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녀 두 명이 있다. 친자매다. 명희와 선희다.
마담이 외출한 집은 하녀들의 세상이 된다. 마담이 만든 마담의 공간에서
두 하녀는 역할을 바꾸어가며 은밀한 연극놀이를 한다. 마담이 되어 자신이 꿈꾸는
자신이 동경하는 삶을 흉내내기도하고 하녀로서 마담에게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자신들이 원하는 결말로 연극을 끝내지 못한다.
한통의 전화가 걸려오고 두 하녀는 자신들의 놀이를 끝내야하는 순간이 다가온다.
그들의 신분에서 해방되기 위해 여주인의 암살을 시도한 것이다.
여주인에 대한 질투로 그 애인을 모함하여 거짓 편지를 경찰서에 보내게 된다.
애인이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게 되고 하녀들은 그들의 성공한 것에 기뻐한다.
그러나 애인이 풀려나왔다는 전화가 오고 극은 반전을 겪게 되는데...

<하녀들>은, 기존 사회의 중심을 이루는 인물들(마담, 무슈)과 그 중심을 벗어나 소외되어 있는 자들(하녀들)을 동시에 제시하는 최초의 작품, 즉 이른바 쥬네의 이원적 세계관과 정확히 부합하는 작품이다. 그의 다른 희곡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소외된 자들(하녀들)이 기존 사회의 중심(마담과 무슈)에 대해 벌이는 반란과 모반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이 작품은 분명히 현실 세계에서 그들이 행하는 모반이 실패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주요 원인은 기존 질서에 대한 동경이나 환상의 추구이며, 이런 점에 볼 때 이 <하녀들>에 나타나는 소외된 자들의 태도는 성숙되어 있지 못하다. 그러나 형식적인 차원에서 볼 때 <하녀들>은 현실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허구 세계를 확립하고 있다. 즉 철저한 허구성을 허구 세계의 정체성으로 추구한다든가, 쥬네 특유의 시적인 대사와 상징, 또한 의미와 관계없는 성희의 운율 등을 교묘히 사용함으로써, 또 그렇게 하여 확립된 허구세계를 거울의 형상이나 극중극의 수법을 이용하여 무한히 분화시킴으로써 진정으로 허구 세계다운 허구 세계를 만들어 낸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비록 마담에 대한 하녀들의 모반은 실패했지만 현실세계에 대한 허구세계의 반란 내지 혁명은 그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하겠다.

<하녀들>은 당시 프랑스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던 이른바 '자매 사건'에서 소재를 구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것은 크리스틴과 레아 빠뺑이라는 자매가 자신들이 7년 동안이나 하녀로 일하던 집의 여주인과 그 딸을 살해한 뒤, 자기들 방에서 동성애를 즐기다 발각된 사건이었다. 그래선지 <하녀들>에도 두 하녀가 등장하여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는 주인 마담에 대해 모반을 꾀한다. 연극이 허구이고 따라서 뭐든 가능하다면, 더욱이 극중극에서 불가능한 일이 있을 리 없다. 그러니 원래 연극 차원의 마담과 하녀조차 과장되어 있었다면 극중극에서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번역, 번안의 글 - 오세곤
내가 쥬네를 처음 접한 것은 1976년 그러니까 대학 시절 몇 몇 선배들과 함께 속해 있던 아마추어 극단 예맥에서 <하녀들> 을 연출하면서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이 배우들에게 거짓말을 밥먹듯 해가며 연출의 권위로써 모든 것을 얼버무렸으니 그 공연의 수준이 어땠는 지 는 거론할 가치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당시에 느꼈던 부끄러움과 회한은 이후 대학원에서 쥬네를 전공하는 계기가 되었고, 아직까지도 쥬네의 희곡과 씨름을 하고 있는 원인이 되었다. 이제 명색이 쥬네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새로이 <하녀들>을 번역하며 가장 신경을 쓴 것은 대사간의 계기적 연결이다. 즉 모든 희곡의 대사는 비록 그것이 부조리극이라 할지라도,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과, 우리에게 소개된 서양연극 중 상당 부분이 이러한 계기성이 결여된 번역으로 말미암아 공연히 난해하다는 오해를 받고 있으며, 특히 부조리극은 예의 '부조리'라는 어휘 때문에 마치 이유없는 대사가 가능한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 역시 커다란 오류라는 확신을 가지고 번역에 임했다. 그러나 쥬네 희곡에 대한 분석은 이러한 계기성을 파악하는 일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의 희곡은 분석의 단계를 거듭할 수록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의미를 드러낸다. 하지만 그 모든 의미를 찾아내고, 또한 그것을 모두 무대에 제시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따라서 쥬네의 희곡을 공연하기 위해서는 모든 대사가 지니고 있는 분명한 이유를 찾아내려는 용기도 필요하 지만, 분석의 단계를 심화시키면서 알맞은 정도에서 그 단계를 마감하는 절제심 또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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