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수정 '하미'

clint 2025. 9. 2. 11:55

 

 

2025년 2월, 세계평화를 꿈꾸는 한국여행단이 베트남으로 여행을 간다.
아름다운 베트남을 즐기던 여행단은 
하미 마을의 ‘베트남 전쟁 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사건’을 만나게 되며, 
예상치 못한 기상천외한 사건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연극 <하미>는 2024년 2월, 세계 평화를 꿈꾸는 한국 여행단이 
아름다운 베트남을 즐기던 중 갑자기 하미 마을의 ‘베트남 전쟁 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만나며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베트남여행기이다. 

연극 <하미>는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넘나들며 극장 전체를 베트남 휴양지와 
관광지, 과거 학살 마을들로 만들어 마치 관객들에게 베트남 현지에 있는 것과 
같은 감각을 이끌어낸다. 
극단 신세계에서 김수정 작 연출로 공연된 이 작품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여행을 관객과 같이 체험하게 된다. 
낯선 베트남 전쟁을 통해 동시대 전쟁을 바라보며, 우리의 일상에 함께하는 

전쟁과 평화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1일차 
인천→다낭(AN135) 
다낭 공항 도착, 
호텔로 이동 
휴식시간, 미케해변 산책 
응우옌티탄과의 만남 
2일차 
하미마을 위령비 
반탄뚱 초등학교 장학금 수여식 
도안응이아와의 만남 
3일차 
밀라이 박물관 탐방 
껌탄·껌낌마을 공정여행 
4일차 
하미마을 따이한 위령제 쯔엉티투와의 만남  
5일차 
다낭→인천(AN135)  

 



나라 안팎에서 '평화'가 난리를 치고, 온 세계가 전쟁 중인데 '평화'를 찾아 베트남으로 여행 떠나는 얘기라니. 공동창작 참여자들이 다녀왔던 베트남 평화 기행을 모티브로 만든 이 작품은, 베트남전쟁 시 민간인학살이 일어났던 다낭으로 5박 6일간의 평화 기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재구성됐다. 평화를 쫓으려 온 12명의 여행단은 살아있는 피해자를 관광하러 베트남에 온다. 이들은 각자의 사정과 신념에 따라 집단적 독백을 벌이며 이분법이나 양비론으로 정의 불가능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 질문하며 모순을 그린다.  실제 평화기행에서 만난 하미 마을 위령비 사건은 단순하지만 자못 복잡하게 얽혀있다. 1968년  2월 22일, 한국군 부대가 다낭의 하미 마을로 들어가 2시간 만에 주민 135명을 학살하였다. -  2000년, 참전군인의 후원으로 하미 마을에 위령비가 세워졌다. - 당시 마을 주민들은 한국군이  마을 주민을 학살했다는 내용을 비문에 적었다. - 그러자 참전군인 단체와 한국대사관의 반발로  인해 연꽃 모양의 그림으로 비문을 가렸다. 단죄의 입장에서 비문의 글이 보여야 하고 양국의 평화를 기리고자 후원한 단체로서는 연꽃이 보여야 한다. YES/NO로 가를 수 없는, 절대적 진리가 없는  첨예한 각자의 입장이 동시대 전쟁과 얽힌 우리의 모습으로 비유된다.  

 ‘민간인 학살에서 가해자는 누구인가?’ 하는 범죄에 관한 판단, 오래된 문제의 척결이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가해자 자리에 서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넓은 질문으로부터 연극 만들기가 시작 되면서 동시대 전쟁에 대해 우리가 갖는 무관심과 무감각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에 집중하고 많은 논의를 나누었다. 그 과정 중 전쟁이야기를 차치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로 확장되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이 사건을 통해,  동시대 전쟁을 감각하지 못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논할 수 있다. 피해자에 대한 편견뿐 아니라 베트남인 전체를 대상화하면서, 피해자다울 것을 요구받는 당사자 를 직면하게 만들었다. 여행객 내부에 베트남인을 설정하고 타자화하는 시선을 부여하여 연민이라 는 키워드로 확장하였다. 또한 여행단은 베트남인으로 상정한 관객에게 연민 혹은 동정, 차별적인  시선을 보낸다.   

 

 


