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세르게이 칼레딘 원작 레프 도진 연출 '가우데아무스'

clint 2026. 6. 3. 05:17

 

 

억압받는 소수민족, 전과자, 낙오자, 약물중독자 등 다양한 청년들의 건설부대. 

그러나 집시건 유대인이건 우즈베키스탄인이건 간에 고참의 잔혹행위 앞에서는 

모두가 공통된 희생자이다. 군 조직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이고, 

변소청소하는 것만이 이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직무이다.

폭력과 부패, 소외와 억압, 그리고 짙은 비관주의가 만연하는 부대.

이로부터의 일탈은 몽상이나 성(性)을 통하여서만 가능하고,

이것은 신랄하고 강렬한 19개의 에피소드로 펼쳐진다.

몸과 영혼으로 말하는 인간의 자유와 희망에 관한 19개의 메시지

백색으로 뒤덮은 무대의 눈을 다 녹일 듯이 춤추고 연기하는 배우들의 뜨거운

가슴과 에너지가 생생하게 전해지는 연극. 러시아 사회주의 체제 하의 병사들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외침이 들린다.

“가우데아무스(Let us be joyful)!”

 

 

 

1990년 초연된 가우데아무스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 연극아카데미 학생들과의

즉흥극 실험을 통해서 완성된 작품으로, 고르바초프 정부 시절의 유일한 금서였던

세르게이 칼레딘의 소설 <건설부대 Construction Battalion >에 바탕을 두고 있다.

도진은 수 개월간의 실험작업을 통하여 소설 속 사건과 사회의 이슈에 대한

배우들 각자의 감정과 경험, 해석을 엮어내어 이를 2시간여의 작품 속에 집약시켰다.

경사진 무대는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이고, 눈 밑 곳곳에 있는 트랩은 혈기왕성한 

병사들을 삼키고 되뱉어낸다. 충격과 활기, 그리고 열정으로 가득찬 이 부대는 

말리극장의 젊은 배우들로 구성되어 있다. 스타니슬라브스키적 신체 훈련으로

대사와 연기뿐만 아니라 무용, 음악, 마임, 체조까지 연극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이들은 놀랍도록 유연한 앙상블을 이루며 소비에트 연방

말기의 혼란을 탁월하게 묘사해낸다.

연출가 도진은 이 극에 중세 때부터 전해져오는 학생들의 노래 '가우데아무스'라는

제목을 붙였다. 흘러가는 젊음의 씁쓸한 환희를 노래하는 '가우데아무스'.

도진은 강제 노역에 인생을 저당잡힌 건설부대 안의 빡빡머리 병사들을 통해 군과

소비에트 사회, 그리고 인생 전반에 대한 은유를 담아내고 있다. 

 

 

 

[“가우데아무스”는] 그 흔한 영상이나 특수효과, 포그 머신도 쓰지 않은 원시적인(?) 작품이다. 그런데 이 연극의 무엇이, 감각적인 볼거리와 자극적인 내용을 선호하는 우리 관객을 2시간이 넘도록 사로잡았을까? […] 중요한 사실은 이 작품이 온전히 전통적인 연극의 매력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는 점이었다. […] 연극은 눈앞을 스쳐 지나간 그림이 아니라 울림이 긴 음악으로 남는 것이다. ‘가우데아무스’는 관객에게 진실을 깨닫게 하되 교훈적이지 않았다. 실감나게 사실을 느끼게 하되 정신과 영혼을 생각하게 했다. 놀이처럼 재미있되 재미에 빠뜨리지 않았다. 오래 고민하고, 다듬고, 훈련하고, 준비한 흔적 역시 무대 위에서 드러나는 진실일 것이다.

- 최준호 (연극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조선일보 2001.7.12

 

 


도진은 군조직의 부패, 지겨운 일상을 탈출하기 위한 병사들의 절망적인 사랑놀이, 마약흡입, 폭력, 우정, 배반 등 인간사회라면 어디서나 발견될 수 있는 보편적 주제들을 다루면서 죽음과 욕망의 트랩들이 박혀있는 하얀 눈밭이 전부인 미니멀리스틱한 무대 위에서 잘 훈련된 배우들만으로 풍요로운 인간풍경을 만들어냈다. […] 경제적 어려움이 극심한 러시아에서 때로는 몇 년씩 한 작품을 연습하는 도진의 예술적 완벽주의가 경이롭다. 예술을 통한 사회비판이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러시아에서 위대한 문학작품의 무대화를 통해 늘 러시아인의 영혼에 대해서,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 깊은 사유와 비판을 제공하는 도진은 우리가 주목하고 연구해야 할 동시대의 위대한 연극작가임에 틀림없다. - 김윤철 (연극평론가) 한국연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