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오태영 '메멘토 모리'

clint 2026. 1. 27. 13:08

 

 

어느 양로원, 힘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노인들.
운동시설도 엉망, 식사도 엉망. 모든 게 엉망인 이곳의 복지에 노인들은 
항의해보지만 시정되지 않고, 화가 난 노인들이 부당한 처우를 언론에 호소하려 
하지만 양로원장과 언론사의 부정한 공생관계 탓에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좌절한 노인들은 문득 이 양로원의 작은 부정이 양로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임을 깨닫게 되는데.... 
힘없고 늙은 몸으로 어찌할 것인가! 
사회적 비리를 눈감을 것인가! 
왜 젊은 날, 부당한 폭력에 눈 감고 저항하지 못했는가! 
그 젊고 건강하던 시절, 왜 한 번도 혁명을 꿈꾸지 못했는가!
비겁하게 살아온 젊은 날이 후회스럽다!
인생의 마지막 뒤안길에서 노인들은 스스로를 부추겨 세운다.
그리고 국회로 향한다! 혁명을 위하여!



연극 <메멘토 모리>는 몸이 늙어 움직임은 더디지만 늦게라도 소신 있게 
행동하려는 노인들의 각성과 결의를 희극적으로 연출한 ‘시니어 코메디’이다. 
이 연극의 제목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뜻은 ‘모두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의 라틴어이다. 진의는 '가진 자여 겸손하라'는 뜻이다.
연극 <메멘토 모리>는 평생을 윗사람 눈치만 보고 짓눌려 산 해방 세대가 

양로원에서 늙어가며 인생 처음으로 도발을 감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양로원의 불합리한 처우에 대해 고발조차 막힌 상황을 분노하던 노인들이 

우리 사회 모든 부정의 출처를 추적하다가 그 온상을 국회로 지목한다. 

진실의 짜장면을 개발하여 정치인들에게 먹이면 부정을 이실직고할 것이라는 

황당한 상상력을 앞세워서 그들은 “혁명”을 하겠다며 국회의사당을 습격하기로 한다. 

폭탄을 만들고 유인물도 준비하여 철저한 예행연습을 거쳐 천신만고 끝에 그들은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한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헬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무대 배경의 영상에는 국회 본관에 들어가는 계엄군들의 모습이 보인다. 

노인 혁명군이 한발 늦은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투지가 하늘까지 닿았는가. 

아무튼 세상은 그들의 폭탄 없이도 뒤집혔다. 그들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이 시대 노인에게 씌워진 꼰대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까?



연극 <메멘토 모리>의 양로원 노인들이 외치는 “혁명”에는 이데올로기도 정책적 노선도 없다. 젊은 날의 삶에 대한 보상심리가 그들의 의식을 자극하여 폭발한 것이다. 설상가상 그들이 열심히 산 결과는 처참한 현실로 닥쳤다. 양로원은 그들을 이용하여 부당 이익을 취하고, 자식들은 부모를 양로원에 두고 재산을 상속받을 날, 즉 그들이 죽을 날만 기다린다. 이제 그들은 그 누구의 진심 어린 보살핌을 기대할 수 없다. 생명이 남은 동안 젊어서 못한 의지를 그들은 다시 불태우기로 한다. 왜 젊은 시절엔 용기를 내지 못했던가. 그러나 개인의 잘못만을 탓할 수 있는 시절은 아니었다. 그들이 이제라도 힘을 내어 자신의 목소리를 외치고자 함은 용기를 넘어 세대의 사명감이 되었다. 실제로 노년의 정치 참여는 요인이 다양하고, 경제 환경이나 사회적 위치에 따라서도 다른 경향을 드러낸다. 상당수의 노인은 이 연극의 몇몇 인물처럼 뚜렷한 소신 없이 부화뇌동 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종종 노인의 정치의식은 신뢰를 얻지 못한다. 하지만 이 연극의 노인들이 막연하게 외치는 “혁명을 할 겁니다”는 그 나름의 정당한 분노이며, 평생을 거쳐 시도하지 못한 자발적 저항이라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작 원작 '여자들만 사는 거리'  (1) 2026.01.29
나수민 '공구공삼 꿈'  (1) 2026.01.28
김숙종 '콜라소녀'  (2) 2026.01.27
김주희 '역행기(逆行記)'  (1) 2026.01.26
전서아 '무루가 저기 있다'  (1) 2026.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