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선욱현 '황야의 물고기'

clint 2015. 11. 18. 23:11

 

 

 

... 물고기는 자신이 깊은 강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어느날 물고기는 물 밖으로 고개를 들어보았다. 그곳은 깊은 강이 아닌 사막의 얕은 물 속이었다. 이제 죽었구나 생각하자 물이 말라버렸다. 눈을 감고 있는데 죽지 않았다. 눈을 떠보니 어느 버스정류장에 서있었다. 매연이 뿜어져나오는 버스정류장에서 물고기는 목이 말랐다....

 

 

 

서부시대 - 술집 주인과 사기꾼과 창녀와 술주정뱅이가 등장하는 이 곳에는 늘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사기를 치고 누군가는 총을 쏴대고 누군가는 인질극을 벌인다. 서부시대, 악당이 있는 곳에는 보안관이 등장하기 마련. 이름이 존 웨인의 그 존이래요...@.@ 갑자기 가게 주인인 듯한 여자의 등장으로 상황극이 깨진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였던 서부시대의 장면들은 그들이 꿈꾸던 허상의 세계였음이 밝혀진다. 아울러 그들이 지닌 아픔도 드러난다. 상처받고 소외된 자들의 파라다이스 '서부시대'는 현실의 세계를 떠나 서부시대의 인물이 되어 각기 다른 삶과 이름으로 자신의 역에 흠뻑 빠져 사는 허상의 공간이다. 모든 맴버들은 저마다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비열한 사기꾼 '해리'는 마음 약한 전당포 주인이며, 착한 술집 주인 '폴리'는 전직 깡패로 사람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전설적인 악당 '빅터'는 전형적인 오타쿠이다.
심지어 마을 사람들의 영웅이자 모든 사건의 해결자인 '존'은 사실 관리비 5만원을 내지 못하고 쫀쫀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자신의 일조자 채결하지 못해 도망치는 비겁자이다

 

 

 

 

 

극이 시작되면 장소는 한국 대학로에서 저 멀리 아메리카 땅 서부 그 옛날 '서부시대'란 카페로 순간적으로 옮겨지는데..
카우보이모자에 권총 찬 인간 둘 포커 치다, 사기 쳤다, 쌈박질하더니 바로 총쌈으로 난장판이 된다. 잠시 후, 해결사 보안관 존(유명한 존웨인을 암시..) 말 타고 뚜걱뚜걱 도착. 출입문 밖은 먼지바람 자욱히 몰아치더니 풍기는 화약 냄새..마을의 수호신, 선악의 심판자, 주민의 우상, 존이 장엄하고 중후하게 들어선다. 돈 따먹기 놀음판 대결을 간단히 우습게 수습 평정하는 멋져 보이는 존.. 터지려는 웃음을 꾹 눌러 참고 이들 놀이를 지켜본다. 이들은 툭하면 쌈질이고, 뻑하면 총질인데, 아무데나 막 쏘는 헤픈 총질에 맞아 죽어도 금방 살아난다. 빵빵.. 총소리에 화약 냄새 풍기는 착각이 일고.. 설정하여 던져진 상황 속에 이들의 진지함과 심각함은 배꼽 잡게 만든다. 개성 강한 배우들 캐릭터와 다채로운 연기패턴이 일품!

 

 

 

어디서 긁어모았는지 꽤 싱굥 쓴 소품도구들 - -권총, 장화, 장총, 소대가리뿔, 맥주통, 마차바퀴, 가죽조끼바지 등등..
근데, 해리의 바지가 왜, 21세기 한국의 개량한복인지? 카페라기보단 서부시대는 전형적인 saloon(살롱) 분위기다.
야만 + 야성 + 수컷 + 본능 + 창궐 = 성공이다. 복고풍 아메리칸 드림이란 환타지는 줄기차게 이어지는데,
난데없이 나타나는 한국 추리닝차림의 '아줌마' 서부활극 판에 나타난 그 멋지고 늠름한 존도 꼼짝 못하는 공포의 한국아줌마 정체는? 서부시대가 들어찬 그 건물 주인이고 월세 관리비 바가지를 긁는다. 터지기 직전, 꽉 움켜잡고 있던 내 웃음보는 여기서 팍 터져버린다. 아메리칸 복고풍의 '2중극 = 황야의 물고기'는 이런 톤과 간지로 쭉 흘러간다. 극의 현실적 내용과 그들이 지어낸 얘기가 버무려져 가는 것~ 그 멋진 황야의 무법자가 어찌하여 황야의 물고기로 둔갑 분장~

 

무대의 무리들은 '서부카우보이 인터넷동호회'였던 거다. 앞 절 살짝 보여진 힌트 - 해리의 개량한복. 감쪽같이 속았지롱~ 이것이 이들 정체와 이 연극의 속내로 한번 과도하게 웃겨보는 것. '연극은 거짓으로 남을 속이는 속성'이란 유치한 정의에 충실해본다. 노트북 컴이 카운터로 올라오고 회원가입 전화를 받는 담당배우. 그 배우 혀 짧은 소리만 나오면 웃음보는 계속 터진다. 그 동호회원들은 극의 각본을 공동으로 쓰는 듯하다. 개개 회원들은 카페주변 동네사람도 있으나 인터넷 덕택에 멀리서도 온다. 저마다 생활 속 사정이 있는데 떨치려는 일탈의 선택이다. 하여간, 이들은 세상이 어찌 가도 놀자는 거꾸로 인생들.. '연극은 놀이'라는 장난기에 무척이나 충실하다. 도식화 된 틀 안에서 살기를 거부하며 웨스턴 복고풍을 추구하는 취미생활꾼들.. 이것만으로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지 강력하고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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