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디터 히르쉬베르그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clint 2026. 1. 27. 16:01

 

 

고교를 갓 졸업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독일 작가 디터 히르쉬베르그의 작품을 한국실정에 번안한 작품이다.

윗동네에 사는 성로는 대학 신입생이다. 아랫동네의 같은 또래의 여자 깜숙과 만나

배드민턴을 치다가 멋지도 만나게 되고 껄렁한 남자들 건우, 쪼랑, 남색을 사귀는데

이들은 부자 동네에 살며 대학(의대)에 다니는 성로를 싫어하지만 깜숙과 멋지가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깜숙과 멋지는 경쟁적으로 성로를 좋아하고

성로는 대학에서 취미로 기타를 배운다며 노래를 부르는데,

(작품에 몇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BG로 나온다, 1960~70년대의 팝송들이다)

제목과 같이 17, 18, 19살 청소년들인 이들은 같이 어울려 술래잡기 놀이도 하고

돈이 생기면 게임장에 가서 놀기도 한다. 그리고 주린이란 비슷한 나이의

여자애가 나오는데, 과부인 엄마 밑에서 동생들을 돌보고 있고, 엄마 몸이 불편해

거의 잔소리를 들으며 집안일을 전담하는 장녀이다. 우연히 이 집에 들러

아래로 떨어진 옷가지를 전해주러 온 성로가 과부와 말 상대하며 주린을 살핀다.

과부의 부탁도 있고 해서 몇 차례 만난 이후 외톨이로 성격도 모난 듯한

주린의 마음이 조금씩 열린다. 그러나 시기하는 동네 애들, 특히 깜숙과 멋지는

주린과 성로의 만남을 질투하고

어느 날 건우(멋지의 친오빠)와 멋지의 집에서 파티를 열게 된다.

건우와 멋지의 부모가 친척집에 방문하여 집이 비게 된 것이다.

소맥술을 마시고 춤추며 신나게 노는 와중에 멋지는 성로를 유혹하고,

플레이보이 남색은 술에 취한 깜숙을 범한다.

성로는 이 분위기가 싫어 도망가듯 나간다.

동네 애들은 대학에 진학할 형편도 안 되지만 더 공부할 마음도 없어

남자들은 공장에 다니거나 하고 여자들은 상점 점원으로 나서

적은 월급이나마 받아 어울려 노는 그런 생활을 한다.

주린도 공장에 취직해 일하는데 종일 쇠조각을 만지는 작업이라 힘들단다.

성로가 저녁이면 만나 주린을 달래주며 주린이 차츰 마음을 열고 둘은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이를 시기하는 동네 애들은 성로를 폭행한다.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른 후, 동네 애들은 여전히 어울려 다니고

그새 남색은 깜숙을 버리고, 멋지와 사귀고, 깜숙은 쪼랑을 만난다.

깜숙과 멋지의 대화에서 주린의 근황이 나온다.

주린이 소녀원에 가 있단다. 그렇게 이 동네를 떠나고 싶어하던

주린이 무슨 죄를 지은 걸까?

성로와는 어떻게 되었을까…?

 

 

 

극단 우리 극장이 1988년 11월 초연 공연한 고금석 연출의 청소년 연극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은 디터 히르쉬베르크(Dieter Hirschberg)라는 독일작가의 원작을 우리 상황에 맞도록 나이라든지(원작은 15, 16, 17살), 이름 및 장면 등에서 약간의 번안 수정을 거쳐서 무대화된 작품이다. 기층 청소년들의 떼 그룹 문화를 사실적으로 구체적으로 제시해 보이는 이 작품은, 지금까지 공연되었던 몇 편의 청소년 연극작품에 비해, 이들 문화의 실체와 그 문제점들을 상당히 복합적으로 펼쳐보이는 특징이 있다. 사춘기 시절의 남녀심리, 즉 한 의대생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세 여자애들의 질투, 열등감, 사랑의 문제라든가, 사춘기 소년들의 성충동및 심리, 장래 문제및 놀이터를 차지하려는 청소년들간의 소유권 싸움 등 수많은 삽화적 장면으로 구성되는 작품은, 서구청소년 문화의 한단 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연출은 많은 동작과 빠른 스피드를 기본으로 청소년들 취향에 맞는 생동감 있는 공연을 무대화하고 있으나, 아쉬운 점은 원작에서 복합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서구 청소년 문화가 본질적으로 지니는 문제점들이 너무 소홀히 처리되어 버린 반면 책임 의식이 수반되지 않은 성개방의 풍조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무대화 된 것 같다는 것이다. 상대를 가리지 않는 쾌락추구 풍조, 한 상대를 둘러싼 애정 쟁탈전, 둘이 좋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연애도피 행각 등은 일반적인 차원에서 볼 때, 서구적 청소년 문화의 현실에 더욱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쾌락추구의 성 개방풍조를 다루는 서구의 청소년극을 한국화하여 무대화했을 때, 그것이 곧 우리의 청소년문화의 실체인가 하는 문제다. 물론 예술작품이 지니는 문화적 특성과 그것을 초월하는 보편타당성의 문제를 고려할 때, 이 작품에 투영된 청소년들의 모습에서 우리 청소년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문제가 전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일반 연극과 달리 청소년 연극은 어떤 형태로 표현되건간에 교육적 혹은 문제 해결적인 목적 지향성이 더욱 뚜렷한 점을 감안해볼 때, 이러한 서구적 성 개방화의 현 실을 그리는 연극이 우리 청소년들에게 오히려 책임의식 부재의 성개방화를 부추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이러한 점은 작품의 종결부에 대한 소홀한 처리에 의해 서도 다시 강조가 되는데, 과부 딸인 소영과 의대생 철호는 장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 없이 사랑의 도피행각을 하고  청소년 인하는 소영의 어머니인 과부여인과 장난 섞인 정사를 하는 장면으로 돌연 스토리가 끝나고, 그 뒤를 이어 캐스트가 모두 무대에 등장하여 디스코 춤을 추는 장면이 공연의 실제적인 끝을 이룬다. 원작을 1시간 반의 공연으로 축소하는 작업의 결과였는 지 알 수 없으나, 연출이 종결부의 처리문제에 대해 상당히 고심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수수방관식의 끝맺음 보다는 어떤 방식으로든 연출의 주관적 비전을 보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무책임한 성개방의 분위기를 적절히 견제시켜서 궁극적으로 청소년들에게 삶에 대한 긍정적인 비전을 확인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철호와 소영의 사랑을 더욱 순수한 것으로 강조하거나, 아니면 원작이 제시하는 여러 다른 문제점들을 균형있게 강조 무대화하는 것이 아니었나 한다. 민주화와  개방화가 일반 목적으로 긍적적인 의미로 통용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구시대적인 혹은 교과서적인 발상인지는 알 수 없어도, 특히 청소년 연극에서 무분별한 개방화의 강조는 숙고되어야 한다고 보며 또한 외국의 청소년 문화의 현실을 그린 작품을 무대화할 때, 상당한 사회적 문화적 감수성의 발현이 요구된다고 본다. (심정순, 연극평론가) 

 

작가 디터 히르쉬베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