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자정 성 마루에서 죽은 아버지의 유령을 만나
억울한 부친 살해의 비밀을 전해 듣게 된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권력을 쥔 삼촌에게 복수를 다짐한 햄릿은 살해를 비유한
연극놀이를 꾸미고 클로디어스와 거트루트는 심한 충격을 받는다.
햄릿의 복수극을 알아차린 클로디어스는 오필리어의 아버지인 폴로니우스를
살해한 햄릿을 추방하고 암살을 지시한다.
연인의 손에 아버지를 잃은 오필리어는 미쳐 강물에 빠져 죽고
유학에서 돌아온 레어티즈는 아버지와 누이의 복수를 다짐한다.
클로디어스는 레어티즈와 햄릿의 결투를 부추기고 레어티즈의 칼에 독을
바르고 독배를 준비한다. 클로디어스의 음모는 결국 햄릿 뿐만 아니라
레어티즈, 거트루트, 급기야 자기 자신까지 죽음으로 몰아 넣는다.
세익스피어의 <햄릿>은 20세기 인류역사를 통해 '가장 위대한 문학'으로
평가받는 작품다. 시대와 민족의 경계를 뛰어 넘는 감동과 무궁무진한 지혜들은
지금도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고 있다.
연희단거리패의<햄릿>은 1996년 창단 10주년 기념공연으로 초연되었고,
그해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으로 공연되어 한국의 샤머니즘과 서구의
영적 세계를 결합시키는 독특한 연출 방식으로 연출상을 수상했다.
이후 러시아, 독일 일본 등 초청공연을 통해 극찬을 받았다.
재구성된 이 작품은 이윤택과 김동욱이 서양의 고전을 다루는 솜씨를 잘 보여준다. 그의 관심은 분명 우리 연극이지만 우리 연극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전방위적 인 노력을 아끼지 않는 '문화 게릴라'로서 서양고전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다.
이 작품은 비교적 원작에 충실한 경우처럼 보인다. 그것은 한국적인 느낌이 강하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과감한 대수술을 행한 흔적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이 작품에 분명 우리화 하려는 노력이 있는데 그것이 이 작품에서 보편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눈에 잘 안 띨 뿐이다.
우선 대사가 시원스럽게 우리식 표현으로, 우리의 리듬에 맞게 바뀌었다. 사실 대사를 자연스런 우리 말로 온전히 바꿀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원작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고 원작의 리듬을 우리말의 율격으로 바꿔 그 의미를 쉽게 전달한다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오히려 겉으로 보기에 대단히 새로운 해석인 것처럼 보이게 해놓고 실제 내용은 없는 작품들이 더 문제이다. 이 <햄릿>이 지니는 의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원작이 지나는 보편적인 의미를 우리식으로 재해석한다는 것, 그 재해석의 능력이 단연 돋보인다는 것이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가치이다.
그러한 재해석은 한마디로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깊숙한 곳에 내재한 성적인 담론을 끄집어내 권력관계 속에 함께 짜넣음으로써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을 택한다. 햄릿이 어머니를 범함으로써 근친상간의 의미를 부각시키거나 오필리어가 햄릿을 유혹하는 부분들은 원작과 다른 방식이다. 원작 속에 이러한 해석 가능성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재구성본은 분명 그 부분을 확대 변형시키고 있다.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다소 거친데 그것은 이러한 측면과 관련된다. 보다 깊숙이 박혀 있는 인간 본성에 가까이 가기 위해 언어적 측면에서도 허울을 한겹 걷어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화적 허울일 수도 있고 관념적 허울일 수도 있다. 그것을 과감하게 걷어내어 본질에 보다 가까워진 언어를 사용한다.
또한 재해석이 가장 빛나는 부분은 역시 무덤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동양적 이해가 절정을 이룬다. 삶과 죽음의 넘나듦을 동양적 방식으로 자유롭게 표현해 무대 전면에 네모난 무덤을 파놓음으로써 고정된 공간을 확보하고 인물들을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함으로써 공간의 힘을 다른 방식으로 이용한다. 무덤의 공간은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중요하게 기능하며 거의 모든 인물들이 이 공간을 거쳐간다는 의미를 강조한다. 특히 햄릿에게 이 공간은 그의 방이기도 하고 그의 놀이터이기도 하다. '죽느냐 사느냐' 고민에 휩싸인 주인공이 있기에 가장 자연스러운 공간이다. 이렇게 주인공을 무덤이라는 공간에 위치시킴으로써 그의 내면적 갈등이 관념적이지 않고 현실적인 것으로 다가오게 만들어 그 의미를 분명히 해준다. 재구성 대사가 주는 선명함과 더불어 작품을 이해하기 쉬운 것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작품의 이러한 특징은 무대위에서 진정 그 진가를 발휘한다. 오필리어 의 죽음. 그 사실은 모든 사람이 너무도 잘 아는 것이기에 그것을 정보적 차원에서 전달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작품의 무덤 장면이 독특한 것은 작가가 그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죽은 오필리어가 등장해 무덤에 묻혀 실제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재현함으로써 삶과 죽음, 육체와 사랑의 관계를 상징적이면서 동시에 사실적으로 표현해낸다. 실제 공연에서는 관객으로 하여금 흙에 잠기는 오필리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보여줌으로써 오필리어 죽음의 비극성을 아름답게 구상화했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은 '햄릿 유령'이다.
자정 종이 울리면 어둠속에서 햄릿 유령을 비롯해 작품에 나왔던 유령들이
무대를 지나 관객 속으로 걸어간다.
햄릿은 "호레이쇼에게 손짓하고 천천히 돌아서서 무대 뒤편으로 사라진다."
에필로그는 여기에 덧붙여 다음과 같은 고민을 과제로 내놓는다.
"나는 너인가 너는 나인가.” 이러한 질문은 "죽느냐 사느 냐" 햄릿의 고민을
환치하면서 비극이 끝나지 않고 되풀이됨을, 햄릿만의 문제가 아님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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