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에서 주인공 '나(세르히오)'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려 한다.
절망이나 고통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무리하고
그것을 아름답고 평화로운 선택의 행위로 만들고자 한다.
그는 런던과 스위스를 오가며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두 남자와 만나게 된다. 한 명은 스위스의 자살 조력 의사이고,
규정된 매뉴얼대로 합법적인 자살을 도와주는 곳이다.
제네바 호숫가의 고급 클리닉에서 조력 자살을 의뢰하기로 결정한 후,
런던 정신병원에 수용된 젊은 시체성애자를 면회한다. 그를 만나
런던의 묘지로 자신의 시신이 오면 잘 보살피고 사랑해 달라고 한다.
그리고 작가 자신의 모든 것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마지막에 자신의 재산 모두를 고드윈 박사에게 남긴다.

이 세 남성은 각각 현대과학(의사), 욕망과 죽음(시체성애자) 그리고 블랑코
자신의 자아를 상징하며 이들의 관계는 남성성,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위기 그리고 인간 존재의 한계에 대한 은유적 탐구로 확장된다.
<그대가 내 무덤 위를 지날 때>는 세르히오 블랑코가 2018년에 집필하고
2019년 초연한 작품으로 죽음, 사랑, 욕망, 자기희생, 금기 등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이 작품은 블랑코의 대표적 창작방식인
오토 픽션 (autofiction, 자기 자신을 허구적으로 재현하는 기법)의 극대화와
철학적 탐구를 결합한, 매우 독창적이고 강렬한 희곡이다.

이 작품에는 다양한 주제적인 요소가 내재하고 있는데, 먼저 '죽음과 자기 결정권'을 다루고 있다. 작품은 조력 자살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며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지,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작가의 분신인 주인공 '나'는 자신의 죽음을 직접 설계한다. 고급 클리닉에서 조력자살을 받기로 결정하고, 시신은 런던 정신병원의 시체성애자에게 기증키로 약속한다. 이는 단순한 생리적 종말이 아닌 죽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데, 작품은 정체성과 기억, 삶과 죽음의 경계, 죽음(시신)의 주체성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정치, 윤리적 딜레마, 정체성에 대한 담론을 열어놓는다. 다음으로 '욕망과 금기, 죽음과 에로티시즘의 교차'다. 이 작품은 에로티시즘, 욕망, 사랑, 생과 사의 에너지에 대해 말하면서 욕망과 생명, 충동이 함께 이어진다고 본다.
죽음을 바라보는 에로티시즘을 강조하며, 이는 삶의 긍정적 충동이기도 하고 죽음마저도 애정 어린 경험으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 허물기를 도모한다. 다른 한편으로 시간(屍姦)증이라는 극단적 금기를 통해 인간욕망의 경계와 사회적 금기의 본질을 파헤친다. 작품에서 죽음과 에로스(eros, 사랑/욕망)는 끊임없이 교차하며 삶과 죽음, 사랑과 파괴의 이중성을 드러낸다. 세 번째로 '포스트모템. 신체의 정치화'도 엿보인다. 작품은 '시신이 누구의 소유'인지를 묻는다. 가족인가? 병원인가? 아니면 정신병원 환자인가? 이런 의문은 시신을 통해 권력을 차지하려는 욕망이자 무형의 권력 게임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피로 쓴 언어라는 형식과 내용의 일치'도 살펴볼 수 있다. 서문에서 작가는 이 극을 "피로 썼다"고 한다. 아침마다 소량의 혈액을 잉크로 희석해 7시간씩 손으로 썼다는 이 독특한 방식은, 주제(육체·감정적 몰입, 폭력, 사랑의 교차)를 표현하는 매체와 내용이 일치함을 보여준다. 피로 쓰인 언어는 작품 전체의 육체적 몰입과 고통을 증폭하는 장치이고, 이 과정은 '글쓰기 행위'가 곧 '몸의 행위'로 등치 되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 작품은 '형이상학적인 윤리'라는 질문을 제기하며, 죽음이 곧 선택이라면 그 선택은 정치적 행위이기도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누가 죽음을 소유할 권리가 있는가'는 곧 '누가 삶을 설계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조력 자살 이후에도 시체의 주체성은 남아있다. '죽고도 말한다'라는 말은 죽음 이후의 '의식'의 지속을 주장하며 천착된 존재로서의 자아를 드러낸다. 작가는 죽음의 불확실 속에서 살아있는 삶의 정치성을 획득하며, 이를 통해 관객에게 윤리· 주체성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환기시킨다. 또한 이 작품은 종교와 신화 문제도 다루고 있다. 작품 속의 세 남성은 각각 유대교(나), 기독교(고드윈 박사), 이슬람(칼레드)을 상징하며 이 세 종교와 남성성의 위기 그리고 신화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이 작품은 '자전적 메타극'이라는 흥미로운 구조로 치밀하게 얽혀있다. 배우들은 실제 자기 이름으로 등장하며, 각자의 죽음을 직접 묘사하면서 작품을 시작한다. 이로써 극 안팎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관객은 극의 '진실'과 '허구' 사이에 위치한다. 또한 작가 세르히오 블랑코의 분신인 주인공 '나'와 배우, 연습 과정, 공연 자체가 서로 교차하는 구조 안에서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와 관객에게 소개하는 대사가 아무런 구분 없이 사용되고, "지금, 이 순간, 나는 리허설 중인가, 연기 중인가'라는 질문이 반복된다. 이처럼 대화와 실제 독백이 서로 전복되며 관객에게 진실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진실'과 '작품'의 경계를 흐리며 오토픽션의 공학을 선보인다. 이에 따라 관객은 늘 무대 밖 관찰자가 아니라 참가자로 긴장하게 되며,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증언자로 소환된다. 또 이런 장치로 인해 관객은 '죽음의 증인'으로 호출되어 자신의 삶. 의지. 공포를 마주한다. 결국 이 작품은 단순한 죽음에 관한 연극이 아니라 육체, 욕망, 정치, 기억, 자전적 진실이 혼합된 죽음의 메타극이다. 또한 관객은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며 동시에 목격하게 되는 주체로 초대된다.

정리하자면 <그대가 내 무덤 위를 지날 때>는 세르히오 블랑코 특유의 오토 픽션 미학과 메타 연극적 구조, 그리고 죽음과 욕망, 종교와 금기라는 근원적 주제를 통해 관객에게 인간 존재의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현대 연극의 수작이다. 작가 특유의 메타 연극적 접근과 자기 고백적 요소를 결합하여 단순히 죽음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과 상상 그리고 그것이 예술로 어떻게 승화되는지를 질문한다. 또한 사랑(에로스)과 죽음(타나토스)의 긴장 관계, 낭만주의적 감수성 그리고 삶의 유한성에 대한 성찰이 중심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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