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앙토넹 아르또 '쌍씨'

clint 2026. 1. 23. 08:27

극단 반도의 '90년 12월공연이 한국초연이다.

 

쌍씨왕은 그의 폭정과 독선에 대항하여 반기를 든 반란 신하들을 죽인다.

교황은 쌍씨의 살인행위를 사면해주는 대신 쌍씨왕의 영토를 바칠 것을 요구한다.

쌍씨는 이에 반대하여 교황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다. 그는 자신의 아들들을 죽여

그 시신을 신하들에게 보이며 교회에 대항하는 악의 구현을 맹세한다.

쌍씨는 악을 구현할 대상으로 그의 딸 뻬아를 소유하길 원한다.

뻬아는 쌍씨의 추적을 피해 도망다니고 루크(쌍씨의 후처)는 자신의 어머니가

쌍씨의 전처였음을 알게 되어 경악한다. 또 다른 젊은 신하들은 까밀로와 만나

쌍씨에게 반란할 것을 모의한다. 결국 뻬아는 쌍씨에게 능욕을 당하고 그녀의

약혼자인 오르시와 함께 쌍씨를 암살할 것을 결심한다.

한편 까밀로는 젊은 신하들에게 쌍씨가 그의 악행으로 인해 교황으로부터 파문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들은, 반란계획은 어쩌면 까밀로의 계략의

일환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는다. 쌍씨를 죽이려 하던 뻬아는 어쩔 수 없는

힘에 의해 칼을 떨어뜨리고 결국 쌍씨는 신하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까밀로에 의해 체포되고 모두 처형당한다. 처형장에서

뻬아와 루크는 전염병처럼 세상을 휩쓰는 악에 대해 경종의 독백들을 내뱉는다.

 

 

 

아르토의 <쌍씨>는 그의 이론과 주장을 실제로 실천해본 유일한 작품으로, 

1935년 그가 직접 쓰고 연출하고 주인공 쌍씨 역까지 맡아 했던 연극이다.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시대에 살았던 쌍씨 백작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 희곡은 셸리의 동명 희곡과 스탕달의 쌍씨 가(家)의 기록 발췌 문을 근거로

해서 쓰여진 작품인데, 쌍씨 백작은 무수한 사람을 죽이고 심지어는 두 아들까지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딸마저 능욕을 한 최대의 악(惡)의 화신이었다.

이 딸의 어머니인 현 백작부인도 실은 쌍씨 전처의 딸이었다.

결국 그는 자객에 의해 피살되고 아버지를 죽이려다 못하고 대신 죽은 시체에

칼질올 한 딸은 고문대에서 처형된다.
살인, 근친상간, 간음. 아버지 살해 등 인간의 극악한 범죄를 다룬 이 작품은 

초도덕적인 인간의 무의식의 세계를 열어 보이고 있다. 

그것은 가족, 사회, 정의, 교회 등 관습적인 가치를 난폭하게 공격할 뿐만 아니라 

전혀 양심의 가책이나 참회를 느끼지 않는다. 

자연인 폭풍우가 전혀 선악의 구분이 없듯이.

 

 

 

