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인 크리잔더는 자신의 아들인 '젊은 학자' 다미스를 후견인 율리아네와
결혼시키기로 한다. 그는 소송을 통해 소녀의 잃어버린 재산을 되찾을 수 있다는
문서를 발견했기에. 하지만 다미스는 그 일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여성 자체가 특히 율리아네에게 혐오스럽기 때문이다. 그는 베를린에서 올 편지를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거기에는 분명 학술원의 경연대회에서 그의 수상 소식을
알릴 것이라 믿는다. 한편, 부친은 젊은 상인인 팔러가 도착해 그에게 율리아네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그녀와 결혼 승락을 청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유산을 상속받게
된 율리아네를 다미스와 맺어주도록, 하인 안톤에게 아들이 율리아네와 결혼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라고 지시하고 보상을 약속한다.
하녀 리제테가 주선한 연인들 사이에 대화가 벌어지고, 율리아네는 양부에 대한
의무감 때문에 다미스와 결혼을 결심한다고 말한다. 절박한 팔러를 돕기 위해
리제테는 크리잔더에게 위조된 편지를 제안하며, 안톤은 위조 작업을 진행 중인
리제테을 만나고, 둘은 실제로 서로를 사랑하지만 안톤이 리제테에게 끌려다니는
형세다. 리제테는 이제 다미스를 감시하고 그에게 율리아네을 나쁘게 보이려 한다.
다미스도 자신의 주관보다는 아버지의 강요와 철학적으로 기가 센 아내가 도움이
된다는 명분으로 승락한 것이기에 율리아네의 결혼을 둘러싼 암투가 전개된다.
팔러는 다미스와 개인적으로 화해하려 하고, 자신을 위해 결혼 계획을 포기하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다미스는 그를 거절한다.

이제 리제테가 다시 개입해 안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가짜 편지를 집주인에게
전달하게 하는데, 그 편지를 받은 크리잔더는 아들의 결혼을 만류하려 하지만,
이는 그의 결정을 더욱 굳게 만든다. 팔러는 이제 떠나고 싶다는 소식을 접으며
그들의 논쟁에 끼어든다. 하지만 크리잔더는 율리아네에게 다시 희망을 주며
마음을 바꿨다고 가장한다. 율리아네는 후견인의 변화를 알게 되자, 사기의
수혜자가 되고 싶지 않아 다시 팔러와의 결혼을 포기한다. 하인들이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모든 노력은 실패했다. 다미스는 이제 오래 기다리던 편지를 받는데...
알고 보니 그는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고, 돕기로 한 친구는 다미스의 논문이
주제에서 벗어났고, 게다가 타 논문의 표절로 인해 조롱받지 않기 위해
그의 논문을 보류했는 것이다. 다미스는 자기 기만의 세계가 무너진다.
하지만 꿈은 크기에. 그의 천재성이 오해받는 것은 독일 학계의 어리석음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결혼이고 뭐고 집을 떠나 외국을 보고 배우겠노라고 떠난다.
율리아네와 팔러는 다시 함께할 수 있게 된다.

<젊은 학자>는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이 1747년에 완성하고 1748년 노이버 극단에 의해 초연된 3막 희극이다. 청년 레싱이 라이프치히 대학 시절에 완성한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당시 희극의 특징이던 전형희극 형식을 따른 풍자성격이 강한 작품으로 1748년 1월, 라이프치히에서 카롤리네 노이 극단에 의해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줄거리와 시간, 장소의 통일성을 갖춘 3막 형식으로 고전적 극 형식을 지키면서도 이탈리아 희극인 코메디아 델 아르테의 즉흥성, 비희극적인 진지한 인물의 활동으로 당시 희극 형식의 폭을 확장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젊은 학자>는 인물의 전형성을 이용하여 웃음을 통한 비판의 대상을 분명히 하고 적절한 희극적 언어기법을 활용한 전통적인 고전 희극의 특성을 갖춘 작품이다. 19살의 청년 레싱의 첫 작품이지만 이 희극은 습작의 수준을 넘어서는 작품으로, 일차원적인 웃음이 아니라 인간의 결함을 폭로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삶의 거울로서 회극 본연의 기능인 사회 비판적 기능을 수행한다. 레싱은 진정한 학문의 자세와 더불어 합리적인 사고, 유연한 삶의 태도 등 사회와 화합하며 살아야 할 사람의 올바름에 대해 묻는다. 지식인 풍자와 함께 이러한 주제 또한 현 시대에도 보편성을 갖는 것으로 <젊은 학자>는 여전히 시의성이 크고 공연 가능성이 충분한 고전 희극이라 할 수 있다.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Gorthold Ephraim Lessing, 1729-1781)
레싱은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신학과 의학을 공부했으나 자유로운 작 가가 되고자 했다. 레싱은 1748년에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신문과 잡지 에 평론을 기고하며 비평가로서 자리를 잡는다. 문학 활동 초기, 청년 레 싱의 관심은 연극과 희극에 있었다. 당시 레싱의 꿈은 독일의 몰리에르가 되는 것이었고, 그는 풍자를 통해 인간의 비합리성을 폭로하는 희극에 집중했다. 이 시기에 레싱은 7편의 희극, <젊은 학자>(1747), <다몬 또는 진정 한 우정>(1747), <여성혐오자>(1747), <노처녀>(1748), <유대인>(1749), <자유 신앙주의자>(1749), <보물> (1750)을 완성한다. 그러나 레싱의 희극을 향한 열정은 그의 문학 작업 후기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지는 않았다. 비록 후기 이 걸작 희극 <민나 폰 바른헬름> (1767)이 나오긴 했지만 레싱의 관심은 외국에서 비극으로 옮겨 갔다. 18세기 중엽, 레싱의 등장은 독일 고유의 국민문학이 기틀을 잡게 되는 혁명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레싱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의거한 시간, 장소, 줄거리의 3통일 규칙이나 미국의 주인공은 영웅이나 높은 재위의 인물이어야 하고 희극의 주인공은 평범한 계급의 인물이어야 한다는 계층조건과 같은 희곡문학의 규칙들을 비판하고, 특히 비극을 사실적이고 시민적인 국민비극으로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비극의 구조를 개선하고자 한 그의 노력은 '시민비극'의 완성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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