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란돌리나는 피렌체에서 여관을 운영하고 있다. 우아한 풍모와 재치를 지닌 그녀는
자신의 여관에 투숙한 모든 남자 손님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특히 몰락한 귀족인 포를리포폴리 후작과 돈을 주고 귀족 작위를 산 알바피오리타 백작은
그녀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반면에 여성혐오자를 자처하는 리파프라타 기사가 이들을 비웃는다.
실제로 그는 미란돌리나에게도 거칠고 퉁명스럽게 대한다.
그러자 자존심이 상한 미란돌리나는 그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여자로서의 명예를
걸고 온갖 수완을 발휘해 그로 하여금 자신을 사랑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녀의 집요한 유혹과 술책에 철옹성 같던 기사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경계심은 믿음과 호감으로 대체되고, 급기야는 사랑의 포로가 되고 만다.
게임에서 승리한 미란돌리나는 환희의 절정에 오른다. 하지만 그녀의 복수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녀의 궁극적인 목적은 시랑의 감정을 거스름으로써
기사를 혼란에 빠뜨리고 절망 속으로 밀어 넣어, 마침내 자신의 발밑에
무릎을 꿇게 하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목적은 완벽하게 실현된다.
졸지에 조롱거리가 된 기사는 끓어오르는 자괴감과 분노에 몸부림친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미란돌리나는 예정된 배필인 종업원 파브리치오와의
결혼을 선언한다.
1753년 1월 베네치아의 사육제 기간에 초연된 <로칸디에라>는 1판 1752년 10월~12월 사이에 집필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나이 만43세였던 골도니는 산탄젤로 극장의 메데바크 극단과 맺은 전체 계약기간의 말미에 있었으며, 이미 산 루카 극장의 소유주이자 세습 귀족인 안토니오 벤드라민과 새로운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말하자면 작가 골도니에게 정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적잖은 변화가 예정되던 시점이었다. <로칸디에라>를 쓸 무렵 골도니는 작가로서 이중적인 요구에 직면해 있었다. 계약상 시즌 내에 6편의 희극과 4편의 카노바초, 그리고 5편의 오페라 대본을 써내야 했으며, 동시에 복잡하면서도 때로 모순된 대중의 취향에 부응해야 했다. 그러나 그가 안고 있었던 제약은 보다 현실적인 데 있었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관행 자체가 문제였다. 그들은 즉흥성에 기반한 전통적인 연기방식에 젖어있는 관계로, 텍스트 이해에 관한한 거의 무방비상태에 놓여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코메디아 델 라르테(Commedia dell’Alte)의 개혁을 염두에 두고 있던 골도니로서는 배우와의 작업 과정에서 온갖 우회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능동적인 협업을 전제로 함께 만들어갈 작품에 대한 연극적 전망을 공유하고자 노력했으며, 배우들의 고유한 특성들, 예컨대 외모나 목소리, 연기 성향 등을 텍스트 구축과 해석의 중요한 근거로 삼았다. 이 부분과 관련한 실례로서 골도니는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힌 바 있다. “나는 등장인물을 그려 놓고 그에 맞는 배우들을 물색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배우들을 겪고 난 다음에야 인물을 구상하곤 했다.”
궁극적으로 <로칸디에라>는 집단 속에서 일하는 한 작가의 냉철한 현실 인식과 자전적 체험, 그리고 확고한 예술적 사유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단편적인 발상과 관행적인 주제의식에 입각해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라는 얘기다. 최근 들어 <로칸디에라>를 무대화하고자 하는 일련의 노력들을 살펴보면 작품의 기원적 측면을 되짚으려는 시도들이 자주 눈에 띈다. 그 결과 <로칸디에라>에 내재된 순수한 연극성을 찬양하면서 일상의 미학적 두께를 제거해나가려는 탈 사실주의적인 경향과, 텍스트자체를 최대한으로 역사화하려는 극단적 사실주의가 부각되곤 하는데, 이는 한편으로 골도니 읽기의 일반적인 토대가 되기도 한다. 골도니는 회고록을 쓰면서 제목 <로칸디에라>에 해당하는 적절한 프랑스어 어휘를 찾지 못해 한동안 고민에 빠지게 된다. 본래 ‘로칸디에라(locandiera)’는 ‘기구가 딸린 호텔’을 뜻하는 ‘로칸다(locanda)’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골도니는 결국 마땅한 번역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로칸디에라>의 결말은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미란돌리나가 왜 갑자기 어느 시점에 이르러 가해자에서 희생자의 모습으로 돌변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사랑하지도 않는 종업원과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는지가 불분명했다. 사실인즉 그녀는 아버지의 임종 순간에 모종의 약속을 한 바 있다. 바로 파브리치오와 결혼하겠다는 것인데 정작 파브리치오는 그녀가 약속을 지킬지에 대해 확신을 못하고 있다. 게다가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방관자의 입장에 머물고, 기껏 그의 기득권을 주장했을 때, 오히려 복종할 것인지 아니면 떠날 것인지에 대한 선택만을 강요받는다. 기실 미란돌리나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녀는 자유와 속박 사이에서 어떠한 선택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그녀는 사회의 조건을 바꿀 수 있는 개혁의 주체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주사위는 잘못 던져졌다. 따라서 이야기의 결말은 이중의 실패를 용인하게 된다. 하나는 기사의 몫이다. 그는 자만과 격정으로 인해 자신을 내친 여자를 지배할 수도 없고, 그나마 밖으로 내몰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미란돌리나의 몫이다. 그녀 역시 모호한 세계를 보여줄 뿐인 한 남자의 불합리한 충동을 감당해낼 수가 없다. 이제 그들은 서로를 놓아주어야만 한다. 어차피 그들의 사랑은 진실(기사)과 거짓 (미란돌리나)의 위험한 조합에 불과하며 궁극에는 걷잡을 수 없는 재난이 되고 말았다. 이중의 패배는 결국 감정의 이중적인 위기에서 비롯된 결과다. 이제 남는 것은 규범으로의 회귀뿐이다. 유희의 공간이 되었던 여관의 홀은 이제 진지한 공간, 생업의 공간으로 남게 된다, 대부분의 회극과 달리 결혼은 불가능한 자유의 꿈을 쫓았던 미란돌리나에게 행복한 결말이 아닌 징벌의 의미로 귀결된다. 그녀는 ‘마음의 일’과 ‘돈의 일’을 결코 혼동하지 않는 ‘여관집 여주인’으로 남았어야했다. 이것이야말로 질서의 승리, 즉 골도니가 지향했던 사회적 순응주의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그런 승리인 것이다. 분별없던 젊은 날, 방탕한 열정을 잠재우기 위해 공증인의 딸과 서둘러 결혼을 함으로써 견실한 생활을 택했던 골도니와 마찬가지로, 미란돌리나는 아버지의 유언을 쫓는 자식의 도리와 개인적인 이익에 부응해 결국 파브리치오와의 결혼을 선택했다. 사랑의 감정 속에서 무질서와 야만을 목격했던 그녀가 마침내 삶의 도피처를 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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