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난다면?
그리고 나 역시 그 복제인간 중 하나라면?
생각만 해도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든다.
SF영화 속에서나 봐왔음직한 상황.
이 상황이 연극 무대 위에서도 펼쳐진다.
연극 ‘넘버(A Number)’는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시작한다.

평범한 남자가 35살이 돼서야 자신이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남자가 찾아와 자신을 죽이고 자살한다.
아들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진 아버지 앞에 똑같은 모습의 아들이 찾아온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
기막히게도 남자를 복제한 것은 아버지였다.
첫째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버리고 새로 복제한 아들을 얻는다.
하지만 폐기된 줄 알았던 첫 아들이 살아오면서 평온한 일상은 깨진다.
복제된 아들은 모두 20명.
이제 아버지는 남은 19명의 아들들을 만나야 한다.

극단 컬티즌에서 2006년 한국초연한 이 작품은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카릴 처칠의 작품이다. 스티븐 달드리가 연출을 맡고 다니엘 크레이그가 출연해, 2002년 9월 런던 로열코트극장에서 개막했다. 이 작품은 그 해 이브닝 스탠다드 연극상 희곡상을 수상했다.

카릴 처칠의 위대한 이 작품은 길이로는 한 시간에 불과하지만 대부분의 극작가들이 12편의 장막 희곡에서 다루는 것보다 더 많은 드라마와 아이디어들을 담아내고 있다. 한편으론 심리 스릴러고 한편으론 SF 한편으론 부자 관계에 대한 분석인 이 작품은 우아한 구조적 소박함에 놀라운 지적, 감정적 깊이를 결합하고 있다. 희곡은 인간 복제가 과학적 가능성의 영역에서 과학적 현실의 영역으로 바뀌게 되면서 벌어지게 될 악몽과 같은 시나리오들에 대한 분석이다. 하지만 처칠은 훨씬 더 깊이 파고들어서 자신의 작품이 본성 대 양육 토론에 대한 마음을 사로잡는 분석으로 확장시킨다.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첨단 과학의 실험과 철학적 질문들로 희곡이 전적으로 가상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미래에 일어남직한 상황에 대해 불온하지만 매력적인 인상을 담아내는 일은 매우 드물다
한시간 동안 진행되는 예언의 실험이며 정체성에 대한 숙고이며 제외 관련 과학의 마술이 앞으로 우리의 마음과 머리에 대해 요구하게 될 지도 모르는 악몽적 상황에 대한 상상이다.

처칠은 매 장마다 새로운 정보와 갑작스런 반전들을 제공하고, 일부 극적 전개는 경악스러울 정도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종종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만, 넘버는 또한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과학적인 결정론자들은 인간은 유전인자에 의해 결정적으로 운명지워졌다고 주장하지만 처질은 이런 입장을 반박하며, 궁극적으로는 복제에 대한 이런 포피적인 문제를 벗어나 가장 심오한 질문들을 던진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까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며,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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