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봄, 오태석연출로 국립극단 공연작품이 <기생비생 춘향전>이다.
이 작품은 오태석 식으로 모두 세 가닥 비틀어본 <춘향전>이다.
이몽룡도 없고 방자도 등장 하지 않는 <춘향전>이다.
몽룡이 한양으로 떠난 날부터 돌아오기 전날까지가 작품의 배경이다.
'혼자된 춘향이'와 월매 두 모녀의 갈등구조가 극의 뼈대를 이룬다.
월매는 구세대를, 춘향이는 신세대를 대표한다.
월매에게 정절이니 수절이니 하는 것은 사대부 부인들의 전용 물일 뿐이다.
딸과 백년가약을 맺은 이몽룡이 떠나고 신관 사또가 부임하자,
월매는 춘향에게 "잊자. 구관 사또 자제 잊고 신관 사또 수청 들자.
수절한다고 까마귀가 학이 되냐? 이 에미가 기녀이니 너 또한
기녀이지 않느냐”라고 말한다.
춘향은 “어머니가 기생이었다고 나 역시 기생으로 살 수 없다.
나는 한 사람의 양인으로서 한 남자만 모시고 살아가겠다"고 받아친다.
테크노댄스를 추고, 직접 한양으로 이도령을 만나러 가겠다고 때 쓰고,
"어머니처럼 살 수 없다”는 춘향의 모습은 영락없는 페미니스트다.
자신을 옭아매는 사회적 굴레를 벗어 던지는 현대적 여성인 것이다.

월매와 춘향이 각각 다른 세계에 속해있는,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임을 보여주는 상징은 두 사람의 말(言語)이다. 난장처럼 시끌시끌한 아수라장 속에서 각기 다른 두 종류의 '말'이 무대를 지나간다. 누군가가 입으로 대사를 하면 무대 뒤에서 배우들이 그림이 그려진 현수막과 말풍선을 들고 관객석을 압박한다. 겉표현과 속마음이 다르다는 뜻이다. 다른 것은 '입으로 하는 말'과 '속마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산 말'과 '죽은 말' 사이에도 엄청난 간극이 있다. 산 말? 죽은 말? 두 모녀간의 대화가 살아서 꿈틀거리고 부딪히는 언어라면, 혼인서약서와 불망기(不忘記)는 죽어버린 말이다. 하나는 속절없고 다른 하나는 공허하다. 산 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기록된 말은 말을 이루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렇듯 말들이 성찬처럼 무대 위를 수놓는데도, 등장인물들 사이의 의사소통은 이뤄지지 않는다. 선구자에게는 말 통하는 상대를 만나기가 맘 맞는 상대를 만나기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은유일 터이다.
아쉽게도, 이 작품에는 극적 구조를 둘러싼 흠결이 보인다. '몽룡이 떠난 직후부터 옥에 갇히기까지의 드라마는 그런대로 흘러가지만, 춘향이 옥에 갇힌 뒤로부터 이야기의 가닥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춘향의 비몽사몽 중에 펼쳐지는 이야기가 현실과 어떤 연계를 맺고 있는지 도 또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말이면서, 말이 아닌 것들'에 휘둘려 사는 인간들에 대한 작가의 결론은 춘향이가 토해내는 마지막 대사 “나는 임자 있소” 한 마디에 응축되어 있지만, 여기까지 나아가는 여정이 선명하지 않다.

오태석은 이 공연의 뒷풀이 자리에서 "기왕 이야기를 뒤집는 김에 한 박자 더 튀었어야 했다. 춘향이를 페미니스트를 넘어서는 현실적 이고 이기적인 모습으로까지 밀고 나갔어야 한다는 말이다. 첫날밤에, 그 정신없는 와중에 문서를 써달라고 요구하고 그 문서를 이몽룡 앞에서 보란듯이 찢어보이는 연기를 할 정도라면, 춘향은 보통 여자가 아니다. 이런 여성들은 일이 마음먹은 대로 진행되지 않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 강렬함과 표독스러움, 판을 뒤집겠다는 의지를 제대로 그리지 못하고 연극이 끝나버렸다" 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기생비생 춘향전>의 텍스트는 음(淫)하고 난(亂)하기가 실로 자심하다. 현대어로 번역한다면, 필시 상연불가나 제한상연 판정을 받을만큼 표현수위가 높다. 하지만 1930년대만 해도 낮뜨겁고 민망해서 도저히 공연이 불가했을 대사들이 21세기의 관객들에게는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한자어 표현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두어 세대 사이에 의사소통의 수단이 크게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오태석이 대놓고 도발하는 장난기 가득한 연극적 실험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남향고사 춘향전을 그 원전으로 한다.
이 이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전과 많이 다르다.
이 작품의 초반부는 이몽룡이 떠나는 장면으로, 더구나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춘향이와 변학도의 만남은 월매의 주선으로 이루어지고,
춘향이는 정절을 지켜 그나마 목숨을 부지한다.
춘향이는 이 작품에서 자신의 출신성분에 대해 회의하는 존재다.
오태석은 춘향이를 억세고 당찬 여인으로 바꾼다. 비천한 기생의 신분을
부인하고, 떠나버린 이도령을 애타게 기다리며, 신분의 상승을 꾀하는
현실적인 여인으로. 단골 주인공인 이몽룡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춘향전에서 흔히 백미인 어사출도 장면은 이 작품에는 없다.
어사출도 장면이 있지만, 그것은 말로만 휙 지나가며,
춘향과 월매, 향단이 기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19살 이몽룡이 장원급제도 힘들고, 했다해도 전라어사가 되기도 힘들고,
설령 되었다고 해도 오래전에 버린 춘향이를 만나러 올 리도 없지만,
아무튼 탐관오리 사또를 잡으러 어사는 출두하는데 그 어사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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