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선욱현 '황야의 물고기'

clint 2025. 9. 4. 08:32

 

 

대한민국 어느 도시 하늘 아래, 어느 건물 지하, 테마카페 <서부시대>가 있다. 
철저한 비밀 속에 멤버쉽으로 운영되는 이 카페에 오늘도 회원들이 모여들어 
서부극을 벌인다. 이들은 존, 빅터, 해리 같은 서양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고, 
카우보이모자에 권총을 들고 정말 서부에 사는 인간들처럼 오늘을 살아간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카페 건물주인은 밀린 월세를 독촉하고 결국 보증금 
다 털어먹고 이젠 쫓겨나야 하는 신세가 된다. 게다가 카페 사장이자 
이 서부극을 쓰고 있는 <존>은 아내로부터 집으로 돌아오라는 전화를 받고
힘들어한다. 존은 2년 전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뒤 가출해서 
이 카페에 피하여 살고 있는 상태이다.
존이 쓰고 있고 그들이 벌이고 있는 서부극의 내용은 이렇다.

 



서부의 한 마을, 모두가 아는 미국 서부개척시대, 그런 풍경, 보안관 존은 
오늘도 고민에 빠져 있다. 늙은 카우보이 요셉이 살인을 일삼고 있기 때문. 
요셉은 이 마을을 개척하고 이 마을의 질서를 이룩한 초기 보안관이지만 
이제는 툭하면 살인을 일삼는 광인일 뿐이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 
하지만 번번히 촌은 그를 보호한다. 존은 요셉을 설득하고 타이르지만 
결국 존마저 요셉에게 모욕을 당하고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존은 끝까지 
요셉을 보호하려고 한다. 어찌됐든 그는 이 마을의 우상이었다. 
그런 정신적 지주를 늙고 망령 들었다 하여, 마을 후손들 앞에서 처벌한다면 
교육상 안된다는 그만의 논리가 있었다. 당연히 그의 이런 고집 때문에 
요셉은 맘껏 날뛰고 마을 사람들의 불만은 더욱 커져 간다. 
결국 사기꾼 해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킬러를 사서 데려오자고 제안하고 
그들로부터 거액을 모으기에 이른다. 결국 해리의 계략대로 그 마을로 
전설의 악당 빅터가 찾아든다. (물론 해리는 상당액을 챙겼다) 
빅터는 단숨에 요셉을 살해하려고 하고, 존이 막아서지만 존은 빅터를 
당해내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빅터는 사람들 앞에서 존이 다른 마을에선 
'추악한 존'으로 불린다고 폭로한다. 사람들은 놀라고, 요셉도 놀란다. 
이윽고 감추어졌던 존의 비밀 이 마을 사람들 앞에서 드러나는데....
존은 결국 이 서부극을 통해 이 나라의 현실과 자신의 아픔을 다 토해내려고 
하는데, 사람들은 이 낯선 서부극에 반기를 든다. 그들은 환상을 원한다. 
현실을 잊고 꿈의 세계에서 놀기를 원하는 것이다. 
서부시대에는 영웅이 있고 그 영웅이 종국엔 악당을 물리치고 
그 단순한 동화가 그들은 좋다고 얘기한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므로! 
존은 이제 선택해야 하는데...

 

 

어디서 긁어모았는지 꽤 신경쓴 소품도구들 - -권총, 장화, 장총, 소대가리뿔, 맥주통, 마차바퀴, 가죽조끼바지 등등.... 근데, 해리의 바지가 왜, 21세기 한국의 개량한복인지? 카페라기보단 서부시대는 전형적인 saloon(살롱) 분위기다. 복고풍 아메리칸 드림이란 환타지는 줄기차게 이어지는데, 난데없이 나타나는 한국 추리닝차림의 '아줌마' 서부활극 판에 나타난 그 멋지고 늠름한 존도 꼼짝 못하는 공포의 한국아줌마 정체는? 서부시대가 들어찬 그 건물 주인이고 월세 관리비 바가지를 긁는다. 여기서 객석의 폭소가 팍 터져버린다. 아메리칸 복고풍의 '2중극 = 황야의 물고기'는 이런 스타일이다. 극의 현실적 내용과 그들이 지어낸 얘기가 버무려져 간다.

무대의 무리들은 '서부 카우보이 인터넷동호회'였던 거다. 그 동호회원들은 극의 각본을 공동으로 쓰는 듯하다. 개개 회원들은 카페주변 동네사람도 있으나 인터넷 덕택에 멀리서도 온다. 저마다 생활 속 사정이 있는데 떨치려는 일탈의 선택이다. 하여간, 이들은 세상이 어찌 가도 놀자는 인생들.. '연극은 놀이'라는 장난기에 무척이나 충실하다. 도식화 된 틀 안에서 살기를 거부하며 웨스턴 복고풍을 추구하는 취미꾼들.. 이것만으로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지 강력하고 신선하다. 그리고 재미있다.

 


누구라서 황야가 아닐까 - 선욱현 작가의 글
물고기가 있었다. 물고기는 자신이 깊은 강물 속에서 태어난 줄 알았다.
얼마나 자랐을까? 어느 날 물 밖으로 눈을 내밀어 바깥 세상을 보았다. 
황야였다. 거칠고 황량한 사막 한쪽, 말라붙은 강바닥. 그 얼마 남지 않은 
물에서 자신이 퍼덕이고 있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순식간에 물은 말라갔다.
금새 강물은 바닥을 보이고 물고기는 햇볕 아래 노출되고 말았다. 몸이 바짝 
말라왔다. 물고기는 눈을 감았다. 이렇게 자신이 죽어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상한 소리들이 들렸다. 눈을 떴다.
버스정류장. 물고기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 왜 여기 있을까. 어쩌다 이 황량하고 막막하기만한 이곳에 버려진걸까.
내 심장과 코 끝에서 거침없이 요동하는 이 숨은 슬퍼해야 할 지경이 아닌, 
그래! 선물일 것이다. 어쩌면 임무일지도 모른다.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처럼 
누군가로부터 파견이 됐는데, 문제는 시간과 차원을 건너오면서 뇌를 다쳤는지
내가 여기 왜 와있는지 모르는, 혹시 그런 문제? 아무튼 눈을 떠보니 난 이곳에 

와 있다. 젠장! 이곳 너무나 황량하다. 그래서 난 카페 서부시대를 찾아들었고,
그곳엔 또 수많은 사내와 여자들이 몰려들어 날마다 놀고 있다. 이 카페는 
물고기들의 놀이판이고 물고기들의 교회이다. 난 늘 이곳에 와서 놀았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난 왜 여기 와 있을까. 물고기 한 마리 주제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거야? 있지! 난 이 어마어마한 우주의 일원이다!
놀자. 놀면 된다. 놀다가 가자. 내 노는 모습이 그 임무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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