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가정의 가장인 '프랑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하여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 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집 현관문을 두드리는 한 여인.
그녀는 24년 만에 찾아온 프랑크의 옛 연인 '로미'였다. 그녀는 그가 24년 전
자신에게 했던 약속을 상기시키기 위해 그를 찾아왔다고 말한다.
그에게 사랑의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그는 욕실에 있던 아내에게 그녀의 방문을 숨기지만
그의 아내 '클라우디아'는 로미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고,
프랑크와 로미의 관계는 그의 아들 안디와 여친 티나의 나이와 비슷하고
자신은 젊어 한때의 풋사랑으로 여기지만 로미는 그게 아니라 아내와
아들을 포기하란다. 19년의 결혼생활을...
안디가 적개심에 돌을 집어 던지고 티나는 실신한다.
모두 놀라지만 잠시 후 의식을 회복하는 티나. 안디를 유혹한다.
그의 아들 '안디' 까지 그녀와 연계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는데...
이들 가족들과 과거의 연인은 어떻게 될까?
연극 <과거의 여인>은 2004년 비엔나 아카데미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롤란트 만의 독특한 연출법인 '되감기와 반복기술'이 잘 반영되어
있으며, 현대적인 감각의 블랙코미디로써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작품은 동명영화로 2013년 독일에서 제작되어 흥행을 얻었으며,
그의 대표작 <황금 용>에 이어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뽑힌다.
24년 만에 느닷없이 찾아온 로미는 프랑크와 한때 사랑을 약속한 기억으로 사랑의 영원성을 주장한다. 이에 프랑크는 그때의 기억을 망각하고 자신의 이기심으로 로미를 밀어내려한다. 이에 로미는 망각에 맞서 기억을 보존하려 한다. 왜 기억을 보존하려 하는가? 우리는 모두 인간의 비인간적인 야만성, 잔인성에 대해 기억해야 하고 야만적인 범죄나 행위의 재발을 막기 위한 장치로써 문화적 기억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현시대에선 인간의 야만성의 결과물인 인간이 저지른 만행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기억되지 않고 왜곡되고 망각된다면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은 끊임없이 되풀이 될 것이다. 로미는 이러한 인간의 이기심, 비열함, 잔인함의 심판자이자 피해자이며 기억되어야 할 인물일 것이다. 역자인 이원양은 과거의 여인에 대해 현대적인 사랑의 복수극이라고 표현했다. 작가가 사랑에 대한 복수의 방법으로 '죽음', '살인' 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은 단순히 사랑이라는 주제만을 다룬 것은 아니라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소원, 동경, 과중한 요구, 결점, 불안, 부족함' 등으로부터 숨어 있는 마음속의 무자비한 복수심과 잔인성의 극단적인 표현일 것이다. 대부분의 관객이 이 작품을 보고 로미의 복수에 대해 의아해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단편적인 부분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에 관한 원초적인 것에 대해 생각해봤을 때 관객들은 자신의 숨겨져 있는 본능에 대해 인정하게 될 것이며 로미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분노한 로미의 복수가 시작되면서 코믹한 분위기는 반전되는데 마치 현대판 메데이아와 같은 처절한 복수가 이어진다.
<과거의 여인>에서는 시간의 연속 대신 시간의 비약이라는 새로운 희곡기법이 사용되고 있다. 예컨대 1장은 갑자기 로미 포크트랜더가 등장해 프랑크에게 지난 과거를 상기시켜주는 장면이다. 그런데 2장 후반부는 1장에 연속되는 사건이 아니라 1장보다 앞서 일어났던 일, 즉 로미의 갑작스런 출현 장면을 다시 보여준다. 따라서 2장 후반부에는 이미 앞에서 나온 1장의 사건을 반복해 제시한다. 이런 시간적인 비약은 2장 초두의 지문에서 “10분전에" 라고 예고된다. 그런가하면 3장은 "집 앞에서, 얼마 후에” 진행되며 4장은 "그보다 이삼 분 전에, 집안에서” 진행된다. 즉, 3장과 4장은 시간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5장은 집앞 언덕 위에 앉아 있는 안디와 티나가 로미 포크트랜더를 향해 돌을 던지는 장면이며, 이 사건은 티나의 서술로 묘사된다. 6장 지문은 "그러는 사이에" 라고 되어 있는데 집 안에서 클라우디아와 프랑크가 짐을 싸고 있는 장면이다. 이는 집 밖에서 일어나는 5장과 동시에 진행되는 사건이다. 그런가 하면 11장에는 "2일 전에”라는 지문에 나오고 12장에는 “이틀 후에"라고 나온다. 이 극작품에 쓰인 시간의 비약에 대해서는 극이 시작하기 전에 저자가 "장면이 시작할 때 시간의 비약에 대한 안내는 자막, 방송 또는 다른 방식으로 분명히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극적인 사건 진행의 연속성 파괴는 관객의 기대와 오랜 관극 습관을 깨뜨리는 기법이다. 이것은 영화에서 사용하는 회상 전환의 기법이기도 하며 현대인의 비디오 감상 행태이기도 하다. 테이프나 CD를 되돌려서 지나간 장면을 반복해보기도 하고 어떤 장면은 뛰어넘기도 한다. 이렇게 함으로 써 주요장면을 한 번 더 검토할 수 있다. 따라서 연속성을 갖는 극적 사건진행이 실제 삶의 한 장면이란 연극적 환상은 파괴될 수밖에 없다. 연극은 어디까지나 작가나 연출가에 의해 재구성된 인공물이다. 이 극작품에 적용된 시간의 비약 기법은 일종의 새로운 생소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롤란트 시멜페니히(Roland Schimmelpfennig, 1967년 9월 19일 ∼, 괴팅겐 출생)는 현재 독일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극작가이다. 그의 극작품은 40개국 이상에서 공연되고 있다. <황금 용>(2009)은 2010년 5월 뮐하임 연극제에 초청받았으며 여기서 그는 뮐하임 희곡작가상을 수상했다. 그의 극작품들은 40여 개 외국어로 번역·공연되어 호평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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