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갓 태어난 조카를 보고 릴빗이란 별명을 붙인 이모부 펙. 릴빗은 자라나며
가족 중에서 펙 이모부와 친하게 지내게 되고 팩은 릴빗의 유일한 지원자가 된다.
펙은 외모도 근사하고 좋은 남편에, 동네 궂은일도 도맡아 히는 좋은 이웃이다.
하지만 그는 신비에 싸인 인물로 과거 상처를 안고 있고 한 땐 알코올중독자였다.
특히 그의 성 정체성은 애매한데 소아성애자이면서 또 동성애자라는 느낌도
배제할 수 없다. 그는 릴빗의 가슴이 봉긋 솟아오르자 그 가슴에 매혹되고 운전을
가르치면서 결국 어린 조카의 가슴을 만지는 성추행을 한다.
연극은 30대 후반의 릴빗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비밀을 털어놓겠다... 면서 어린 시절 펙과의 사이에 벌어졌던 일들을
차분히 고백하며 자신의 방황과 성장을 돌아본다. 이제 팩은 죽었고, 릴빗은 성인이다.
고백해 나가며 릴빗은 펙을 이해하고 용서한다.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 과거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펙을 자신처럼 상처 받은 존재로 감싸 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릴빗은 펙을 더치맨이라고 부른다. 더치맨은 유령선을 타고 바다를 떠돌다 뭍에
올랐을 때 한 여자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받으면 그 유령선에서 내릴 수 있다는,
그래서 자신을 사랑해줄 그 한 사람의 여자를 찾아온 바다를 헤매는 북유럽
전설의 인물이다. 릴빗은 더치맨 펙의 영혼을 차 뒷좌석에 태우고 드라이브를 떠난다.

이 작품은 1997년 바인야드 극단 제작, 마크 브로코 연출로 뉴욕 바인야드 극장에서
초연되었으며, 한국에서의 초연은 2012년 극단 TNT 레퍼토리 제작,
이지훈 연출로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이루어졌다.
작가 폴라 보글은 이 작품을 "러브스토리”라고 정의하며 용서, 치유, 앞으로 나아감에
관한 극이라고 했다. 그리고 2012년 뉴욕 공연을 앞두고 있는 이 작품에 대해 한마디로
"생존"에 관한 극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공연 제목은 <운전 배우기 - 그 은밀한 기억>
"이 작품은 90년대에 나온 최고의 작품 가운데 하나다.” - USA 투데이
"엄청난 성과를 거둔 작품, 진정한, 그리고 진정으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 빌리지 보이스

<운전 배우기>의 주제는 릴빗과 팩의 사랑, 그리고 릴 빗의 성장과 성숙이다.
이 사랑은 소아성애적인 것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점차 운명적인 사랑의 성격을 띤다.
이 작품에서 운전(driving)은 성, 사랑, 인생에 대한 은유다.
운전은 처음 배울 때 어렵고 서툴고 무섭지만 익숙해지면 아주 쉬워지고
즐거운 것이 된다. 그러나 운전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릴빗은 팩으로부터 운전을 배우며 차를 다루는 방법을 익혀 가고 남자를 다루는
방법도 익혀 간다. 두 사람은 운전자, 차, 길의 관계처럼 분리될 수 없는 관계가
되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분리돼야 하고 이것이 한 사람에게는 비극적인 죽음을
가져온다. 릴빗은 방어 운전을 익힌 것처럼 이 분리에서 살아남아 가족이라는
관계를 선택하고 어린 시절의 사랑과 상처를 극복 치유해 성숙한 성인이 된다.

시간 - 기억극
이 극은 릴빗의 회상으로 이루어지는 회상 극이다. 극의 시작 부분에서 릴빗은 비밀을 털어놓겠다고 하는데 이 비밀의 내용이 극 전체의 내용을 이룬다. 그것은 과거 24~25년전, 어린 시절에 일어났던 어떤 일이다. 따라서 릴빗은 내레이터의 역할과 인물의 역할을 동시에 한다. 작가는 또 이 작품에 "유방 극(Mammary Play)”이라는 표제를 붙였는데 이것은 릴빗의 아름답고 풍만한 가슴이 주제가 되는 극임을 암시하기도 하지만 또한 발음이 유사한, 기억이라는 말, 메모리(memory)를 떠올리게 함으로써 이 극이 사실은 기억 극, 회상 극(Memory Play)임을 나타낸다. 릴빗은 마치<유리 동물원>(테네시 윌리엄스의 2막 희곡이다. 톰이 자폐적이며 다리가 약간 불편한 누나와 강박적인 어머니와의 과거를 회상하는 극이다.)의 톰과 비슷하다. 톰 역시 내레이터와 인물을 동시에 연기하며 과거 회상을 통해 극을 전개시킨다. 이 작품과 비슷한 주제를 다룬 영화<The Reader>(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으로 2008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36세의 하나와 15세 소년 미하일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에서도 주인공 미하엘이 내레이터와 인물, 두 가지 역할을 하며 하나<Hanna>와의 사이에 일어났던 과거의 일을 회상하면서 영화를 전개시킨다.