 전쟁의 고통은 우리에게 아직도 잔재하고 지금도 지구 저편에서 전쟁이 진행 중이다. 아무리 연극이라 한들 현존하는 고통을 재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피해자의 고통을 말끔하게 설명하는 언어 또한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피해자의 고통을 보여주기보다 관객의 상상에 맡기도록 관객에게 피해자의 역할을 일임했다. 고통을 전시하는 것, 그래서 방관자의 태도를 꼬집는 것 그 너머의 가능성을 꾀하고자 관객에게 여행기념품도 준다. 그러면서 나는 가해자가 아니라는 확신에 찬 오만함, 남의 일이라는 평온함, 내 꺼 아니면 관심없다는 우리의 태도를 고증해보인다. 피해자에  과몰입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정녕 우리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을 마음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피해자의 말은 베트남어로 발화되지 않는다. 그런데 객관적 사실의 전달자인 가이드 써니 마저 피해자가 내뱉는 말을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자신의 사견을 얹으며 왜곡을 드러낸다.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모두 자신의 고통에 함몰되어 있다. 전체와 개인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이해관계 따라 자신의 신념을 고집하기 앞선다. 베트남에 와 경험하는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이들은 같은 곳에 있지만 이념과 방향이 다르다. 이들 모두 자신의 이익을 두고 규범은 외면한다. 평화 기행이 다크투어인지 모르고 진짜 평화로운 여행인 줄 알고 오는 인물에게서는 군사주의자를, 국가 대신 사과하려는 인물에게서는 내셔널리즘을,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 비판적인 개인주의자에게서는 나르시시즘을 발견한다. 전쟁 관련 공연을 하고 기후위기 운동을 벌이지만 실상 진짜 전쟁을 모르는 모순에 부딪히는 예술가의 모습도 그려진다. 이들의 모습이 동시대 우리와 닮아있다는 것은 쉽게 눈치챌 것이다. 연민 어린 시선을 전시하기 위해 프로시니엄 무대의 객석을 90도로 돌려 배치했다. 등퇴장로는 일종의 분계선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나눠놓은 객석을 보호하는 바리게이트는 흡사 철창에 갇혀 있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한다. 등장인물들의 왜곡된 사고방식은 여행 내내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만든다.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갈등은 갈피를 잃거나 개성을 잃으며 하나의 갈래로 통일되지 않는다. 여행이 진행될수록 점차 하나의 덩어리로 보이며 집단화되는 여행단에게서 인간의 존엄성을 느끼기 어렵다. 이들이 아름답게 포장하려던 여행은 과연 이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관광과 연극은 누군가의 비극을 소재 삼아 그것을 관람하러 가고 그러한 나 자신에 심취되도록  수많은 환영을 준다. ‘타인의 비극을 소비하면서 살아야하는 부채 의식’이란 연극과 여행의 공통점으로부터, 평화기행이라는 이야기 틀을 마련하였다. 가이드의 설명을 통해 정보전달을 하면서 인물의 변화에 집중하기에도 적합했다. 다양한 인물이, 같은 곳에서 같은 경험을 나누고 각기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가 키포인트다. 여행이 거듭되고 피해자들의 비극을 소비하면서, 정작 그 아픔에는  공감하지 못하고 그 현장에 있는 자기 자신에 도취된 인물을 점차 강조한다. 이는 무대 위의 비극을 보러 온 것만으로 제 몫이 끝난 것처럼 믿는 이들에 대한 반향이다.   
 우리는 대개 새로운 경험을, 혹은 무언가를 보러 여행을 떠난다. 이국적인 풍경과 낯선 곳에 있다는 낭만적 이유만으로 일상에서 하지 않을 일탈도 한다. 거듭 사진을 찍으면서 그곳에 존재하는 자신에 대한 신비화는 낭만적이다 못해 판타지를 방불케 한다. 마치 연극이 뭔가를 해결할 수 있다는  허황된 사명감처럼. 한편 여행객들이 나누는 동시대 전쟁 관련된 담론들은 어떤 해답을 유보하고 화두만 던진다. 일례로 전쟁과 엮여있는 기후위기, 방산사업 등의 여러 담론은 자본주의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 작품의 분량상 더 깊이 얘기하지 못하는 부분 또한 아쉽다. 전쟁에 타격을 받는 건 인간뿐 아니라, 동물들도 있기 때문이다. 흑백논리로 나눌 수 없는 동시대 문제이기에 결론 내리지 않고 내용을 펼쳐보인다. Cầu cho hoà bình luôn bên bạn 당신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여행단에 등장하는 베트남인 리엔은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온 캐릭터이지만 도식화하지 않으려 한국어에 능한 캐릭터로 두고 베일에 숨겨놓았다. 피해당사자의 언어를 통역함으로써 직접 발화를 소거하고 그 외의 모든 베트남 현지인은 한 명의 배우가 맡아 발화한다. 대부분의 베트남어는 대사로 통역하지만 몇 대사들은 베트남어 자막만으로 제시되는데, 부러 정확한 뜻을 설명하지 않아 답답함을 자아낸다. 또한 장학금 수여식에서 전달받은 봉투에는 Cầu cho hoà bình luôn bên  bạn 말이 쓰여있다. 베트남어로 당신의 평화를 기원한다는 뜻이다.  (프로그램에서 발췌) 



김수정 작 연출의 글 
지구 한쪽에선 전쟁을 하는데, 지구 한쪽에선 연극을 한다. 대한민국 성 착취구조 100년사를 다룬 연극 <공주(孔主)들>을 통해 알게 된 ‘베트남 전쟁 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사건’은 나에게, 연극 <별들의 전쟁>으로 나의 ‘가해자성’에  대해 질문하게 해주었다. 연극 <하미>로 타인의 전쟁 비극을 소비하는 연민을 기반으로 한, 나의 폭력적인 ‘평화 특권’을 깨닫게 해주었다. 자! 그렇다면 나는 꽤 정의로운, 괜찮은 사람인가? 같은 지구인데 우리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인류애가 박살 난 것 같은 지금 이 시대, 괜찮은 걸까? 전쟁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거부하고 싶지만 이제 우리도 슬슬 제3차 대전을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전쟁은 픽션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전쟁 같은 공연이 끝나면 나는, 나의 평화를 위해 동남아로 휴양을 가고 싶다.

무려 7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이 작업을 함께 해준 모든 창작자분께 감사드립니다. 평화 기행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극장에서 함께 해주신  관객분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김수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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