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숙경 '슬픔이 찬란한 이유'

clint 2026. 2. 4. 14:42

 

 

경상도 동해안 해룡마을은 빼어난 바다 절경으로 관광지로 개발 중인 곳이다.
상가에는 누님을 따라 이 마을에 정착한 상가번영회장 충식, 산둥짜장집에서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후계자 수업을 받는 동엽, 동엽의 애인이자 '바람의 노래'란 

카페 주인인  소연, 한때 출가를 꿈꾸었던 산채비빔밥집 주인장 만향거사가 있다.
상가번영회장으로서 충식의 고민은 개발계획에 차질을 주고 있는 폐가 한 채와 
1년 전의 해룡호 조난사고 유족들의 시위이다.
태풍이 치던 날 밤, 폐가에 불 켜진 것을 목격한 충식이 누군가 폐가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신고하는데......
폐가의 집주인인 중년의 여자 영우와 정체불명의 노인, 유홍철.
그리고 과거에서부터 얽혀온 이 집의 이야기가 드러난다.
  



이 작품은 부산연극계에서 사랑받는 극작가인 김숙경의 작품으로, 

2022년 초연 이후 꾸준히 부산에서 공연돤다. 이 작품은 해룡마을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오래된 연인인 동엽과 소연, 

해룡호 사고로 남편을 잃은 정숙, 알 수 없는 꿈을 꾸고 마을을 찾은 소년 바다, 

마을의 골칫거리인 폐가의 소유주인 영우까지 그들은 각자의 슬픔을 안고 살고 있다. 
동엽과 소연은 슬픔을 외면하고 있고, 정숙은 슬픔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소년 바다는 슬픔의 정체를 찾고 싶어하며, 영우는 슬픔을 해결하려 한다. 
그래서 마을 개발을 가로막는 처치곤란의 폐가는 연극의 실제적인 배경이자 
등장인물의 마음의 풍경이 된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해결하지 못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슬픔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해룡호 피해자를 위해 기도하는 무녀 순녀와 공터에서 위로의 노래를 
불러주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버스킹 가수 은주를 통해,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슬픔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말한다. 개인주의화 되면서 타인의 슬픔에 
무관심해지고 심지어 슬퍼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지금의 시대에 다시금 연대와 
공감이 왜 필요한가를 보여준다. 공감과 연대는 작고 연약한 것 같지만, 
그것은 슬픔을 직면할 용기와 이를 극복할 힘을 주기 때문이다.
끝날 때쯤 이런 대사가 나온다.
 충식: 만향아. 왜 노래엔 슬픈 가사가 많은감?
 만형: 슬픔이 .... 찬란하니까.... 불타오르는 석양처럼, 저기 집들의 반짝이는 불빛처럼,    

슬픔도 찬란하다.  그래서 슬픈 가사가 많은 거다.



작, 연출의 글 - 김숙경
코로나가 시작되던 2020년,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슬픔을 껴안고 살았다. 그리고 내 안의 파도가 찾아들던 2021년 봄, 어느 날, 슬픔을 다루는 작품을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란'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다채롭고 번쩍여서 눈부시고 아름답다'이다. 대부분 흔히 좋다고 생각하 는 것에 '찬란'이라는 말을 붙인다. 그래서 '슬픔'과 '찬란'의 결합은 어색하고 설득되지 않을 수 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러니에 천착했다. 인간으로 살면서 겪는 슬픔도 눈부시고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기뻐서 웃을 때만이 아니라, 슬퍼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는 것도 인간이 겪는 찬란함이 아닐까? 돌이켜보면 슬픔을 마주하는 나의 태도를 담담하게 응시하고 싶었던 듯하다. 나아가 슬픔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도 이 작품에 담고 싶었다. 이 작품에서 부수적 으로 의도한 것은 거시담론을 미시화시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오래도록 해원 되지 않은 집단적 아픔들이 곳곳에 있다. 이런 사건들이 연상될 수 있는 상황과 사건을 개별화시켜 한 개인의 아픔에 집중해 보려 했다. 이 아픔들의 현실적인 해원은 정치가나 행정가들의 몫일지 모르지만, 그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식은 예술이라는 영역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으면서... 

 


프로필
작/연출: <태양 아래 널브러진 개>, <슬픔이 찬란한 이유>, <거기, 두루마을이 있다>,
<목대평으로부터>, <119 옆 낙원빌딩>, <올드 브라더미싱>, <세상에 하나뿐인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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