이 극에서 다루는 시간은 1962년에서 1987년 즈음으로 릴빗이 11세에서 35세가 되기까지의 시간이다. 릴빗은 이렇게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에게 과거의 일, 어떤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극의 시간은 비논리적으로 혼재되어 있다. 마치 우리 기억이나 무의식이 혼재되어 있는 것처럼. 그리고 애초의 행위, 시발점이 되는 행위가 일어났던 11세 때의 일은 극의 전개에서 가장 마지막에 배치된다. 따라서 릴빗은 기억을 통해 과거의 시간으로 드라이브를 한다. 이 극에서는 여러 가지 교통신호와 자동차의 이미지들, 운전에 관한 주의사항들이 코러스에 의해서 발화되거나 프로젝터로 화면에 영사된다. 그럼으로써 시간의 흐름과 운전과의 관계, 극의 방향과 운전 방향의 일치를 꾀하고 있다. 운전자를 남자로, 자동차를 여자로 여기는 관습도 드러난다. 자동차는 이동 수단인 동시에 가장 사적인 공간, 가장 폐쇄된 둘만의 공간이 되기도 하는데, 펙은 이 공간을 조카에 대한 성추행의 공간으로 사용했고, 릴빗은 도주의 수단, 즉 펙과의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탈주와 해방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릴빗이 털어 놓으려는 비밀은 뭘까? 기억을 불러내어 무엇을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것은 팩이 운전을 가르치며 어린 자신에게 했던 어떤 일이다. 하지만 이것만이 비밀의 전부는 아니다. 이 일은 나중에 엄마나 이모에게 밝혀질 비밀일수 있다. 그렇다면 진짜 비밀은 뭘까? 그것은 자신만이 아는 어떤 것이다. 그것이 진짜 비밀이다. 그것은 팩의 접근에 자신이 암묵적으로 공모했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펙의 성적 접근에 희생자만은 아니라는것, 자신이 완전히 무죄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녀는 어느 정도는 스스로 그 접근을 허용했고 그 허용 속에서 펙을 통제했다. 그녀는 선을 그어 놓고 그 선 안에서 오히려 팩을 마음대로 다루었던 것이다.
펙이 죽고 난 후, 35세가 된 릴빗은 이 점을 말하고 싶었고, 펙의 과거 행동을 이해하며 그를 죽게 만들었던 것에 대한 죄책감과 슬픔을 토로한다. 비밀을 다 털어놓은 후 릴빗은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차에 올라 긴 드라이브를 떠난다. 이때 펙의 영혼이 차에 오르는데 그는 릴빗의 옆자리가 아니라 뒷자리에 앉는다. 백미러로 두 사람은 부드러운 시선을 교환하며 출발시킨다. 뒷자리에 앉는 펙은 이미 릴빗이 운전하는 차의 동승자이며 더 이상 어른이나 운전을 가르치는 입장, 혹은 근친 관계가 아니라 그녀가 운전하는 대로, 리드하는 대로 같이 길을 떠나는 동반자다. 우리는 릴빗의 마음이 펙의 영혼과 함께 편안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유방 극
유방극이라는 표제는 릴빗의 가슴, 그리고 기슴과 관련된 일이 그녀의 성정체성이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인간은 누구나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인생을 출발한다. 유방은 여성의 상징이다. 그리고 다시 유방은 유혹적인 성적 신체 부위가 된다. 아기에게 젖을 주는 생명의 유방은 좋은 가슴이지만 남자를 유혹해 위험에 빠뜨리는 가슴. 팜므파탈의 성격을 지닌 가슴은 나쁜 가슴이라고 불렸다. 유방이 납작할 때 여성은 위축되고 또 미의 기준에서도 제외되어 여성이 자신감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가슴도 나쁜 가슴일까? 이런 판단은 순전히 남성적 시각 기준이 만들어낸 편견이다. 릴빗의 가슴은 13세 때 이미 가장 아름다운 상태로 발육한다. 그러나 열한 살, 가슴이 막 봉긋하게 솟아오를 때 가장 가까운 남자, 아버지처럼 의지하던 이모부에게 성적으로 만져진다. 이 충격적인 경험은 릴빗이 자신의 가슴을 부정하고 혐오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자신의 예쁜 가슴에 전혀 자랑스러움이나 자신감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상황을 메리 제인 조크(Mary Jane Joke)라고 느끼게 한다. 남자들은 오로지 자신의 가슴에만 끌리고 자신의 가슴만이 자신의 존재를 대변하고, 진짜 자신은 그 뒤로 위축되고 소멸되는 느낌을 가진다는 의미다. 가슴에 대한 이런 부정은 결국 릴빗이 성과 그에 수반되는 느낌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 섹스 행위도 혐오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여성적 몸을 혐오하는 릴빗이 과연 남자를 성적인 파트너로 건강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녀가 선을 그어 놓고 백을 그 선 안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나, 다른 남자와의 가능성을 모두 배제 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음악
등장하는 많은 음악은 크게 두 가지 기능을 한다. 하나는 시대성을 부각하고 또 하나는 소아성애의 주제를 부각한다. 196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 모타운 송이나 샘 쿡의 소울 뮤직, 로이 오르빈슨의<스위트 드림스>나 마마스 앤 파파의<내 사랑에게 바친다.>등의 대중음악들이 그러하다. 또 다른 종류의 음악은 교회 합창곡과 경건하고 성스러운 음악이다. 이 음악은 펙과 관련 있는데 그의 사랑이 결코 소아성애인 변태적 사랑이 아님을 나타낸다. 하지만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음악을 사용해 펙의 양면성을 말해주기도 한다. 이 중 바그너의<방황하는 더치맨>의 선율은 팩이 바로 그런 "방황하는" 더치맨임을 아주 강하게 암시한다.

