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름한 여관방, 방 안에 얼마나 있었던 것인지 가늠이 잘 되지 않는
초췌해 보이는 남자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방안에는 빈 맥주 캔과
말라가는 귤이 남자의 자취와 함께 나뒹굴고 있다.
한참 뒤, 1년 전쯤 헤어졌던 여자가 남자를 찾아와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고,
둘은 어색한 듯 혹은 익숙한 듯 이야기를 시작한다.
헤어졌던 일 년의 시간 동안 서로에게 일어난 일과,
일 년 전 사랑하던 서로에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로 더듬어 나간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하지 못했던 이야기,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들이 서로 뒤엉켜 방 안을 가득 채운다.
그 사이, 남자의 말은 죽음을 향해 가고, 여자의 말은 삶을 향해 나아간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일이 생기고 있는 걸까.

1년 전 헤어졌던 남녀가 허름한 여관방에서 재회한다는 설정의 2인극이다.
서로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하지 못했던 이야기,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들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작품은 이들이 다시 만나 갈등에 치닫는 모습을 그리며 사랑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삶이 오로지 좌절의 연속이었던 남자와
외로움뿐이었던 여자. 남자에게 여자는 삶에서 버릴 수 없는 마지막이 되었고,
여자에게 남자는 쉽게 버릴 수 없는 삶의 한 일부분이 되었다.
그러나 서로를 끌어당기려 하면 할수록 모든 것은 파괴 될 뿐, 함께하면
할수록 서로를 더 다치게 할 것이라는 것만이 확실해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감을 딛고서서 마지막까지 발버둥치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당신이 나의 유일한 구원이기 때문이다.
살고 싶기 때문이다. 이것은 절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넌 쓰러질 것 같았어. 난 너에게서 내 모습을 봤지.
고통을 받아본 자는 고통 받고 있는 자의 표정을 읽을 수 있으니까.
그래, 그때 우린 쓰러질 것 같은 서로를 감싸안았던 거야.”
“난 내 스스로를 이곳에 감금시켜 버리고 싶어. 혼자 있을 때도 문을
잠그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거든. 그런데도 자꾸 눈이 문으로 가는 거 있지.
올 사람이 없는데도.”
‘G코드의 탈출’은 연극계의 시인이라고 불렸던 나무가 되고 싶었던 극작가,
故윤영선의 숨겨진 명작이다. 윤 작가는 근본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와
관계에 대한 작가 특유의 밀도 있고, 서정적인 대사로 가득한 ‘G코드의 탈출’을 통해
굉장히 느린 호흡과 인물 그 자체를 제외하고는 특별할 것 없는 서사의 우직함과
단편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복잡한 두 군상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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