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화의 학창시절, 분단 현실과 정치적 억압상황의 본질을 깨닫고 사회운동에 참여한다.
연극반 생활을 통해 생각을 키워나가지만 기구한 삶이 예감된다.
대학졸업 후 어떤 신흥무역회사의 신입사원인 그가 유럽 지사 발령을 받는다.
빠리에 처음 도착하여 빠리지사에 첫 출근한 홍세화가 지사장과 씰비를 만난다.
반년쯤 지나 빠리 생활에 꽤 익숙해질 무렵, 한국으로부터 급한 전화가 걸려온다.
지사장으로부터 귀국을 종용당한다. 그 무렵 한국의 수출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리고
대봉이 문을 닫는다. 회사 재산을 빼돌리려는 지사장의 회유와 협박,
그리고 이를 거부하는 홍세화. 한쪽에서는 간첩이라며 경계하고 또 한쪽에서는
안기부 프락치로 몰리게 되는 상황이 전개된다.
결국 망명을 택한 그에게 돌아갈수 없는 나라 꼬레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빠리 관광안내를 하면서 생활을 해 나가던 그가 우연히 중학 동창과 마주친다.
빠리의 택시 면허시험을 거쳐 빠리 택시시 기사로 일한다.
어느 인권단체에서 일하게 된 씰비와 다시 만나게 된 홍세화.
한국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세화와 씰비. 그리고 씰비로부터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충고를 듣고 고뇌하는 홍세화.
증오의 이데올로기, 실존의 분열, 망명자로서의 지독한 외로움 등을 달래며 개선문을
향해 달리는 주인공. 실존적 저항에서 관용의 똘레랑스로 넓어진 세화의 인식.
빠리에 아직 남은 홍세화는 우리에게 한 통의 편지와 한 장의 가족사진을 보내온다.
빛 바랜 그 사진 한 장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 작품은 70년대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15년이란 세월을 빠리에 망명하여
살게된 홍세화씨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서울의 명문 대학교에 입학하여 장래가 촉망되던 한 젊은이가 자신의 파란많은
가족사를 알게 되면서 방황하다가, 그로부터 우리 민족의 분단현실과 정치적
억압상황의 본질을 깨닫고 사회운동에 참여하던 중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우연히도 이국만리 빠리에 망명자로 남게 된다. 이야기는 빠리에서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택시운전을 하고 있는 홍세화의 기구한 현실과 고국에서의
그의 과거가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동족상잔의 6ㆍ25전쟁 와중에서 한마을 사람의 반이 몰살당한 어떤 사건에
대한 회상으로부터, 대학에 들어와 청춘과 사랑을 구가하던 그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에 빠져 방황하던 일, 반독재 투쟁운동에 동참하다가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빠리에서 망명허가를 받기 위해 허둥대던 일,
택시운전을 하면서 겪는 갖가지 에피소드들, 성장한 자식들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고민, 갈 수 없는 고국의 현실을 지켜보며 갖는 온갖
회한 등이 교차되어 표현된다. 그리하여 그가 찾아내는 결론은
'똘레랑스'라는 개념이다. 이를테면 서로 다른 사상과 생각이 서로
존중되고 이해되며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그러한 사회를 말한다.
이 작품은 분단이 빚은 반이성적이고 반지성적인 우리의 정치 사회
현실을 극복하고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자유와 복지를 누리는
그러한 사회를 함께 염원하는 작품이다.

작가 홍세화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6년 서울대 공대 금속공학과에 입학하였다. 이듬해 10월 금속공학과를 그만두고 1969년 다시 서울대 문리대 외교학과에 입학한다. 입학후 대학재학중에는 문리대 연극반 활동을 계속했다. 그러던 중 1972년 '민주수호선언문'사건으로 제적당했으나, 1977년 우여곡절 끝에 졸업을 한다. 1977년 부터 79년까지 '민주투위' '남민전' 활동을 시작했고, 1979년 3월 무역회사 해외지사 근무차 유럽으로 갔다가 '남민전 사건'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빠리에 정착한다. 1982년 이후 관광안내, 택시운전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면서 망명생활을 했다. 2002년 귀국하여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으로서 한국 사회에 대한 충고와 비판을 하고 있다.
홍세화 그가 말하는 그 자신은, "두가지 우연이 있었다. 하나는 프랑스 땅에 떨어진 것. 또 하나는 파리에서 빈대떡 장사를 할 자본이 없었다는 것. 아무 카페든지 한 귀퉁이를 빌려서라도 빈대떡 장사를 해보겠노라고 마누라와 꽤나 돌아다녔다. 그 때 수중에 돈이 좀 있었다면 지금도 열심히 빈대떡을 부치고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나는 빈대떡을 아주 잘 부친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 대신에 나는 빠리의 빈대떡 장사'? 글쎄, 그건 나도 알 수 없다. 아무튼 두가지 우연과 몇가지 필연, 그리고 서울대 출신이란 게 합쳐져서 지금의 내가 있게 되었다. 나는 나이를 꽤나 먹었지만 나이 먹기를 꽤나 거부하려고 한다. '양철북'의 소년도 아니면서 말이다. 나이 먹기를 거부한다는 게 주책없는 일임을 안다. 그렇다고 거게 하릴없는 수작이라고까지는 생각지 않는다. 장교는 나이를 먹으면서 진급한다. 사병은 나이를 먹어봤자 사병으로 남는다. 실제 전투는 주로 사병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이 사병으로 남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 그럼 나는 끝까지 사병으로 남겠어. 오래 전부터 가졌던 생각이다. 따라서 나에겐 나르시시즘이 있다. 내 딴에는 그것을 객관화함으로써 자율통제 하려고 애쓴다. 그러면 전투는 왜 하는가? 살아야 하므로. 척박하나 땅에서 사랑하고 참여하고 연대하고 싸워 작은 열매라도 맺게 하는 거름이고자 한다. 거름이고자 하는 데에는 자율 통제가 필요치 않다. 욕망이 춤춘다. 그렇다. 나는 살아서 즐거운 '아웃사이더' 이고 싶다.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다"(김규항등저,『아웃사이더를 위하여』,아웃사이더,2000) 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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