서사극적 기법과 연기
앞서 얘기한 대로 이 작품의 극적 테크닉은 서시극적인 것이다. 릴빗은 내레이터로 관객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것과 역할 속으로 들어가 인물을 연기하는 것을 반복한다. 우리는 이 릴빗의 이야기(고백, 회상) 속에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목격한다. 코러스들은 그 이야기 속에서 상황이 요구할 때 마다 릴빗의 엄마, 이모, 할머니, 할아버지, 십대 친구, 웨이터 등의 배역을 연기한다. 말하자면 그들 역시 코러스라는 기본 배역에서 다른 인물들의 배역으로 이동하며 연극 속에서 또 연극을 하는 극중극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은 사실주의 극에서 배우가 한 인물의 성격을 발전시키고 완벽하게 그 인물로 변화하도록 요구받는 연기와는 전혀 다르다. 사실주의 극은 막(Act)이 길고 배우가 긴 호흡으로 인물의 성격을 구축해나간다. 이때 인물이 관객에게 직접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대와 객석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제 4의 벽"이 있고 배우들은 마치 관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대가 실제 삶인 것처럼 모든 것을 사실로 믿으며 연기해야 한다. 이른바 스타니슬랍스키의 사실주의 극 연기 이론이다. 이때 관객은 무대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마치 과학자들이 현미경 아래 표본을 놓고 그것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본다. 관객은 불이 꺼진 어두운 객석에 조용히 앉아 불 켜진 무대 위를 지켜보는 것이다. 허구를 사실로 믿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서사극에서의 연기는 상황만을 전하면 되므로 역할 연기 만을 수행하면 된다. 객석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으며 직접 이야기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극에서 관객에게 직접 말하는 인물은 릴빗, 메리 이모, 그리고 펙이다. 릴빗은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고, 이모는 남편과 조카의 관계를 알고 그 속내를 관객에게 털어놓는다. 펙도 바비와 낚시하는 장면에서 관객과 직접 소통한다. 하지만 이 소통은 완전히 열려있지는 않다. 펙은 초반에 관객에게 말을 잠깐 걸기는 하지만 곧 바비와의 대화로 넘어가 그가 어떻게 어린아이들을 정답게 잘 살피고 사귀는지 보여준다. 이 긴 대사는 비극에서의 독백과는 다르다. 독백은 백퍼센트 완전한 진실이다. 여기 팩의 긴 대사는 그의 마음을 털어 놓는 진실의 독백은 아니다. 따라서 관객은 그를 다른 인물, 즉 릴빗과의 대화 속에서만 볼 수 있으며 그의 많은 점들은 불명확하게 미스터리로 남아있게 된다. 이는 펙을 모호하게 남겨두는 것으로 그에 대한 판단을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어 한 작가의 의도 때문일 것이다. 극 자체에서 어떤 결정이나 판단을 내리기를 유보하고 관객에게 넘기는 것 역시 서시극적인 테크닉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펙이 나쁘다고 말할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워할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고, 또 불쌍하지만 나쁘다고 할 수도 있다. 이렇게 팩을 밝은 조명 아래로 완전히 불러내지 않음으로써 그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게 만드는 작가의 극작 테크닉은 매우 뛰어나다. 릴빗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사이 펙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고민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시간을 비순차적으로 전개한 점도 이런 목적에 기여하고 있다. 만일 애초의 사건을 제일 먼저 배치한다면 펙이 아무리 친절하고 배려심 있는 좋은 남자라도 우리는 그를 사악한 가해자라고 먼저 도덕적 판단을 내린 채 팩을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비순차적 시간 속에서의 전개는 일단 우리로 하여금 팩과 릴빗의 관계의 자연스러움과 그의 평범함, 사려 깊음, 다정함을 보게 만들고 그런 관계 속에서 경계의 모호함과 힘의 역전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펙의 최초의 허물을 목격하게 함으로써 혼란과 충격을 경험 하게 되고, 이후 우리는 고민하고 슬퍼하고 아파하게 될 것이다.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게 되는 것이다. 보글은 이때, 우리 편견의 허점을 강하게 노출시킨다.

