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는 1910년 8월 29일 한일 강제 병합일 저녁, 막 문을 닫으려는 시각에
노인이 한성의 한 사진관을 방문한다. 노인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비
명성황후의 사진을 찾고 있다. 사진관을 지키던 사진사는 아마도 왕비의 사진은
없을 거라고 답하고, 노인은 왕비의 국상이 어떻게 치러졌는지를 궁금해 한다.
노인과 사진사는 왕비에 대한 서로의 기억을 돌아보는데…
극은 우리를 1897년 명성황후의 국장일로 데려간다. 조선은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고, 고종은 실제 왕비가 죽은 해로부터 2년이 지난 1897년 11월 22일을
왕비의 국장일로 선포한다. 왕비는 친일내각에 의해 폐위당한 채 정식 장례절차를
치르지 못한 상황이었다. 사진사 휘는 황후 살아 생전 악연을 맺은 인물이다.
임오군란 당시, 피난 온 왕비의 신분을 모른 채 내뱉은 험담으로 인하여
휘의 고향집은 부서져 사라지고, 어머니는 매 맞아 죽었다.
어머니를 죽게 한 왕비에게 복수하기 위해 휘는 왕실 사진사의 조수로 들어가
기회를 엿본다. 한성순보 기자로 조선에 들어온 일본인 기구치는 신분상승을
꿈꾸며, 대본영으로부터 내려온 왕비 암살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왕비의 사진을
구하려 애쓴다. 사진관에서는 조선풍속을 담은 세트를 배경으로 궁중예복 차림의
궁녀 선화가 사진을 박는다. 선화는 휘의 정혼자이기도 하다. 왕비는 자신의 얼굴을
궁금해하는 외국 언론과 국내외 정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진 박기를
거부해왔는데, 왕비의 사진을 구했다고 주장하는 일본인이 나타난다.
1895년 을미사변의 밤, 비극의 희생양을 향한 거친 발걸음이 다가오고 있다.

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는 열강들의 칼날 위에 위태로운 생을 살았던
'명성황후'를 새롭게 그린 작품으로 기존 뮤지컬 <명성황후>와는 전혀 다른
스토리의 공연이다. 즉, 명성황후의 역사적 일대기가 아닌 1930~40년대 일제
강점기 시대의 낡은 천진 사진관을 배경으로 그녀의 남겨지지 않은 사진에 대한
미스터리한 에피소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최근 실제 명성황후가 시해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문서가 추가적으로 발견되면서,
그녀의 시해를 둘러싼 진실공방이 또다시 재현되고 있는 가운데, 이 작품은 봉건의
환경을 뚫고 근대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찾고자 했던 그녀의
'잃어버린 얼굴'을 찾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한국 대표 여성극작가 장성희 작가가 대본을 맡아 그간 명성황후의 영웅적 해석이
아닌 당시 환경 속 한 여성으로서의 그녀의 삶을 집중적으로 재조명한다.
이번 작품을 통해서 이지나 연출은 당시의 조선 땅에서 한 여인에 대한 똑같은 평이
없었던 명성황후의 이야기를 모던하고 파격적인 드라마형식으로 보여준다.

명성황후... 어떤 이는 '민비'라고 칭하고, 어떤 이는 '명성황후'라는 호명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도 한다. 명성황후는 잊고 싶은 우리 역사의 부끄러운 일면이면서
한편으론 기억해야할 야만성의 희생양이기도 하다. 민중사관의 입장에서 보자면
'가해자'일 것이고,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외세제국주의자들의 야욕에 스러진
'피해자'이기도 하다. 민비와 명성황후... 역사 이래 이토록 양가적 감정을 일으키는
인물이 있었던가? '천하의 악녀'라는 부정적인 감정에서부터 조선의 마지막 국모'라는
무게까지 안고 있는 인물, 봉건적인 입지 속에 안주했지만 다른 한편 근대의 주체가
되려고 몸부림친 여자.. 만일 우리 역사에 극복되지 못한 콤플렉스가 있다고 한다면
그 중 하나가 명성황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고종은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실제로 대한제국 이전부터 고종이
죽기까지 꽤 역사적 사진이 남아있다. 그러나 왜 명성황후에 대한 사진은 단 한장도
없는 것일까? 명성황후로 추정되는 사진은 모두 허위임이 밝혀졌고, 남겨진 사진들을
두고 벌이는 진위 논쟁은 우리 역사학의 비어있는 페이지이자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단 한장의 사진도 남기지 않는 명성황후, 그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자신의 운명의 얼굴을 스스로 만들 고자했던 여인, 그녀의 '잃어버린 얼굴 찾기'
여정을 미스터리한 에피소드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장성희 작가의 글
명성황후는 우리 근대사 인물 중에서 의미 규정이 모호하고, 혼란스러우며, 어느 면에서는 불편한 존재다. 어떤 이는 조선의 마지막 국모이자 민족의 희생양이라고 숭모하고, 어떤 이는 엽기적 악행과 실정을 거론하며 나라를 망하게 한 악녀라고 비난한다.
명성황후에 대해서는 '여성'이기에 재단되거나 과장, 왜곡된 부분이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자료를 숙지하는 과정에서 자극적이고 야사적인 일화는 배제했다. 또한 조선말 정치적 상황과 궁중권력 내부의 다툼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방식엔 어느 정도 일본의 관여와 시각이 담겨있다고 믿기에 거리를 두고 자료를 읽었다. 이 작업에서 가보려 한 지점은 명성황후에 관한 영웅사관에서 벗어나보자는 것과 잘못 행사된 권력에 대한 경계였다. 권력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몰랐던 지배층 앞에, 무대라는 거울을 세워 자신들을 바라보기를 소망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민중과 권력 사이,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 해원이 가능한 것인지 질문을 담아보고자 했다. 뮤지컬 장르의 문법과 관습에 좌절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뮤지컬과 연극을 두루 꿰는 이지나 연출가와의 협업에서 고비마다 힘을 얻었다. 하얗게 온 밤을 패는 듯 수척한 얼굴로 음악을 쏟아내는 민찬홍 작곡가의 능력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이 분들이 아니었다면 생각과 언어의 많은 부분이 걸러졌을 것이다. 뮤지컬에 어두운 작가를 탓하지 않고, 노래와 빛깔과 춤과 숨과 땀을 더한 배우와 스태프들... 한 분 한 분 새로운 인연들에게 감사드린다. 서울예술단 정혜진 예술감독과 주미석 PD에게 따로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두 분의 전적인 신뢰 아니었으면 아예 출발을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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