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아버지의 제삿날. 가족들이 제사준비로 바쁘다.
노모도 오셨고, 장남인 정우가 9살 때 돌아가신 부친께 술을 올린다.
정우의 아들, 석이와 같이 절을 한다.
노모의 얘기로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단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 김병권의 생존 당시의 일이
노모의 기억으로 재생된다.
출판사 사장이었던 김병권. 당시 영업부장이 개인사정으로
갑자기 그만두다 보니 수금을 위해 매달 출장을 가야했다.
부산을 거쳐 광주에 총판 서점을 들려오는 일정이었다.
1980년 5월17일 광주에 도착한다. 그리고 이틀 후면 돌아오는 일정인데
일주일 째 연락도 없이 행방불명된 것이다.
출장 열흘만에 집에 돌아온 김병권. 아무일 없던듯 일에 매진한다.

그 후, 3, 4개월 후...
형사들이 들이닥쳐 조사할 것이 있다고 끌려간다.
다짜고짜 광주사태 때 왜 광주에 갔냐고 묻는다.
그리고 전 영업부장도 지금 구속되었다고 한다. 빨갱이라고.
김병권은 자신은 6.25 때 무공훈장를 받은 애국자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경찰서로 배분된 할당 때문인지, 결국 삼청교육대에 끌려간다.
훈련 중 교관한테 왜 자신이 여기에 왔는지 모르겠다고 항변하다가
죽을 만큼 얻어맞고 독방에 갇힌다.
삼청교육대... 사회 정화를 명목으로 정치 보복과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국민들의 저항 의지를 억누르게 위해 만든 징벌 기구이지만
몸과 마음, 정신을 맑게 교육시킨다고 3청교육대란다.
오랜 기간 교육 후 퇴소한 김병권은 정상인이 아니었다.
정신이 왔다갔다 했고, 어느 날 집에서 나간 뒤 소식이 끊어졌고
광주 어딘가 무연고 묘소에 묻혀있다고 연락을 받았던 노모였다.
그 후, 자식들에겐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것으로 한 것이다.

이 작품은 1980년대라는 현대 역사의 DNA 한 부분을 무대화한 것이다.
1979년 이후 쓰나미처럼 빠르게 밀려든 한국 현대사의 '광풍(狂風)의 시대'.
그 역사 속에서 평범하게만 살아가던 한 중년 가장의 인생이 공권력에 의해
어떻게 막다른 골목으로 몰려가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화해되고
용서되는지를 한 가정의 반전된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2022년 울산연극제 대상 수상작인 이 작품에 대해 백운봉 연출가는 “이 작품은 1980년대라는 현대 역사의 DNA 한 부분을 무대화한 것이다.”며 “살아있는 생물은 DNA를 후대에 전달함으로써 시간이 제약하는 생명의 한계를 뛰어넘고, 그 존재는 비로소 과거와 미래를 관통할 수 있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지호원 작가의 희곡 「달빛에 젖어 잠들다」는 여전히 우리에게 아픔으로 남아있는 1980년대 흑막 역사의 한 일부를 무대화해 이목을 끈다. 1979년 10·26사태 이후 쓰나미처럼 밀려든 광풍의 한국 현대사 한 단면을 통해 그 당시의 우수와 회한이 눈물겹다. 평범한 중년 가장의 인생이 공권력에 의해 어떻게 막다른 골목으로 이끌려가면서 화해하고 용서되는지 한 가정의 반전 이야기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지호원 작가는 199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후 리얼리티의 숨겨진 반향을 관람객에게 은연중 질문하는 작품을 지향하며 「바람의 집」, 「마음의 감옥」 등 수작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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