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오태석 극본 '영영사랑'

clint 2025. 9. 3. 08:45

 

 

 

때는 어린 단종을 폐위시키려는 수양대군의 움직임이 수상하던 시절,
수양의 아우 안평대군은 열명 남짓한 궁녀들을 모아놓고 
시와 노래 가르치며 풍류로 세월을 보내던 중 안평의 생일을 맞아 
시객으로 이름 높은 김생이 초청되는데..
안평의 총애를 받고 있던 운영이라는 궁녀가 김생과 연을 맺어, 
갇혀 지내는 자신의 운명을 바꿔볼 결심을 하게 된다. 
변심한 운영에 대한 노여움으로 자칫 살생을 저지름으로 안평 자신이 
조정사화에 휩쓸리는 빌미를 제공할까 두려워진 안평의 부인은 
급기야 김생을 직접 꼬득여 위기를 막아보려 한다. 
어미와 딸 같던 안평의 부인과 운영이 서로 연적이 되어 
김생의 간택을 받으려 고군분투하는 웃지 못할 상황 속에, 
결국 부인이 김생의 간택을 받아 안평의 위기를 막아냈는가 싶었으나 
수양대군의 단종폐위가 성사되고 단종의 후견인이었던 안평은 
사약을 받게 된다. 이로써 안평은 죽어 자유의 몸이 되고, 
부인도 남편의 뒤를 따른다.
안평의 유언대로 궁녀들 또한 자유의 몸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김생과 운영도 순리대로 한짝이 되어 새로운 출발을 하며 막이 내린다.

 



이 작품은 작가미상의 고전소설 운영전을 오태석이 극본화 한 것으로 극단 목화가 2007년 오태석 연출로 공연하였다. <영영사랑>은 오태석의 일관된 주제의식과 볼거리의 미학을 종합한 작품이다. 권력과 명분 속 죽음의 역사와 대비해 생명과 신명을 살리는 살림의 역사를 나란히 놓고 있다. 이것은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을 바둑판 흰 돌 검은 돌 놓듯 대국시키는 형국인데 이 두 가지가 다투는 것이 아니라 태극의 음양처럼 상호 생동하는 삶의 원리가 된다. 어찌 보면 이 작품은 운영전 외전(外傳) 격이자 요정 대신 무녀가 개입해 인연과 운명을 바꿔놓는 조선시대 판 '한 여름밤의 꿈'이기도 하며, 악업을 행할 지아비에 대한 방비(防備)로 고군분투하다 계유정난으로 희생되고 마는 안평과 안평의 처에 대한 해원굿이 되기도 한다. 유교적 이데올로기와 남성 위주 그리고 궁궐이라는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사랑을 위해 죽음을 불사한 한 여인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다룬다. 자유로운 사랑을 소망했던 '운영'의 시대와 신분의 굴레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사랑담을 통해 아름다운 사랑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원전에는 없는 계유정난이 끼어들어 단종의 후견인인 안평대군과 그의 부인이 같이 죽는 사랑이야기도 곁들어진다 

 



<운영전>은 조선 후기에 창작된 작자 및 창작 연도 미상의 한문소설이다. 그 줄거리는 운영이 1601년에 안평대군의 옛집인 수성궁에서 잠이 들었다가, 꿈속에서 안평대군 시절의 궁녀였던 운영 및 그녀의 연인인 김생로부터 안평대군 시절의 이야기를 들은 뒤 꿈에서 깨어났다는 내용인데, 운영과 김생의 사랑이야기가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원작은 한문본이며 국문본은 한문본을 번역한 것인데, 현재 한문본 80여 종, 국문본 몇 종이 전해진다.  

 



오태석은 이번 공연에서 색채 면에서 보다 단아해졌다. 이는 우리 빛깔 우리 맵시를 추구하되 연극적 강세를 놓치지 않으면서 비일상적인 터치를 편안히 가미하고자 한 의상디자이너 이승무와의 꾸준한 작업이 영향을 미쳤을 터이다. 구속된 처지일지라도 송낙 입고 우장 쓰고서 엄폐된 별궁 너머 제 사랑을 좇는 활달한 운영, 소리 좋아하는 한량 김생, 어디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안평대군 처의 온후하고도 해학적인 캐릭터 창조 등은 이 연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그리고 권력쟁투 속 울화를 풍류로 달래는 안평대군의 위장된 신명과 가둬키워도 은어떼처럼 반짝이며 뛰노는 궁녀들의 생기로움은 극중 내내 선명히 대비되면서 극성의 뒷심을 만든다. 군신유의 명분을 좇은 안평의 사랑에 부부유별 안평 처의 지아비를 향한 사랑, 삼강오륜을 넘어선 운영의 김생을 향한 사랑이 삼중 플롯을 이루고 여기에 인내와 자기희생으로 '살림'의 윤리를 사는 유교적 여인상에 대한 오태석 작가의 찬탄, 배정혜의 안무를 비롯해 여러 스태프들의 우리 공연유산에 대한 애정 등 다양한 겹의 '영영사랑'을 만나게 된 자리다. (당시 공연평에서)

 



작 연출의 글 - 오태석
"연극은 콘크리트가 담긴 레미콘 트럭과 같다고 생각해요.
자갈과 모래, 시멘트가 뒤섞여서 끊임없이 돌아가야 돼요.
안 그러면 굳어버려요. 콘크리트를 계속 돌리다가틀에 집어넣으면 
그들의 모양대로 번듯하게 만들어 지잖아요." 
선조들께서는 가무를 무척 즐겨하셨다고 전해옵니다. 어떤 가무였기에 그토록 즐거워하셨을까요. 선조들께서 물려주신 먹거리의 원천지 장독대에는 콩이 메주가 되고 메주가 우려낸 간장 된장 고추장 삼형제가 살고 있지요. 이 삼형제로 내장을 채우고 그래서 생긴 근력으로 즐거운 소리 내고 즐겁게 땅 차고 활개 치셨던 것이지요. 장독대 삼형제는 오늘날에는 여전히 우리 먹거리의 근본인데 그런데 지금 우리는 선조들처럼 즐겁게 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작은 볼거리는 장독대가 빚어주는 근력의 실체를 찾아보려는 한마당 시행착오이겠습니다. 그래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면서 한편 그런 시행착오가 쌓이고 쌓이는 공연장이 됐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보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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