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루이지 피란델로 '고문'

clint 2025. 5. 15. 12:29

 

 

중년 실업가 안토니오는 그의 변호사와 출장을 가는데

부인 줄리아와 인사하는 모양새가 이상한 걸 느낀다.

출장기간 중에도 평소와는 다르게 무척 피곤하게 변호사를 압박하는데

변호사인 안드레아는 그런 안토니오가 낌새를 채고 그러는지를 놓고 고민하고...

결국 딴 핑계를 대고 먼저 출장에서 돌아와 줄리아를 만나러 온다.

그리고 불안한 마음으로 남편이 눈치 챈 것 같다고 얘기를 하나

부인은 절대 그럴리 없다고 한다. 그런 안드레아는 겁쟁이 같이

모든 걸 부인에게 넘기고 도망가다시피 간다.

그리고 얼마후 남편이 출장에서 온다. 평소와는 달리 출장에서의

이런 저런 얘길 하는데 서서히 그의 얘기에 부인의 안색이 변해 간다.

얘기인 즉은 기차에서 만난 사람들의 얘길 전하는데

부인이 불륜을 범했을때 어떻게 하는게 좋으냐 하는 얘기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바로 터드리지 말고

서서히 피를 말리듯 압박하여 부인으로부터 자백을 받으라는 것이고...

결국 남편의 고문 같은 얘기에 부인은 고백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남편한테 애원을 하나 냉정하게 거절한다.

결국 부인은 마지막 인사를 하고 방문을 닫는데....

잠시 후, 단발의 총성이 들린다.

 

 

 

루이지 피란델로는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 과 '엔리코 4세'로

1934년 노벨상을 수상한 대단한 작가이다.

전후세대를 아우러 가장 많은 후배 극작가들이

그를 멘토로 삼고 존경받는 이태리 출신의 거성이다. 

시, 소설을 먼저 쓰기 시작했고 26살 때인 1892년 처음 쓴 단막 희곡 작품이

바로 '고문'이란 작품인데 원제는 '고삐' (La Morsa)이다.

번역자가 작품의 분위기상 바꾼 것 같은데 그럴 듯하다.

 

중앙대 영연과 공연 장면 (1970년대 후반)

 

진부한 스토리인것 같으나 그런 삼각관계의 멜로물에

엄청난 포스의 심리적인 압박과 갈등, 거기에서 발버둥치며 나오려는

부인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고문이라는 번역 제목이 어쩜 더 어울이는

이 작품이 작가가 26살에 쓴 첫 희곡이라니 이 또한 대단하다.

이후 이 분은 연극에 푹 빠져 명작이자 부조리극의 효시 격인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 썼다.

전위극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숱한 연극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세계 연극의 흐름을 바꿔놓았다는 평을 듣는다.

이 작품에서 불륜을 알게 된 안토니오가 비웃듯, 냉정하게 안드래아와

줄리아에게 대하는 말과 행위는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게 할 정도로

냉혹한 고문이라 하겠고 그런 인물들의 미세한 심리변화를

잘 표현하는 것이 이 작품의 KEY라 하겠다.

 

 

이 작품은 1970년 후반에 중대 영연과에서 초연했고...

(필자는 이 공연을 보고 작품이 좋아 대본을 얻었음)

그 이후론 공연이 안된 작품이다. 

등장인물 4명, 45분 정도의 단막이지만 루이지 피란델로의 첫 희곡으로

그의 필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3류 주간지의 불륜 기사에 어울릴 내용을 심리적으로 파헤쳐

마치 고문하는 듯한 남편과 이를 방어하는 부인의 상황이

각자의 자존심과 얽혀 충돌하는데...

비극적으로 끝나지만 결코 아내의 불륜에 복수하려는

남편이 승자일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을 변명하지 않는 부인 줄리아가

더 관객의 동정을 받을 것이다.

줄리아는 아내의 부정만을 탓하는 냉정한 남편에 맞서

조용히 생을 마감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