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조지 버나드 쇼 '인간과 초인'

clint 2025. 10. 12. 05:32

 

 

화이트필드 경이 죽으면서 딸 앤의 후견인으로 로벅 램즈든과 잭 태너를 
지목한다. 완고하고 보수적인 노인 로벅 램즈든은 자유주의자 태너를 
못마땅해하지만 앤 화이트필드는 내심으로 태너를 자신의 배우자로 낙점한다. 
앤과의 사랑은 물론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를 경멸하는 태너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앤은 갖은 방법으로 그를 유혹한다. 
태너는 앤에게서 도망치듯 스페인으로 향했다가 숲에서 산적떼를 만나 
붙잡히는 신세가 된다. 이어지는 꿈속 장면에서는 돈 주앙과 석상, 석상의 딸 
아나가 등장해 선과 악,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를 주제로 격렬히 토론한다. 
꿈에서 깬 태너는 극적으로 앤과 재회하고, 앤은 결혼은 물론 아버지가 태너를 

후견인으로 지목하도록 한 것까지, 모두가 앤 자신의 의지였음을 밝히며 
태너에게 결혼을 종용한다. 앤의 강력한 의지 앞에 태너도 결국 굴복하고 만다.

 

 

 

버나드쇼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 '철학과 희극'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쇼는 이 극을 통해 '생명의 힘'으로서의 철학을 강조한다. 니체의 초인 사상에 큰 영향을 받은 버나드쇼의 인생관과 예술론이 흥미로운 설정과 희극적인 요소와 함께 펼쳐지며, 특히 스페인 전설의 인물인 돈 주앙과 석상, 마왕이 등장해 펼치는 성(性)과 초인에 관한 담론은 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주인공 존 테너는 앤 화이트필드가 그와 결혼하려고 집요하게 쫓아다니는데도 불구하고 언제까지나 독신으로 있으려는 남자이다. 앤은 활력과 독창성, 계산적인 주도면밀함이 뛰어난 포식성 여성의 전형으로, 그녀가 품고 있는 삶의 원대한 사명은 초인을 낳기 위한 애 아빠를 찾는 일이다. 이러한 앤을 제압할 수 있는 인물은 그녀를 흠모하는 시인 기질의 유약한 남자 옥테이비어스가 아니라 익살, 반어, 경구, 농담의 대가인 잭 테너이다. 쇼는 유언장과 삼각관계 (앤, 테너, 옥테이비어스), 외관상 타락한 듯 보이는 여인(바이올렛), 산적 떼에 사로잡히는 에피소드 등 다양한 낭만적인 요소를 통해 작품의 멜로드라마 적 재미를 극대화한다. 그러나 이 작품을 희극적 반전, 익살적인 사건, 멜로드라마의 요소로 구성된 극으로만 간주할 수는 없다. 그와 동시에 쇼의 철학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쇼는 런던에서의 삶, 즉 보통 남자의 주 업무는 신사의 입장과 습관을 지키기 위한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고 보통 여자의 주 업무는 결혼하는 것에 있는 삶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독자에게 많은 철학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단순히 희극적으로 보면,<인간과 초인>은 남주인공 테너와 여주인공 앤의 결혼을 향한 희극적이고 독설적인 투쟁이다. 그러나 이 희극은 우선 버나드쇼가 '돈 주앙'에 관련된 희곡을 원한 극장의 주문에 의하여 집필되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돈 주앙이 누구인가?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카사노바와 더불어 바람둥이와 난봉꾼의 대명사가 아닌가. 그러나 쇼는 이 돈 주앙을 모델로 한 희극에서 두 가지 독특한 비틀음을 시도한다.

 

 

 

 

첫째는 관계의 역전이다. 돈 주앙은 여자를 유혹하고, 여자는 유혹당하는 존재이지만,<인간과 초인>에서는 그 관계가 역전된다. 여자는 마치 '보아 뱀'처럼 남자라는 사냥감을 집어삼키려는 존재고, 남자는 그것을 최대한 피하려는 존재다. 이러한 관계의 역전은 작중 주인공이자 사회주의자 잭 테너의 대사 하나로 쉽게 설명된다.
테너 : 가능한 일찍 결혼하는 것이 여자의 비즈니스라면 가능한 늦게 결혼하는 것이 남자의 비즈니스라네.
그러나 이러한 첫 번째 비틀음도 결국은 두 번째 비틀음을 위해 존재한다.<인간과 '''초인'''>, 그리고<희극과 '''철학'''>. 초인과 철학. 그렇다, 바로 철학자 니체의 그 초인, 위버멘쉬다.
무엇보다, 무대에 직접적으로 올리기 힘들어 보일 뿐, 이러한 철학 극이 희극과도 전혀 안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더 놀랄 것이다. 또한 이 돈 주앙과 악마, 석상, 그리고 안나의 철학 극은 전혀 지루한 철학 극이 아니다. 오히려 뛰어난 희극작가이자 독설가 쇼의 펜에 의하여 너무나도 재미있는 희극으로 변모한다.
또한 비록 쇼가 작품과 작가의 정치, 사상 및 생각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존재라 믿었고, 자신의 믿음에 매우 충실하여 자신의 사상을 설파하기 위해 예술을 한 작가였지만, 그렇다고 그의 작품이 무조건 '도구'인 것은 아니다. 설령 쇼의 사회주의적이거나 철학적인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라도, 그의 희극을 즐기는 데에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또한 돈 주앙적인 관계를 역전시켜 오히려 '사냥'하는 여성상을 창조하고, 피하려는 남성상을 보인 것은 이러한 것이 쇼의 여성관이 아닐까. 쇼가 조이스처럼 입센에 큰 영향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입센의<인형의 집>과 같은 영향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쇼는 마지막 부분에서도 여전히 독설가의 면모를 보인다.
멘도자 : 선생, 인생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소. 하나는 자신의 소망을 잃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소망을 얻는 것이오.

