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전쟁 중 억척어멈은 두 아들과 딸, 네 가족이 함께 군대를 따라
포장마차를 끌며 전쟁 지역을 다닌다. 그녀는 전쟁을 사업으로 간주하고
오직 전쟁만이 자신과 자식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교활한 모병꾼이 큰아들을 설득하여 군에 데리고 간다.
그러나 용감한 큰아들은 전쟁터에서 만용을 부려 처형된다.
둘째 아들은 정직함을 인정받아 군대의 회계를 맡는다.
그러나 인민군의 습격으로 금고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다 체포되고
억척어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살 당한다.
딸은 인민군의 도시로 진입을 알리려 농가의 지붕에 올라가 북을 두드리다가
총살당한다. 억척어멈은 두 아들과 딸을 잃었다.
자신의 생계와 자녀를 빼앗아간 전쟁의 폐해에 직면해서도
억척어멈은 전쟁이 인간에 미친 파괴적인 영향을 깨닫지 못하고
극이 끝날 때에도 여전히 장사하러 포장마차를 끌고 군대를 따라간다.

브레히트의 원작은 17세기 유럽의 30년 전쟁을 배경으로 하나,
이를 6.25 전쟁 당시 남원 지역으로 전환했고, 인물의 이름과 말 모두 우리 것이다.
익숙한 배경과 어투는 작품에 대한 친근함을 높이며 노래들은 모두 새로 작곡되고
원작의 맥락과 다소 상이상이하다. 또한 작품에서 특정 전쟁 자체의 부각보다는
전쟁 가운데 개인의 잘못된 판단으로 소급시키며 전쟁을 인간의 보편적 이념의
차원에서 사고하는 것으로 끌어올리므로, 배경은 배경으로 남을 뿐이다.
30년 전쟁의 맥락이 어느 정도 제시되는 원작에 비해 6.25 전쟁의 맥락은,
또한 목소리는 거의 없는 편인데, 결과적으로 원작에 비해 전쟁이라는 이념에 대한
저항과 극복의 서사를 읽을 수 있다.

자식을 돈과 협상하는 억척어멈의 모습은, 모성애를 강조하는 한국 자체로부터
이화되는데, 실상 군인들을 상대로 한 억척스러운 모습과 굳건한 생명력,
아버지라는 존재 없이 가장의 몫을 수행하는 것 - 자식들은 각자의 성을 갖는데,
이는 전쟁의 영향을 가정하는 부분도 있지만, 한국 상황으로 옮겨졌을 때는
그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는 억척어멈의 대담함에 대한 독해로 귀결된다 -
또 자유로운 섹스에 대한 암시 등은 모계 중심의 새로운 역할 상으로도 읽힌다.
연희단거리패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은 6.25 전쟁이라는 우리의 상황을
가져오되, 그에 대한 특정한 결론을 끌어내기보다는 ‘전쟁은 어리석은 이념에
의한 것’이라는, 보편적 전쟁에 대한 상을 정초하는 것으로 보인다.

브레히트 원작/ 이윤택 번안, 연출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은 배경 상황을
우리 역사의 한 시대로 바꾸었다. 원작의 '30년 전쟁'을 '18연대와 빨치산의
대립'으로 변용했다. 넓게 보면 남과 북의 전쟁으로 환치한 셈이다.
이러한 전환은 사실 무리한 사항들을 낳기도 했다.
가장 어색한 부분은 군목의 등장과 전쟁의 이유이다.
우리나라의 전쟁에서 종교적인 의미는 거의 없다. 부분적으로 한국전쟁 중에 종교
간의 대립이 나타났지만, 이것은 이념대립의 와중에서 불거진 부수적인 사건도이다.
특히 지리산 빨치산 부대와 종교적인 원인은 그 결합이 어색하기 이를 데 없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재개되는 과정도 약간 어색하다. 재고가 필요한 사항이다.

하지만 이러한 어색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상황으로 번안한 의도와 지금까지
변용 정도는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 억척어멈도 먼 유럽의 낯선 여자가 아니다.
전쟁의 고통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쳤던 이 땅의 어머니여야 했다.
억척어멈이 격동의 한국사를 지나온 여인이 되면서 그녀의 두 아들과 한 명의 딸은
이 땅에서 숨져간 젊은이가 된다. 여기서 밝히고 싶은 것은, 원작의 한국화가
곧 재구성의 성패 조건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 텍스트와 우리 현실(역사)과의 간극은
지나치게 넓다. 한국적 정서를 삽입하기 위해서이다. 번안 대본에 보면,
음악적 빠르기를 지칭하는 용어들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시와 노래, 구음이나 민요 등이 차용되고 있다. 적극적으로 한국적,
전통적 정서와 감각을 도용하려고 한 시도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배우들에게는
보다 쉬운 한국어를, 관객들에게 보다 친근한 정서를, 그리고 연출에게는
자신의 연극적 기반과 스타일을 최대한 살리려고 한 것이다. 그러한 일관성이
이어지고 있고, 이러한 일관성은 원작의 재구성 작업을 촉진시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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