미스터리
가장 큰 미스터리는 앞서 말한 대로 펙의 과거다. 35세의 릴빗이 가장 묻고 싶어 하는 질문도 이에 대한 것이다. 두 번째 미스터리는 릴빗이 13세 때 펙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자고 제의하는 것이다. 릴빗은 엄마나 이모에게는 비밀로 하자고 하면서 만남을 제안한다. 이 제안은 순전히 "대화"를 위한 것이다. 말하자면 두 사람 사이의 새로운 계약이다. 그러나 왜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일까? 펙은 2년 전 자신을 성추행했던 남자다. 그 경험은 릴빗이 "이 일은 일어나지 않아" 라고 그 순간을 부인할 만큼 그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릴빗이 어린시절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펙에게 다가가 새로운 제안을 하는 이유는 뭘까? 그만큼 펙과 같은, 즉 자신을 지지해주고 사랑해주는 아버지 같은 존재가 자신에게 필요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도, 시무룩하고 술을 많이 마시고 우울한 펙이 안쓰러워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동정심, 혹은 사랑이 이런 제안을 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점을 작가는 모호한 채로 남겨 둔다. 엄마의 방임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릴빗이 일주일 쯤 바닷가에서 더 놀다 가겠다고 엄마의 허락을 구하는 짧은 장면에서 엄마는 처음에는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펙이랑 딸이 단둘이 대여섯 시간을 차 안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휴가지에서 가족들이 먼저 돌아가고 릴빗이 남는다는 뜻이다. 엄마는 펙이 딸에게 지나친 관심을 갖고 성적시선 을 보내는 것을 염려한다. 그러나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나면 네 책임”이라고 말하고는 이를 허락한다. 릴빗이 일주일 더 머물고 펙이 운전하는 차로 함께 돌아온다는 가정은 딸 이 팩과 남게 되고 단둘이 있게 된다는 뜻인데 왜 엄마는 자동차로 돌아오는 그 시간만 걱정하고 있을까? 이때 메리 이모는 어디로 간 것일까? 휴가지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펙의 고향 집이라고 해도 메릴랜드 릴빗의 집으로 돌아갈 때 왜 메리 이모는 엄마와 먼저 가는 것일까? 엄마가 우려 했던 사건은 결국 이 돌아오는 길에서 벌어진다.

미국 워싱턴 출신으로 1951년생이다. 가톨릭유니버시티 대학에서 학부를 마치고 코넬대학에서 영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영문학과에 가게 된 이유는 예일 대학 연극학과에서 낙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영문학과에서 문학과 인문학의 기초를 확실하게 닦고 많은 작가들을 공부하게 되어 작가가 되는 데에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보글은 한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보글은 뉴잉글랜드 명문 브라운 대학에서 20년간 교수로 있었으며 2008년 이후부터는 예일대학 드라마학부 극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부임 이후에는 영국의 극작가 톰 스토파드를 초청하기도 했다. 브라운대학 영문과 대학원 시절,"새 희곡 축제”를 만들어 진행하면서 이 프로그램을 미국 내 가장 우수한 희곡 창작 프로그램으로 확립시켰다. 이것은 프로비던스 시의 트리니티 극단과 협력한 결과이기도 하다. 당시 이 극단은 오스카 유스티스라는 연출가가 이끌어 가고 있었는데, 그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1990년 Tony Kushner의<미국의 천사들(Angels in America)〉을 연출한 실력파 연출가다. 이<미국의 천사들>역시 동성애와 에이즈를 다룬 작품으로 1993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보글은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로 브라운대학의 생물학과 교수인 앤 스터링과 결혼 후 아들을 입양해 키우며 동성애 부부로 살고 있다. 보글은 자신의 성적 취향을 일찍부터 알았는데 이러한 성적 취향이 연극계에서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그 돌파구를 연극에서 찾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녀는 퓰리처상 수상 당시 첫 레즈비언 수상자라고 언론의 떠들썩한 주목받기도 했다. 보글은<운전 배우기>로 1998년 퓰리처상을 수상함으로써 전국적인 명성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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