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미 선교회의 휴거 소동으로 전국이 들썩거리던 1992년 10월 28일,
휴거가 몇 시간 남지 않은 시간, 휴거에 대한 취재로 부산한 한 신문사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동두천의 한 윤락녀가 처참하게 죽었다는 전화가...
전화를 건 사람은 운동권 수배로 쫓기던 대학생 신우다
윤금이와 에레나는 동두천 기지촌에서 미군에게 몸을 파는 소위 양공주다.
그녀들 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들의 앞에 어느 날 학생운동으로 쫓겨다니던 신우가 나타난다.

이들은 갈 곳 없는 신우를 받아들인다. 신우는 이들과 생활하면서 차츰 기지촌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된다. 신우는 폭력적인 환경에 의해서 피해를 입는 기지촌 여성들의
현실에 분노하고, 그러한 진실을 밝히려한다.
한편 금이와 에레나는 각각 자신들의 현실을 벗어나려는 작은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에레나는 동거하던 미군의 부탁을 받고 일을 나갔다가
무참하게 살해된다. 이에 금이는 큰 충격을 받고 자신을 버리게 된다.
결국 에레나가 죽은지 일주일도 채 안 되어서 금이 역시 처참한 죽음을 당한다.
신우는 자신이 잡혀 들어가는 것을 감수하고 금이의 죽음을 알린다.....

윤금이씨 살해사건 요약.
1992년 10월 28일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에 있는 미군전용클럽 종업원이던 윤금이씨가 피살된 채 발견되었다. 사체 부검 결과 윤금이의 사인(死因)은 ‘전두부(前頭部) 열창(裂脹)에 의한 실혈(失血)’, 즉 콜라병으로 맞은 앞 얼굴의 함몰 및 과다출혈로 밝혀졌다. 사망 시간은 28일 새벽 2시로 판정되었다.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현장에 있던 피묻은 셔츠와 부검 때 맥주병에서 채취한 지문 등 증거물과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탐문수사를 편 끝에 10월 31일 오전 0시 30분경 미2사단 정문 앞에서 부대로 귀대하던 케네스 마클 이병을 유력한 용의자로 검거했다. 하지만 경찰은 미군측의 신병인도 요청에 따라 피의자 신문조서도 작성하지 못한 채 신병을 바로 미군측에 인도했다. 검거 당시 그는 범행시의 피묻은 바지와 농구화를 그대로 착용하고 있어 낮은 범죄의식을 드러냈다. 윤금이씨의 시신은 10월 30일 경찰에 의해 가족들의 입회 하에 화장된 후 동두천 상패동 공동묘지가에 뿌려졌으며, 미군당국에서는 위로금으로 60만원을 전달했다. 사건이 알려지면서 11월 4일 동두천에서 지역대책위 결성을 시작으로 11월 5일 4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주한미군의 윤금이씨 살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윤금이 공대위’)를 결성하고 살해미군 구속 처벌 등을 요구하며 싸워나갔다. 살인혐의라고 해도 재판절차가 끝나 형 확정되기 전까지 한국 사법당국이 가해자 미군을 구속할 수 없는 게 당시 SOFA 규정이었다. 검찰은 마클 이병을 살인혐의로 기소했으나 신병인도를 받을 수 없어 구속하지 못했다.
이 사건의 여파로 당시 대학가에서는 주한미군 철수 시위가 일어났으며 한국 사회의 불평등한 주한미군 사법처리 문제를 환기시킨 대표적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이런 한국내의 분위기에 결국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1993년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전 윤금이의 유가족들은 미국정부로부터 민사상 배상금 7,100만 원을 받았는데 이것이 2심 선고에 영향을 끼쳤다. 1994년 대법원도 2심과 동일한 판결을 내리면서 천안소년교도소에서 복역했다. 그후, 2006년 8월 가석방되었는데 즉시 미국으로 출국했다. SOFA에 따르면 주한미군 범죄자는 석방 뒤 한국 감독권에서 자동적으로 벗어나 미국정부의 관리를 받지만 미국 측이 공식적으로 그들의 소재지 및 생활태도 등 기초 정보를 공지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현지에선 사면된다. 이와 별개로 마클 이병은 형 확정 즉시 미 육군에서 불명예 전역 처리되어 제적되었다.

92년 10월 동두천시 기지촌에서 당시 나이 26세였던 윤금이 씨는
자궁에 콜라병이, 항문에 우산대가 꽂힌 채로 살해당했다.
조사 결과 그녀의 사인은 ‘둔기 가격으로 인한 안면부 함몰과 과다출혈’,
범인은 미군 부대 의무병 케네스 마클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은 각종 언론과 사회단체의 주목을 받으며 분노의 외침을 불러왔지만,
결국 한미행정협정(이하 소파)에 의해 범인이 15년형으로 마무리됐고
차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갔다. 그리고 1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2001년 3월, 문화의 이름을 빌어 우리 앞에 되살아났다. 극단 창작무대 우림과
여성문화예술기획은 공동기획 연극 ‘금이야 사랑해’를 무대에 올렸다.
55일간 소극장 ‘오늘·한강·마녀’에서 공연된이 연극은 세월에 무디어질대로
무디어진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작 연출의 글 - 변영국
윤금이씨가 동두천에 온 해는 1992년이지만 시대 여건 상 1980년도 초반의
양공주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환경이었으리라 본다. 따라서 무대는 1992년이지만
80년대 초반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그림이 될 것이다. 동두천 보산동 일대가
주무대이며 실제적인 무대를 지향할 것이지만 지극히 함축적으로 의미를 담아 낼 수
있는 소품들이 등장할 것이다.
이 극은 두 양공주의 얘기이다. 이 두 사람은 미군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된 기치촌
여성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윤금이씨 외에
에레나라는 여성은 작가의 창조물이다. 그러나 전혀 근거 없는 허구라고 볼 수는 없다.
올해만도 4명의 기지촌 여성 이 죽어나갔고 그 죽음에 대한 진실 규명, 범죄자 처리,
보상 등의 문 제는 그때보다 진전된 바가 없다. 주한미군의 잔학성을 표면에 내세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는 그 실체를 향해 분노해야 한다. 그 누구도
이 땅에서 개처럼 죽 어가서는 안 된다. 더 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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