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차범석 '왕교수의 직업'

clint 2025. 9. 5. 06:04

 

 

경제학교수인 왕거미는 아내 전여사의 도움으로 마두희 재벌의 기획위원장이

되자 명예박사학위를 받기도 하고 라디오 인터뷰를 하는 등 유명인사가 된다.

뇌물을 받지 않는 남편의 성격을 아는 전여사는 여고동창 민여사가 보내온

골프 세트를 자신이 산 것처럼 말한다. 왕교수는 김포공항 세관에서

아들 수다가 마리화나 반입으로 잡혀있다는 전화를 받고 회의를 취소한 후,

강비서와 함께 공항으로 간다.
미국에서 온 수다는 장발에 턱수염과 콧수염을 기른 히피족이 되어 있었다.

왕교수는 억지로 수다의 수염을 깎아버리고 집밖에 나가지 못하게 한다.

민여사는 전여사를 찾아와 남편의 전임강사 자리를 요청하지만 왕교수는

귀찮은 듯 강비서에게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두라 하고 회의장으로 떠나버린다.

히피클럽의 지혁과 창배는 수다를 찾아와 클럽 회장이 되어 줄 것을 부탁한다.

수다와 두 사람은 가정부가 잠든 사이 집을 빠져 나간다.

 

 

 


수다가 집을 나간 지 사흘이 되어도 소식이 없자 왕교수는 경찰에 신고하려 한다.

이때 수진이 주간지 몇권을 들고 들어와 왕교수와 전여사에게 내보인다.

기사엔 왕박사의 장남이자 히피클럽 회장인 왕수다의 폭탄적 문명비판이라는

기자회견이 실려 있었다. 왕교수는 출판사에 전화해서 모든 잡지를 다 사들이고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려하나 전여사는 일을 더 크게 만든다며 만류한다.

이때 집이 싫다며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수영의 전화가 걸려온다.

민여사는 남편의 강사자리가 소식이 없자 전여사를 찾아가지만

전여사는 수영의 가출로 병원에 입원해 있고 왕교수는 외출중이었다.

기다리던 중에 재벌의 기획위원장을 그만두었다는 왕교수의 전화를 받고

민여사는 화나서 돌아간다. 조금 후 전여사가 마두희 재벌이 무역을 한다고

정부 융자를 받아 부동산 투기를 하다가 그것을 메우려고 왕교수를 이용했다는

것을 알아온다. 가출한 수영과 수다가 돌아와 그동안 함께 지냈음을 말하고

수다는 머리에 썼던 가발을 벗어버린다. 왕교수도 사표를 쓰고

집으로 들어 온다. 모두 제자리를 찾게 된다.

 

 

 

차범석이 1970년 쓴 <왕 교수의 직업>은 재벌의 브레인으로 발탁되어 학자이면서도

사업가의 앞잡이가 되는 어느 양심적이라고 자부하는 대학교수와

구미유학에서 히피가 되어 돌아오는 그의 아들의 얘기를 그리는 풍자극이다.

작가 차범석은 이 작품에서 오늘날 외래사조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젊은 층을 비판한다. 또한 당시 문제가 되었던 장발족에 대한 단발령을 다룬다.

'히피 연극'이라는 한바탕의 해프닝을 통해서 1960년대 사회의 

여러 풍조와 징후들을 경쾌하게 풍자한다. 

 

 

 

 

아주 다양한 세태가 묘사된다. 왕교수가 재벌 마두희의 브레인으로 발탁되는 순간, 그는 새로운 주체로 호명된 것에 잔뜩 꿈에 부풀어 있다. 덕분에 얻은 '명예박사라는 직함을 선호하고, '청소년풍기정화질서확립추진위원회' · 주례· '아세아금주인클럽' · '전국애견가동우회' · BBC텔레비젼좌담프로 · '청년 문화연맹' 등 그럴 듯한 이름의 모임에 자신을 위치시키려는 욕망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이렇듯 왕교수가 다른 존재로 '비약할 수 있었던 것은 부인 전여사의 치마바람이었으며, 그녀는 이제 뇌물청탁의 중개자로서 부상한다. 또한 산아제한문제, 환경문제, 유니섹스 풍조 등도 거론되며, 왕교수 자녀들의 입을 통해 대학교육이 사회진출로까지 이어지지 않는 세태와 책없는 도서관, 철학 운운에 긴박되어 있는 한국사회, 언론 매체의 조작성,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재벌들의 허약성 등도 비판된다. 마치 한국사회의 구석구석을 모두 드러내겠다는 듯이 이 한 편의 작품에 틈틈이 배치되어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크게는 왕교수의 직업과 수다의 히피를 중심 줄거리로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1960년대 후반부의 한국사회의 풍속도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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