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무용극 '아으, 다롱디리'

clint 2026. 6. 19. 17:36

 

 

순녀는 착하고 아름다운 그러나 가난한 아낙이다. 그녀는 밭을 갈고 베를 짜는 일로 
남편과 시어머니와 딸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살아간다. 순녀의 아름다운 용모 못지않게 
그녀의 베 짜는 솜씨 또한 일품이다. 그래서 가을 겨울 기나긴 밤을 베들 앞에서 지낸다. 
그렇게 해서 싸낸 베를 남편은 등에 걸고 행상을 나간다. 한 번 나가면 강줄기를 따라 
멀리 섬진강, 영산강 일대를 돌아야 하고 그래서 순녀는 남편을 기다리며 살아온 지가 
십 년이 족히 넘는다. 평범한 아낙의 평범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순녀는 그 기다림 속에서 
삭혔고 또 익혀왔다.
오늘도 남편을 위시하여 몇몇 남정네들은 등짐을 지고 행상길을 떠나는 날이다. 
아낙들은 신당 앞에 모여 남편들이 하루라도 빨리 물건을 다 팔아 많은 이득을 얻어 
돌아오기를 축원한다. 무당이 앞장서서 굿판이 벌어진다.
순녀 역시 남편과의 이별 아닌 이별에서 눈물을 깨물고 오히려 미소와 격려와 그리고 
무사히 귀향할 그날의 꿈에 부풀어 있다.
남편이 떠나가면 순녀에게는 다시 그 칙칙한 삶의 시달림이 기다리게 된다. 시어머니와 
딸을 남편 대신 부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달이라도 밝은 날이면 남편을 그리다 못해 그 
고독과 허전한 눈물도 많이 흘렀다. 그런데 한 마을에 사는 막동은 그러한 순녀를 오래전
부터 못 잊어한다. 막동은 남편의 어릴 적부터 친구였건만 친구의 아내인 순녀를 기회 
있을 때마다 접근해온다. 그것은 사악한 색정이 아닌 어쩌면 처절할 만큼의 강한 연모다. 
순녀는 남편보다 모든 환경이 좋은 막동을 부러워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넘어나
볼 수도 없는 엄청난 수렁임을 알고 있기에 순녀는 스스로 매질하듯 살아간다. 
달 밝은 밤이다. 모든 남정네는 돌아와서 잔치가 벌어진다. 그러나 순녀의 남편은 
돌아오지 않는다. 풍문에는 죽었을 거라 하고, 다른 여자를 만나 도망쳤을 거라 한다. 
순녀는 절망과 좌절, 그리고 배신과 증오에서 발광 직전까지 다다른다. 그때 막동이는 
자기가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자청한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바는 아니다. 
그러나 순녀는 허물어질 것만 같은 마음을 졸라매며 남편을 찾아 나선다. 
남편은 일엽이라는 기녀에게 혹하여 날마다 술과 놀이패들 틈에서 젊음을 보낸다. 
그러나 수중에 돈이 떨어지자 일엽은 가차 없이 남편을 버리게 된다. 순녀는 그러한 
남편을 너그럽게 받아주면서 새로운 삶을 위해 살아간다. 
베틀 소리가 달빛 속에서 맑게 퍼져나간다.

 

무용극 '아으, 다롱디리'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백제 가요인 '정읍사(井邑詞)'를 
모티브로 하여 차범석 극본에 안무가 송수남이 제작한 한국 창작 무용극이다.
행상 나간 남편의 무사귀환을 기다리며 밤길의 위험을 걱정하는 '정읍사'의 애틋한 
내용과 후렴구인 '아으 다롱디리'를 제목으로 삼았다. 기존의 수동적이고 희생적인 
여인상에서 벗어나, 남편을 기다리면서도 모든 상황을 의지로 인내하고 안으로 삭이는 
'적극적이고 의지적인 여성상'을 표현하였다.
백제인의 외형적인 아름다움이나 퇴영적인 한(恨)의 세계에서 벗어나 삶과 사랑을 
위하여 끈질기게 자신을 지켜나가는 한 여인의 행로를 통하여 힘이나 저주나 증오는 
일시적으로 우리의 감정의 발산은 될지 라노 궁극적으로는 사랑 앞에서는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는데 주제를 나타낸다

 



차범석 작가의 글
이 작품은 고가사에 신해지고 있는 우리 가사문학으로서 대표적인 <정읍사>를 
소재로 한 한국무용극이다. 
ᄃᆞᆯ하 노피곰 도ᄃᆞ샤/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어긔야 어강됴리/아으 다롱디리
全져재 녀러신고요/어긔야 즌ᄃᆡ를 드ᄃᆡ욜셰라/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ᄃᆡ 점그ᄅᆞᆯ셰라/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이 
가시에서 엿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널리 남편을 객지로 내보낸 아내가 달 밝은 밤 남편을 기다리는 애절함을 노래한 이 <정읍사>는 그 시정성이나 인간성의 발로로 보아 비단 백제시대의 여인상만이 가지는 기상이라기보다는 한국의 여인상을 대변하는 가사문학의 주옥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나는 이 <정읍사>에 담겨진 시정신(詩精神)을 통하여 한국인이 지닌 아름다움과 강인함, 그 인내심과 희생정신, 그리고 나아가서 포용과 진취적 기상까지 포괄식으로 춤으로써 표현하기 위하여 이 작품을 쓰기로 하였다. 지금까지 대체적으로 무용극 속에 그려진 한국인상이란 한(恨)의 화신이자 피해 입는 가련성만을 강조했던 타성에서 벗어나 보다 강인하고 진취적인 면을 강조하고 싶다는 데도 그 의의를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가장 한국적이며 순수한 한국 춤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기 위하여 서민생활과 밀착된 춤이기를 바라는 마음도 절실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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