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판대 노점 잡화상인 멍석과 맷돌에게 감옥에서 알고 지냈던 관우가 찾아온다.
관우는 조직에서 내린 특수 임무라며 공회장의 집안 환기구 속에 숨겨진
금괴를 찾아내 사진을 찍어 올 것을 제안한다. 멍석과 맷돌은 관우의 제안에
망설이지만 이내 제안을 받아들여 관우에게 착수금을 받고 작전 성공 암호를
“우린 개나발을 불었다”로 정한다.
공회장의 집에는 간암에 걸린 노모와 아내 보화, 그리고 무용을 전공하는 딸 주리가
함께 살고 있다. 멍석과 맷돌은 정전을 틈타 환기구로 잠입에 성공하지만
맷돌은 대못에 옆구리가 찔려 작전은 실패하고, 그곳에서 옴싹달짝 못하게 된다.
멍석은 집안을 빠져나와 관우에게 작전실패를 알리며 맷돌을 구해낼 것을 부탁한다.
관우는 멍석에게 주리를 이용하여 맷돌을 구할 것을 약속하고 임무완수를 독촉한다.
맷돌은 환기구 속에서 금괴가 아닌 대량의 히로뽕을 발견하고 관우에게 속은 것을 안다.

멍석은 맷돌에게 먹을 것과 약을 구해 주지만 맷돌은 점점 쇠독이 퍼져 위독해져만 간다.
관우는 공회장을 찾아가 사진을 보여주며 노조 운영자금을 요구한다.
관우가 돌아간 뒤 공회장은 환기구 속을 둘러보다가 맷돌을 발견한다.
공회장은 관우의 요구를 들어주고, 히로뽕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환기구를 막기로 한다.
멍석은 관우의 도움으로 주리에게 접근하여 주리의 무용 시연회를 틈타 시간을 벌어
맷돌을 빼내기로 약속한다. 바리공주가 오셨다며, 환기구 쪽에서 신음소리를 들었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주리는 환기구 속을 살펴보게 되고, 맷돌은 주리의 손을 잡고
죽음을 맞이한다. 무용시연회 날 맷돌을 구하러 간 멍석은 막힌 환기구 앞에서 오열하고
주리는 허위의 껍질을 벗어버린 알몸으로 춤을 춘다.

"우린 개나발을 불었다." (제목은 암호명을 순화한 것이다)
이 언어가 인물들의 입에서 되풀이 되면 관객은 폭소를 금치 못한다.
의미 심장한 사건이나 사물들이 코메디로 변조된다.
배우들의 말장난, 못나고 못배운 저층민들의 우스꽝스러운 형상들이 관객의
말초 감각을 즐겁게 해준다. 번지없는 주막이란 대중 가요에 맞추어 주인공들은
실없이 춤을 준다. 관객들은 경쾌한 리듬에 맞추어 함께 박수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통속적인 쾌락 의식은 이 공연의 절정에서 완전히 무너져 버린다.
조직의 꼭두각시로 전락한 이들의 형상은 관객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준다.
춤과 노래 속에 음모와 허위가 담겨져 있다. 감미로운 음악이 울려퍼지는
공회장의 거실에는 정치조직의 계략이 익어가고 있다.
행복한 모습을 연출하려는 공회장 부부의 행태에 인간의 잔인함과 허위가
스며있다. 이들의 위선적 행태는 한 마디로 '개나발'이다.

우리 사회가 가진 모순을 통쾌한 웃음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1990년 서울연극제에서 작품상, 연출상, 미술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 받은 김상열선생의 작. 연출 작품이다.
“한 저택을 지키려는 구성원과 이것을 파괴하려는 집단 간의 허위와 모순
그리고 사상의 혼란과 갈등을 작금의 우리 모습을 비유하여 꾸민 것” 이라고
작가는 희곡의 서두에 밝혀 두었다. 가진 자와 가지려는 자,
지키려는 자와 뺏으려는 자, 지배하는 자와 지배 당하는 자.
이러한 분류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들의 공통점은 그러한 각자의 삶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고 갈망한다는 것이다.

