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스와보미르 므로체크 '스트립티스'

clint 2026. 1. 25. 11:15

 

 

두 명의 등장인물인 '가'와 '나'는 중년의 신사들로서 그들의 확고한 신념과 냉철한 
이성에 입각해서 결정한 행선지를 향해 걷고 있다가 갑자기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내동댕이쳐지듯 어느 방으로 쫓기듯 들어온다.
똑같은 차림을 하고 모습마저 흡사한 두 사람은 서로 비슷한 상황에서 만났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모두 빈틈없이 예정된 행로를 따라 걷고 있던 중이었다.
갑작스럽게 전개된 상황 속에서 그 방을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 지에 대해 
'가'는 그곳을 나가는 것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축소시키는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그곳에 있기로 하고 '나'는 바깥의 자유를 찾아 나가려 하지만 
그때 양쪽 문이 닫히면서 그들은 방에 갇히는 처지가 된다. 자신들이 갇혀있음을 
누군가에게 알리기 위해 '나'는 구두를 벗어 벽을 두드리게 되고 그러자 한쪽 문이 
열리며 문 사이로 거대한 손이 나타난다. 그 손은 그들의 구두와 허리띠를 요구하고 
두 사람은 별 저항 없이 그것들을 줘버린다. 허리띠를 뺏겨 흘러내리는 바지를 입고 
있다가 갑자기 어부 흉내를 내면 어떨까하는 '가' 의 제안에 '나'는 바지를 걷고 
윗도리를 뒤집어 입고 양말을 벗은 채 의자에 올라가 "배를 저어가자, 험한...." 하며 
노래를 부른다. 노래가 거의 끝나갈 무렵 다시 문이 열리고 예의 그 손이 나타나서 
그들의 윗도리와 바지를 요구한 뒤 사라진다. 그들이 팬티만 걸친 채 서로 상대방을 
탓하고 있을 때 손이 다시 나타나 그들에게 수갑을 채우고 사라진다.
행동의 자유를 잃어버린 두 사람은 이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손에게 사과하기로 
결심한다. 무엇에 대해 사과해야 할 지도 잘 모르는 채, 그들은 걸어다녔던 것에 
대해서, 존재했던 것에 대하여 용서해주기를 빈다. 그들이 손에 키스까지 할 때 
반대편 문이 열리면 또 다른 손이 나타나고 첫 번째 손은 두 사람의 머리 위에 
종이로 만든 원통을 씌운다. 결박된 채, 앞까지 안 보이게 된 그들은 더듬거리며 
그들의 가방을 찾아서는 두 번째 손을 향해 비틀거리며 나아간다.

 



이 작품 <스트립티스>는 어떤 모호한 외부적인 힘에 별 저항 없이 복종하는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블랙 코미디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스트립티즈'와 반대로 남자들이 옷을 벗는 코믹하면서도 
부조리한 극 상황은 이 극을 블랙 코미디로 만들고 있다. 어떤 알 수 없는 모호한 
힘에 의해 방에 갇히게 되고 옷을 뺏기고 수갑이 채워지며 앞이 안보이게 되는 
상황은 공산주의 체제와 같은 통제된 사회에서 행동의 자유와 비판의 자유를 
상실한 채, 체제에 순응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우의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에 있어서 '가'와 '나'는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가'에게 있어 저항은 선택을 의미하고 그것은 자신의 내적인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외적으로는 비록 부자유할 지라도 
내적인 자유는 잃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무저항과 무행동을 합리화한다. 
반면 '나'는 행동은 하지만 그 행동의 결과로 손이 나타나자 손의 요구에 별 저항 
없이 복종하고 만다. 이로 인해 '가'는 "적은 노력, 똑같은 결과를 내세우며 자신의 
태도가 우월하다고 주장하게 된다. 이처럼 행동을 하든 하지 않든 결국은 똑같은 
상황에 처하고 마는 것은 그들이 입은 옷만큼이나 두 사람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 극을 통해 작가는 외부의 힘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거나 혹은 하더라도 
매우 소극적이어서 결국은 같은 결과를 낳는 지식인들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작가 스라보미르 므로체크(Slawomir Mrozek, 1930∼ 2013)는 1973년 프랑스로 귀화한 폴란드 태생의 극작가이다. 처음엔 신문기자로 시작하였으나 <코끼리>(1956)라는 소설과 <경찰>(1957년)이라는 희곡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고, 1964년에 발표된 <탱고>로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한편 그는 1968년의 소련과 폴란드의 체코슬로바키아 개입에 항의하며 반체제적인 인물이 된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알레고리는 종종 외적인 힘에 의해 짓밟히는 개인을 암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경험한 공산주의 체제하의 폴란드라는 상황과 연관시킬 수 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스트립티즈"와 반대로 사람이 옷이 벗겨지는 코믹하면서도

부조리한 극 상황은 이 극을 블랙코미디로 만들고 있다.

어떤 알 수 없는 모호한 힘에 의해 방에 갇히게 되고 옷을 뺏기고 수갑이 채워지며

앞이 안보이게 되는 상황은 공산주의 체제와 같은 통제된 사회에서 행동의 자유와

비판의 자유를 상실한 채 체제에 순응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우의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원작의 내용을 사람과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의 부재에 의한 오해와

그러한 상황에 따른 의식의 흐름에 더욱 중점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서, 원작에서는 거대한 압력인 상징인 ‘손’의 존재를 단순한 압력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하나’와 ‘둘’이라는 인물 스스로가 자신들이 갇혀 버렸다는

인식에서 발생한 불안과 공포 속에서 만들어 낸 하나의 거대한 상상력의 존재로

규정하고, 그들 나름대로 거인 ‘손’의 행동을 해석해 냄으로서 벌어지는 해프닝에

주목하는 것이다. 또한 최근의 추세가 남자2명이 아니라 남, 여, 여자2명이 나와

성별에 관계없이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거대한 '손'도 등장시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