교황과 왕권의 충돌, 독재와 음모, 독재자 쌍씨의 도덕에 대한 반기와 몰락 등의 얘기를 의식(儀式) 같은 몇 개의 장면으로 구성한 이 무대에서 연출은 기괴한 그림의 배경막, 높은 신, 넓은 어깨로 크게 만들어 놓은 코러스, 장식과 색조가 묵직한 의상과 분장, 웅변조의 높은 음조로 외치는 배우들의 발성과 어조 등으로 거대한 양식화에 무척 힘을 기울였다. 연출의 양식화에 대한 의지는 장식이 많고 화려한 쪽으로 갈 수 있을 만큼 가보자는 것 같았다. 그것은 바로크 양식처럼 거대해지려는 노력, 로코코 양식처럼 많은 장식을 원하는 마음같았고 증폭·확대·과장에 대한 욕구 같았다. 그런 욕구는 굵은 붓으로 서툴게 비뚤비뚤 그려놓은 선처럼 어둡고 강한, 그러나 정리되지 않은 지저분함이 많은 무대, 긴장이 아닌 경직이 앞선 무대로 드러났다. 바탕골 소극장의 비좁은 무대와 이 작품의 크기를, 할 수 있는 만큼 어색하지 않게 조화시켜보려는 노력이 여러모로 울근불근 치솟는다. 아르토의 연극이 흔히 ‘잔혹극’이라는 용어로 불리면서 여러 가지 오해를 낳고 있으나 아르토가 내세운 연극론의 본질은 오랫동안 문학에 종속당해온 연극을 연극 본래의 속성으로 귀속시키는 것이다. 아르토는 연극이 지나치게 대사에 의해 주도됨으로써 말과 작가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에 반대하고 대신 음악, 춤, 회화, 마임, 제스처, 영창, 주문, 건축구조물, 조명 등에 의해 복합적으로 구성되는 ‘공간의 시’로서의 연극을 제기했다. 그는 또한 연극을 성스러운 제의라 생각하고 신화의 주술과 마력의 세계를 통해서만 이 현대인은 억압에서 깨어나 인간의 창조능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것은 공포와 잔혹의 방법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쌍씨>는 바로 이러한 아르토의 이념들이 반영된 유일한 장막희곡이다.

이 작품은 악의 화신인 쌍씨왕이 기독교적 억압에 대항하면서 자신의 가족들에게

저지르는 끔찍한 반인륜적 악행들로 가득 차 있다.

이 극단 반도의 초연 공연을 통해 나타난 아르토 연극의 실상은 문학적 연극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이 작품은 여전히 스토리 중심이며

언어는 지극히 시적이다. 아르토는 자신의 혁명적인 연극이념을 당대에는

자신의 작품에서조차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으며, 그 이후 20세기 후반의

전위연극들에 의해 계승되어 참 빛을 발했다 볼 수 있다.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 1896~1948)
프랑스의 극작가, 시인, 배우, 초현실주의 운동의 이론가. 부르주아적인 고전극을 ‘잔혹극’으로 대치하여 인간의 잠재의식을 해방하고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한 원시 의식적인 체험을 시도했다. 그의 부모는 레반트 지방 그리스인의 혈통을 일부 물려받았고, 그는 이러한 배경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그가 신비주의에 끌렸던 것은 그러한 영향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평생을 정신질환으로 고생한 그는 여러 차례 수용소를 들락거렸다. 초현실주의 경향의 시 작품인<성소의 중심(L'Ombilic des limbes)>(1925),<신경체계(Le Pèse-nerfs)>(1925)를 영향력 있는 비평가인 자크 리비에르에게 보냈고, 이때부터 그 둘 사이에는 오랜 세월에 걸친 서신왕래가 시작되었다. 파리에서 배우 수업을 마친 후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경향이 짙은 오렐리앙 마리 뤼네 포의 외브르 극장(Théâtre de l'Oeuvre)에서 처음으로 공연했다. 초현실주의의 지도자였던 시인 앙드레 브르통이 공산주의를 옹호하자 이들과 결별했다. 초현실주의 운동이 지닌 힘은 정치와 무관한 것이라고 믿은 그는 또 한 사람의 이탈자인 극작가 로제르 비트라크와 합류하여 알프레드 자리 극장에서 활동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의<잔혹극 선언(Manifeste du théâtre de la cruauté)>(1932),<연극과 그 이중(Le Théâtre et son double)>(1938)은 배우와 관객이 마귀를 쫓는 마술적인 의식 속에서 일체가 되는 것을 추구한다. 배우의 몸짓, 효과음, 기이한 장면과 조명이 합쳐져서 말보다 더 뛰어난 언어가 생겨나며, 그 언어를 사용해서 사상과 논리를 뒤엎고 관객에게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의 천박성을 보여줌으로써 충격을 주려는 것이다. 그 자신의 작품들은 이론서만큼 중요하지는 않으며 모두 실패작이었다.<쌍씨( Les Cenci)>는 1935년 파리에서 공연되었는데 그 당시로서는 너무나 대담한 실험작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장 주네, 이오네스코, 사무엘 베케트 등의 ‘부조리극’을 비롯해 당시 연극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던 언어와 합리주의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했던 모든 예술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