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보는 소년시절 고아원에서 누나를 성폭행하는 원장을 벽돌로 내리치고 도망친 후
타향을 떠돌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연쇄살인을 저지른다.
그러나 그를 통해서 듣는 사건의 정황은 이리저리 뒤엉켜 헛갈리기만 하고
그의 기억 속의 사실은 다른 증거에 번번이 뒤집어진다.
조직폭력배들은 본분을 망각하고 주제넘게 금융사업에 진출할 모의를 하고
검사들은 정의를 바로세우는 사이 사이 뇌물을 받고 성접대를 받는다.
재벌 오너들은 사업보다는 국가 경영에 더 몰두하고, 정부의 홍보실에서는
정책홍보를 하면서 광고대행사 흉내를 내고 점점 언어를 망가뜨린다.
한편 살인사건 피해자 마을의 주민들은 명보의 유품과 범행 증거물들을 모아
연쇄살인박물관을 건립할 계획을 세우고, 자신들의 경제적 토대가 오염될 것을
걱정하는 지역 상공인들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나서는데…

<사이코패스>는 박상현의 희곡 중에서도 가장 선정적이고 잔혹한 사건을 다룬다 .
첫 장면에서부터 벽돌을 내리치는 사건에 대한 진술로 시작되고 십수 년 후 보육원이
있던 바로 그 마을에서는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제목이 환기하는 것처럼 사건은 살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체훼손, 식인 등
사회적 상식과 통념을 훌쩍 뛰어넘는 잔혹한 범죄로 이어진다.
게다가 잔혹한 범죄의 세세한 과정이 무대 위에서 반복적으로 진술된다.
사건은 반복적으로 진술되지만 미묘하게 어긋난다,
거기에 전혀 낯선 인물과 에피소드가 아무 맥락 없이 삽입된다.
이 작품에서도 사건은 모호하다. 명보, 박회장, 수녀 세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니 이야기에서는 모두 원장 아버지(와 두식)에 의한 성폭행(과 동생의 성추행)이
있었고 벽돌로 머리를 내려치는 폭행이 벌어진다.
그리고 봄날, 강변 모래사장, 어두운 부엌, 희미한 불빛, 마당에 쌓여 있던 벽돌 등
세세한 상황들이 고스란히 일치한다. 똑같이 반복되는 세세한 상황과 행동은
사건의 개연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
진술자가 바뀌면서 이야기는 변화한다.

<사이코패스>는 선정적 사건을 다루지만, 정작 사건의 진상은 모호하다.
명보가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고 그의 범죄 행위는 낱낱이 진술되지만,
그가 왜 그러한 잔혹한 사건을 벌였는지는 알 수 없다. 명보가 연쇄살인을
벌인 장소가 보육원이 있던 마을이라는 점에서 보육원 사건과 연관되지만
그 진상은 모호하다. 명보에 대한 인터뷰는 희화화되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희곡에는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박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들, 강 부장과 민 부장, 재벌3세 남매들, 수석과 비서들은
명보의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도 없다. 그리고 이들의 에피소드는 상류층의
비도덕을 드러내는 익숙한 자기폭로에 가깝다. ‘알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작가의 표제는 그러한 자기폭로에 대한 냉소적 시선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희곡의 전개에서 보면 표제 그대로 ‘알 수 없는 사람들’이다.
희곡은 연쇄 살인범의 이야기에 우리 사회 곳곳의 모습을 끌어들이지만
정작 인물과 사건, 현실에 대한 어떠한 진단도 해석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각장의 표제는 가해/ 피해, 정의/ 불의, 진실/ 거짓과 같은 해석과
진단을 계속 교란시키는 장치에 가깝다.
그렇다고 이 희곡이 ‘알 수 없음‘의 심연에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9장 자애와의 면회에서 자신의 범죄를 낱낱이 진술한 명보는 이어지는 10장에서
4001호와 1004호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 장에 작가는 ‘골고다 언덕’이라는
표제를 붙였다. 하지만 명보의 죽음은 거룩하지 않고 4001호와 1004호의 살인
역시 명보의 그것처럼 설명되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희곡의 마지막 장에서는 첫 장 명보가 앉아있던 자리에 그 둘이 앉아 있고
첫 장에서 명보가 했던 보육원 사건을 이번엔 수녀가 다시 이야기한다.
연쇄살인범 명보는 죽지만 명보의 살인자들이 그의 자리에 앉고
다시 희곡이 반복되는 것이다. 아마도 끔찍한 범죄는 계속될 것이고 우리는
범죄도 범죄자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우리는 끝내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세상엔 ‘알 수 없는 이들’의 음모와 회합과 협상이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 끝없는 원환의 이야기인가.

<사이코패스>의 12장 ‘4분 33초’는 지문과 빈 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문은 이렇다. “<사이코패스(Psychopath)>의 각 장면과 동장인물, 상황과 사건,
대사 등을 재료로 하여 종합적으로 한 장면을 구성해보자;
이 장면은 단순한 재구성이 아니라, 지금까지 시도된 작품의 구조와 형식,
주제와 대사를 비롯한 모든 것을 뒤집고 파괴하는 것이어야 한다."
(강조 인용자) 빈칸은 독자의 몫이다. 누군가는 빈칸 그대로 남겨둘 것이고
누군가는 무엇인가를 재구성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건
“모든 것을 뒤집고 파괴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니 그것이 무엇이건 모든 것은 뒤집히고 파괴된다.
이 장의 표제에 따르면 이 빈칸이 채워지건 채워지지 않건
그것은 모든 것을 뒤집고 파괴하는 침묵이다.
희곡의 마지막 13장 ‘엄마야 누나야 2’는 침묵 직후의 장면인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13개의 장면으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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