 연극을 시작하게 됀 이야기, 사랑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한다.
극장에 들어서면 무대 중앙의 화면에 분장실에서 준비 중인 배우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공연이 연극이지만 배우가 직접 공연을 만들어 간다는 느낌을 주는 이중적 장치이다. 중간의 무대감독 역할도 이런 구조를 반영한다. 역시 공연 내내 본인의 이야기처럼 극을 이끌어가는 배우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영상과 실제 공연으로 같이 보여준다.
‘수현’이라는 인물은 노란 보호등을 따라 눈을 깜박이는 습관이 있다. 그녀는 이 장면의 설득력에 대한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삶도 누군가가 보호등처럼 깜박거려주는 지침 속에서 수동적으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내 삶에도 노란 보호등이 있었다. 어느 날 보호등이 없어지기도 하고 내가 이제 보호등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때가 왔을 때, 나 혼자서 나와의 사투를 벌여야 한다. ‘수현’은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면 해가 뜬다고 말한다. 여명에서 시작해서 조금씩 밝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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