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해제 '바다에 가면'

clint 2026. 2. 6. 16:49

 

 

이제는 기억조차 더듬을 수 없는 늙은 몸. 
옛 전우들의 주검을 태운 채 침몰한 선박을 품은 바다. 
자신의 이름조차 숨기고 조국을 등진 채 타국 일본에서 살아온 장학이氏. 
그는 50여 년 전 바다 속에 수장된 유골을 찾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며칠째 계속된 인양작업은 어느 어설픈 도굴꾼 잠수부의 힘을 빌어 미제 박격포  
장비들을 하나둘씩 건져 올리게 되는데...
녹슨 추억을 닦아내면서 장은 신비한 환영에 휩싸이게 된다. 
기억속에 묻어둔 전우들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의용군으로 강제 징집되어 그들을 처음으로 만난 여름, 
1945년의 여름이 그렇게 불현듯 다가온다. 
인양된 기억의 파편들과 함께 시작된 환영 병사들. 
퓨즈 소위, 말라리아 상등병, 똥반합 일등병, 가마우지 이등병 
이들과 함께 하는 추억의 향연. 
장은 그렇게 1945년과 1985년 사이를 오고 가게 된다.
당시 장이 속한 분대의 대원들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후방으로 전입된 
일본인 낙오병들이었다. 그들은 군국주의자나 침략자이기는커녕 하나같이 
따로 노는 군대 부적응자들이었다. 이들의 임무는 미군 신형 박격포 한대를 
운반하는 일. 신병으로 자대에 배치된 장은 그들과 함께 조선의 남해안 거제도 
구조라 해안가에서 예인선을 기다리며 대기상태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
지루한 나날들. 전쟁과는 거리가 먼 평화로운 풍경들, 낚시, 조개껍질 모으기, 
물수제비 뜨기로 당치도 않은 내기를 일삼으며 그렇게...... 
군인 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낙오병들. 

 

 


그때까지도 장은 이들이 정예 박격포 대원이라고 믿었던 터라 일말의 의심도 
가지지 않는다. 게다가 간간이 분대장 퓨즈 소위의 명령에 의해 실시된 
'박격포 조작훈련'도 그럴 듯해 보인다. 물론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시작된
얼치기 병사들의 훈련이다. 그러나 전의라고는 좀체 찾아볼 수 없던 분대원들, 
해녀 오님의 등장으로 믿기지 않는 실력을 발휘하게 되지만... 七月七夕. 
1945년 8월 14일. 약속된 예인선이 할 것이라는 무선이 들어오게 되자 분대원들은 
당황하게 된다. 그들은 다시 군대와 전쟁이라는 비극적 현실로 돌아가기에는 
너무도 마음이 멀리 떠나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가마우지 이등병의 자살과 함께 
퓨즈 소위는 분대원들과 탈영을 결심하고, 계절풍을 타고 뱃길을 떠난다. 
어느 침묵보다 고요한 바다위. 깊은 슬픔과 불만을 숨겨둔 채 오고가는 농담. 
게다가 분대원들은 선상에서 실제 고폭탄을 사용한 사격내기를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들이 표적을 삼아 사격을 한 것은 어이없게도 아군의 함정이었다. 
곧이은 반격에 참혹하게 쓰러지는 분대원들, 
장에게 1985년 현재에서 1945년의 악몽이 재현된다. 
죽어가는 동료들에게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상황앞에서 
그들은 장에게 자신들을 기억해줄 것을 부탁하며 바다 속으로 뛰어든다.
고통의 과거 속에서 살아남아 1985년의 그 바다 위에서 눈을 뜬 장학의씨. 
비굴하게 살아남아있음을 괴로워하고 있을 때, 태풍에 좌초된 배를 밀고 있는 
친구들의 환영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자신들을 추억하게 
하는 환영 병사들. 수중의 묘지. 녹슨 81mm 박격포와 함께. 그리움의 눈물과 함께 
장은 그 바다 위에 서 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 포병 분대에 합류했던 한 조선 의용병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쟁과 역사라는 이름에 내몰리며 침몰선과 함께 수장될 수 밖에 없었던 
일본인 전우들의 시체를 인양하는 과정에서 추억과 악몽의 일루젼을 조우한다, 
 2002년 한일공연예술제에서 공연된 이 작품은 이해제의 작, 연출로 한일 합동공연
작이다.  한국 쪽에서 그려낸 인간의 정. 2차대전에 휩쓸려 아픈 역사를 주고 받은 
일본과 한국을 조명하여 이 시기에 아픔 속에서도 싹튼 인간의 정을 한국과 
일본의 각자의 관점에서 동시에 그려본 작품이다.

 

작, 연출 이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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