 

 

 

1925년에 쓴 ‘인간과 초인(1903년 발표)’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예술가였다. 또한 빼어난 철학자에다가 비평가였고, 게다가 사회운동가로서 남긴 족적도 대단하였다. '인간과 초인'은 버나드 쇼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철학과 희극'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쇼는 이 극을 통해 '생명의 힘'으로서의 철학을 강조한다. 앤은 소위 '생명의 힘'을 지칭되며, 모든 문화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오히려 남자에게 결혼을 강요하는 여성이라는 쇼의 견해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활력(생명력)이 넘치는 여성의 원형이며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앤이라면, 그 활력을 설파하는 역할은 테너가 해내는 셈이다. 또한 문제의 제3막은 돈 주앙(잭 테너)와 악마 간의 철학적 논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지옥의 돈 후안'은 난해한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며 그 자체로도 하나의 완결성을 지니기에 종종 따로 공연되기도 한다. 독설의 버나드쇼도 작품 '인간과 초인'으로 버트런드 러셀로부터 "전반적으로 천재라기보다는 천박한 인물"이라는 평을 들어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생명력과 초인(이상적 철학적 인간), 성과 결혼, 정치논리와 자본주의, 여성상, 새로운 인간상, 예술가의 개념 등에 대하여 곰곰 생각할 일이다. 요즘 들어 그의 독설이 청량제처럼 다가온다. 조지 버나드쇼는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한 사상극(Drama of Idea)의 미끼로 남녀의 삼각관계를 자주 이용했다. 그의 대표작인<인간과 초인>에서는 사회주의자 잭 테너, 시인 옥테이비어스 로빈스, 그리고 막 아버지를 여의고 남편감을 물색 중이던 앤 화이트필드가 삼각관계의 주인공이다. 옥테이비어스는 앤에게 구혼을 하지만 그녀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대신 앤은 테너를 사랑하지만 그는 그녀를 보아 뱀, 코끼리, 곰, 호랑이, 거미, 벌이라고 부르며 경계한다. 테너는 결혼을 여성이 가진 모성 의지에 남성 창조력이 침식당하는 것이라 여긴다. 앤이 테너에게 적극성을 보이자 테너는 그녀를 피해 스페인으로 도망간다. 여기까지가 전 4막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1막과 2막이다. 3막에서 스페인으로 도망 간 테너는 노상강도의 인질이 되고, 그날 밤 그의 꿈에 돈 주앙이 나타난다. 많은 연출가들은 이 작품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3막을 삭제해버리거나, 때로는 이 막만 따로 떼어 독립된 공연물로 취급한다. 하지만 테너의 꿈으로 처리된 이 극중극은 연극으로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고자 했던 쇼에게는 필수적인 대목일 뿐 아니라, 이 부분에 평생 문필가이자 사회운동가로 활약했던 쇼의 핵심적인 주장이 온축되어 있다. 무신론자였던 쇼는 여성의 생명력과 남성의 창조력이 합해져서 창조적인 진화를 거듭한다면 언젠가 인간도 신과 같은 초인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수양 끝에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유교의 이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과 초인>의 4막은 앤을 피해 다녔던 테너가 결혼을 수락하고 페이비언 운동에 매진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쇼가 옥테이비어스를 앤과 맺어주지 않는 이유는 얼치기 시인의 창조력을 신뢰하지 못해서다.

 

 

 

“현존하는 극작가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은 누구인가?” 
한 기자의 물음에 쇼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야 물론 나지.” 
그 자신만만함에는 근거가 있었다. 
1925년 스위스 한림원은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체, 재기발랄한 풍자로 

이상주의와 인도주의 사이에 놓인 그의 작품을 기리며” 쇼에게 노벨상을 수여했다. 

<인간과 초인>에는 쇼의 이런 작가적 역량이 최대로 발휘되어 있다. 

남녀의 삼각 로맨스에 초인 사상을 절묘하게 결합한 걸작이다.

그러나 국내에선 공연이 안 된 작품이다.

 

조지 버나드 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