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뮤지컬 '96 고래사냥'

clint 2025. 5. 7. 20:41

 

 

 

여친 미란한테 절교를 당한 병태. 방황한다.
진실과 사랑을 찾아나선 병태가 거지 민우와 만난다.
세상물정을 나름 훤히 깨우친 민우는 사창가로 데려간다.
그리고 벙어리 창녀 춘자가 고향을 그리워하자 병태는 민우와 같이 

춘자를 구출, 그녀의 고향에 데려다 주기로 한다.
서울에서 우도까지. 그러나 창녀촌의 깡패들이 쫓아온다.
춘자의 고향에 이르는 여로... 우여곡절이 많다.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특히 민우가 신원확인이 안 되자
조사를 더 하려하자, 민우와 춘자는 벙어리 부부행세로
빠져 나오고... 깡패들과의 일전도 기다리는데....
그 살벌한 깡패들을 감화시켜 춘자를 포기하게 만든다.
그리고 우도에 도착해 춘자와 엄마의 상봉을 이루어 낸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병태. 좀 성숙해졌다.
미란이 병태한테 다가온다.

 



뮤지컬 ''96 고래사냥'도 병태의 성장하는 과정은 원작소설과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인물의 성격과 상황은 90년대에 맞도록 달리 설정됐다. 병태는 소심하고 나약한 모습이 아니라 활달하고 자기표현에 거침없는 젊은이로 그려진다. 80년대 대학가의 암울한 분위기는 대중문화에 길들여진 신세대들의 향락적인 풍경으로 대치된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들이 찾아나선 "고래"로 제시되는 것은 "자기희생에 바탕한 사랑"이다. 원작과 달리 "사랑의 힘"이 춘자의 잃어버린 말을 되찾게 하고 병태 일행을 집요하게 뒤쫓던 깡패들을 감화시켜 춘자를 포기하게 만든 점은 다르다.
이 작품은 최인호 원작소설을 극본 박용재, 음악 김수철, 연출은 이윤택이 맡았다. 



사람은 오랜 옛날 바다에서 뭍으로 나왔다. 푸른 바다에서 물살을 힘차게 가르며 자유롭게 떠다녔던 기억이 우리에겐 어슴푸레 남아있다. 그러나 사람과 같은 포유류인 고래는 아직까지 바다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어쩌면 지난날 육지로 나와봤지만 바다가 몹시도 그리워 다시금 그 넓은 보금자리로 돌아간 것인지도 모른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행했던 80년대에 우리는 모두들 고통 속에서 신음하였지만 그 시절에도 절망보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슴속에 품으며 학교와 거리에서 독재정권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시절 젊은이들의 모습을 대변했던 소설이 바로 최인호의 <고래사냥>이다. 이 소설은 80년대를 관통하는 시점에 쓰여졌으며 수많은 사람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당대 최고의 문제작으로 평가받았다. 그때의 젊은이들이 꿈꿔왔던 고래는 무엇이었으며 어디에 존재했던가. 그들은 과연 고래를 찾을 수 있었던가. 많은 시간이 흘러간 지금, 이제 우리는 그 암울했던 시기를 차분하게 돌이켜보면서 그때 그 사람들의 정열에 정당한 평가를 내려야 할 것이다. 
동구권의 몰락과 문민정권의 탄생으로 80년대를 장식했던 이데올로기가 낡은 유물로 전락하게된 지금 우리의 절망은 무엇이며 우리가 새롭게 품어야할 희망은 무엇인가 세기말적 징후들이 들썩거리면서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자아를 잃어가는 현대인들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불과 몇년 사이에 우리의 사회는 심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시대적 상황이 판이하게 달라진 지금, 우리는 갈 길 잃은 어린 양처럼 제자리를 맴돌고 있을 뿐 겉으로 는 건강하지만 속은 점점 썩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80년대 젊은이의 초상이었던 병태가 90년대의 중반을 치닫고 있는 지금은 어떠한 모습으로 바뀌어져 있는지, 그때의 희망이었던 고래가 이 시대에도 아직 남아있는 것인지 우리는 다시금 생각해야 한다. 

 



작가의 글 - 최인호
내가 고래사냥에 가사를 쓴 것은 1975년 <바보들의 행진>이란 영화의 음악 녹음실에서였다. 그 영화의 음악을 맡았던 송창식씨가 녹음실에 왔을 때 마침 주제가가 필요할 것 같다고 하길종 감독과 의논하고 즉석에서 30분만에 쓴 가사였다. 그러나 막상 이 음악은 영화에 삽입되지 못하고 금지곡이 되고 말았다. 같은 대학생들이 데모할 때마다 이 노래를 불렀으며 한때 정보부에 끌려가 이 노래에 나오는 고래가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집요한 문초를 받은 적이 있을 정도였다. 금지곡이 되어도 이 노래는 널리 퍼져나가 젊은 청춘들의 주제가가 되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인위적으로는 시대의 흐름을 억지로 막을 수 없다는 섭리를 느끼곤 했었다. 이미 영화로 서너 편 이상 만들어진 <고래사냥>이 뮤지컬로 부활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친정아버지로서 몹시 반가웠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불안감이 있었다. 
과연 1996년의 신세대들에게도 이와 같은 청춘상이 받아들어질 수 있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획을 맡은 송승환씨나 연출을 맡은 이윤택씨 그 그리고 음악을 맡은 내 아우 수철이와 남경주, 장두이, 송채환씨를 비롯한 여러 주인공들을 만났을 때 나는 솔직히 불안감보다는 너무나 기뻐서 이들의 이마에 입맞춤하고 싶었을 정도였다. 내게 있어 이 작품이 뮤지컬로 부활한다는 것은 행운이며 기쁨이다. 그리고 이 작품이 오늘을 사는 신세대들에게 신화와 같은 고래의 희망으로 다가와 주기를 나는 바란다. 자, 이제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최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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