섬찍함과 분노가 극에 달할 때 그들은 또 다시 코메디를 접한다.
'번지 없는 주막'의 노래에 맞추어 명석과 공회장의 딸은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즐겁고 경쾌한 동작과 가락이 무대를 가득 메워도 관객은 홍이 나지 않는다.
흥과 신명이 야기될 리 만무하다. 헝클어진 현실이 이들 꼭두놀이의 탈을
뒤집어 쓴 채 재현된다. 관객은 꼭두놀이 코메디가 결국 허구임을 깨닫는다.
관객은 음모와 절망으로 점철된 사회의 실상을 깨닫는다. 그 허상의 꼭두놀이가
춤과 노래로 포장되어 우리에게 계속 다가오고 치유 불능의 비극을
코메디화 시켰음은 성찰의 폭을 넓혀주는데 기여한다. 상징성과 구체성을 혼합한
무대구성은 신선하지만 어두운 우리 현실을 무겁게만 조명하려는 풍조를 본다면
이 연극을 희비극의 미학으로 전개한 작 연출가인 김상열의 수작이라 하겠다.

기존의 체제속에서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세력과 이것을 파괴시킴으로서
새로운 민주화시대를 구현하겠다는 두 명분 사이의 갈등 속에서 희생되가는 인간상이
우화적인 방법 으로 무대위에 설정된다. 지키려는 세력이나 부수려는 세력의 폭력적
쟁취방법 사이에서 전통과 양식 그리고 진실이 매도 혹은 위장되는 작금의 가치혼란
속에서 우리가 빠져나가야 할 터널의 출구는 어디인가를 작가는 풍자와 자조적인
희극으로 이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무대위에 설정된 한 가정의 이층 저택은
기존, 기성세대의 무사안일 과 독점성취욕에 가득한 이 시대를 암시하는 건축물로
가설되며 이 가정의 부정과 비리를 파헤치겠다는 사명감으로 저택의 환기창을 뜯고
들어가 천장 공간에 잠입하는 인물들은 소외 계층의 혁신적 투사들로 상징된다.
이 작품은 한 저택을 지키려는 기득권의 가족들과 이것을 파괴하려는 집단간의
허위와 모순 그리고 사상의 혼란과 갈등을 작금의 우리 모습에 비유하여
코믹하게 무대위에 형상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글 - 김상열
(...) 사회인식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고 그 정리된 생각들이 희곡이라고 하는
틀속에 다시 조립이 되가며 그것이 무한한 무대 공간속에서 관객과 교감할 수 있는
공감대위에서 완성되기란 물론 그리 용이한 것은 아니다.
한 저택의 설계도적인 구조속에 한 사회의 모순을 대입시키고 그 작은 공간에서
개혁과 보수의 공방전을 암시하기 위해서 때로는 무리한 상황이 설정도 되고
사회갈등의 모순을 압축시키다 보니 그 충돌방법이 거치른 듯하여 아주 일상적인
멜로드라마의 허물을 쓰게 되었다.
이 작품의 소재는 10년전에 MBC-TV에서 <수사반장>을 집필할때 시경 강력계
주임으로부터 얻은 실제 사건에서 취했다. 실제 사건에서는 3년후에 수사과정에서
저택의 밀폐된 벽속에서 시체가 발견되고 공범이 체포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을
이 작품에선 좀더 현실구도에 맞게끔 윤색이 되었다.
우선 이 연극이 재미있기를 바라며 보는이로 하여금 편안했으면 하는 것이다.
아무리 암시와 상징이 넓고 깊다고 하여도 그렇게 보여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국가의 보조금을 받아가면서 그것도 이보다도 훨씬 좋을 수 있는 다른
희곡을 제치고 끼여든 이상 연극을 아끼시는 많은 분들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했으면 하는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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