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과 저승 사이의 강이 흐른다.
강 기슭에는 탈의파와 현의옹이 기다리고 있다 .
기억을 모두 강물에 빨아 버리고 가벼워지고서야
강을 건널 수가 있다고 말하는 탈의파.
적막한 숲속. 흐르는 강물 소리만 가득한 그곳에 .
가득 차오른 달. 하얀 달빛을 밟고 한 여인이 강기슭에 이른다.
다짜고짜 여인의 옷을 벗기는 탈의파와 천연덕스럽게 옷을 나무에
휙 매다는 현의옹. 곧 여인이 묻혀온 삶의 기억만큼 나뭇가지가 휘어지고...
탈의파는 여인의 옷을 빨기 시작한다. 달이 기울기 전에 여인의 모든 기억을
빨아내어 강 건너 저편으로 보내야 하는데...
그 순간 잊고 싶었던 기억들이 다시 살아나고 여인은 고통스러워한다.
이상한 할멈...... 얽혀있는 기억의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면서 상처들은
강물에 흘러가고, 가장 아픈 기억이 꽃을 피우게 된다.
삶의 터전이었던 고향이 수몰되면서 시작되는 한 가족의 비극적인 일이었다.
망자를 보내기 위한 탈의파의 한판 놀이가 펼쳐진다.

불교의 저승신화인 삼도천(三途川) 설화를 작가의 상상력과 결합하여,
망각의 강을 건너기 전 인간의 기억과 죄의 무게를 심도 있게 풀어낸다.
망자가 망각의 강을 건너기 전 마음의 겉옷을 벗겨 죄의 무게를 가름한다는
탈의파, 현의옹 이야기를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인간의 기억이라는 시간을
망각의 강물에 수몰되지 않고 켜켜이 살아남은 삶의 흔적을 소리로 풀어낸다.
또 연극은 보름에서 서서히 사위어가는 달과 같이 가득 차올랐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저 멀리서 살아오는 일그러지고 왜곡된 기억들,
죽은 자는 그 기억 속에서 비로소 살아있음의 흔적을 느끼고 지우고 싶던
그 아픈 기억마저 모두 자신의 삶이었음을 깨닫는 인간과 기억, 삶과 죽음이다.

작가의 글 - 최정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은 2009년 극단 TOD랑 (Truth Of Drama 朗)의 창단공연으로 '소리연극'이라는 새로운 공연의 형식을 꿈꾸고 모색하며 창작한 작품이다. 소리가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힘, 인간이 스스로 상상하고, 꿈꾸고 움직이는 힘을 복원하고자 하는 '소리 연극'에 대한 지향점을 갖고 작품의 구상부터 창작의 전 과정을 동료들과 함께 고민했던 이 극은 애초부터 배우들의 낭독을 위한 희곡으로 쓰인 작품이다. 원형적인 것에 대한 고민과 맞닿는 지점에서 삼도천 신화, 시간, 수몰, 기억, 상처에 대한 사유가 보태어졌고, 저승과 이승의 경계에 놓인 신화 속 공간과 망각의 강물, 의령수, 탈의파, 현의옹이라는 인물과 설정에 허구의 이야기를 입혔다. 애초에 지문까지 낭독하는 희곡을 구상하였기에 청각적인 요소와 장치들을 고민하였고, 대본 속에 녹여내고자 했다. 이 극은 2013년에 일반적인 연극의 형태로 무대에서 공연되기도 하였으나, 희곡집에는 본래 이 극의 원형인 '소리연극'의 대본 버전을 실었다. 구성적으로도, 완성도에 있어서도 큰 아쉬움이 남고 아직 제대로 풀지 못한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는 작품이라서 언젠가는 극 적 설정만 가지고 다시 새로운 숨을 담아보고 싶은 희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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