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경 유학을 다녀와 중학교 선생으로 있다가 일경의 감시로
고모가 있는 농촌으로 피신해온 한용철.
고모의 집에서 기숙하면서 책을 읽고 나라 걱정에 골몰하는 그에게
이웃에 사는 처녀 순이가 운명처럼 다가온다.
순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주며 여러 대화를 통해 순이를 가르친다.
그러나 일본 주재소에서 용철의 신상과 수배명령을 받은 순사들이 들이닥쳐
잡혀가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된다.
약 6개월 후, 그가 다시 이곳을 찾는다.
고모는 깜짝놀라 용철을 반긴다. 용철은 가석방 된 것이란다.
다시 순이를 만난다. 순이는 용철과 대화하면서
예전보다 달라졌음을 느낀다. 용철은 형무소에서 만난 여러 동지들을 통해
젊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많이 느끼고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은 우리의 빼앗긴 들을 되찾기 위해 북간도로 가서
독립운동을 할 뜻을 비춘다.

작가의 글 - 이인석
이 작품은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착상한 것임.
이 시극은 하나의 분위기를 기조로 한다.
그것은 억눌려 사는 사람들의 불안과 분노다.
특히 주인공(한용철)은 독백과 대화의 내용에 따라 시정적이어야 하며,
격정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침묵으로써 분위기를 조성시키면 좋겠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1926년 <개벽(開闢)> 6월호에 발표된 이상화의 시이다.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과 조국에 대한 애정을 절실하고 소박한 감정으로 노래하고 있다. 나라를 잃어버린 한과 저항의식을 주축으로 하여 식민지 치하의 가난하고 굶주림 속에서 살아가는 농촌 아낙네들이 흘리는 뜨거운 눈물과 소박한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말없는 반항의식을 나타내고 있고, 동족애와 식민지적 비애를 극복하고 일어서는 저항의식을 나타내 주고 있다. 이상화 시인이 던지고 있는 질문은 들을 빼앗긴 지금 봄이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과연 우리가 참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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