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삼시랑의 은혜와 권능을 칭송하는 향연을 즐기고 있을 때
삼시랑이 손수 낳은 세상에서 제일 예쁜 딸을 품에 안고 들어온다.
이 축하연이 계속될 때 마마각시가 들어와 그녀의 딸에게 저주를 내린다.
그 후 세상에서 제일 예쁜딸은 마마병에 걸리게 되고 삼시랑은 근심에 잠긴다.
이 기회를 틈타 마마는 삼시랑에게 자신에게도 아기를 배게 해달라고 청한다.
삼시랑의 힘으로 애기를 가진 마마각시는 기뻐하고 만족해 한다.
마마각시는 그녀가 꾼 꿈을 삼시랑에게 말한다. 그것은 분명 태몽이었으나
불길하고 슬픈 꿈이었다.
마마는 곧 태어날 아기에 대해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때 삼시랑은 마마에게 임신을 시켜준 조건으로 그녀의 아기의 병을 낫게 해
달라 요청한다. 이에 질투심 많은 마마는 삼시랑의 아기보다 더 예쁜 딸이
태어난다면 그 저주를 없애겠다고 말한다. 삼시랑은 그녀의 권능으로
마마각시의 뱃속에 애기가 영원히 태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예언한다.
아기의 병이 날로 심각해지자 삼시랑의 근심은 점점 깊어진다.
마마의 아기는 해산할 날이 왔어도 태어나지 않는다.
이들 둘의 끝없는 싸움을 가엾게 여긴 산신령은 둘에게 서로의 저주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을 말해준다.
삼시랑과 마마의 싸움으로 백성들의 생활은 엉망이 된다. 모든 생산활동은
불가능해지고 병의 고통에서 벗어 날 길이 없다. 신의 관장이 중단된
백성들의 삶은 무질 서와 혼돈의 카오스 형태로 몰락해가고 죄없는 백성이
형벌을 받고 가난과 질병에 시달린다.
산신령이 말한대로 삼시랑은 마마바위의 구멍을 일심히 메우고,
마마 역시 삼시랑의 바위에 돌을 정성껏 쌓아 올린다.
드디어 하늘의 문이 열려 비와 폭풍이 몰아친다.
뒤이어 날씨는 개고 하늘에서는 하늘과 땅,
인간을 상징하는 삼색띠가 내려오고 이들의 원무는 계속된다.
우리나라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신령스러운 명산으로 일컬어지는 지리산에는 두 개의 비슷한 크기의 바위가 얼굴을 대하듯이 서로 마주보며 서있다. 한쪽 바위는 마치 만삭이 된 여자의 불룩한 배처럼 반들반들 매끈하고 곱고 육감적인 모습으로 "삼시랑 바위"라고 불리우고, 다른 한쪽은 마마병에서 얻어지는 사람얼굴의 못생긴 곰보자국 처럼 구멍이 숭숭 뚫리고 험상궂고 괴상스런 모습에서 "마마바위"라고 불리워진다. 그 까닭으로 이들 두 개의 크고 우람한 바위는 저주와 형벌의 바위로 전해져 내려오는데, 애기를 낳거나 얘기를 소원하는 여인이 삼시랑 바위에 빌면 그 효험을 얻고 마마병에 걸린 갓난애기를 위해서는 마마바위에 가서 빌면 그 열병 이 씻은듯이 낫는다는 전설도 내려오고 있다. 이 작품은 이 쌍바위 전설에 얽힌 민간실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생육의 신인 삼시랑은 여자에게 아기를 배게하고 그것을 뱃속에서 보호하여 기르고 또한 산모의 순산을 돕는 것이 재능인 선신이며 마마신은 시샘과 질투를 속성으로 가진 악신으로서 애기의 죽음까지도 가져올 수 있는 공포와 위협의 대상이다. 어느 날 삼시랑 신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딸"을 자기 스스로 낳는다. 이에 대해 시샘이 많은 마마신은 삼시랑의 애기보다 더 예쁜 딸을 자기도 낳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삼시랑 신은 자신의 권능과 명예를 걸고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두 신 사이에는 결코 양보 하거나 양도할 수 없는 갈등과 대립이 일어난다. 작자는 이 작품에서 삼시랑과 마마각시의 갈등과 대립을 인간생 활의 기본적인 존재양식으로 삼으면서 서양문명과는 다 '른 합일과 조화, 혹은 관조의 리듬을 찾으려하면서, 무대의 구성은 한국적 정서와 고유의 사상을 표현하려는 의도에서 우리의 가락과 춤. 율동과 몸짓 토속적 요소와 제의적 풍속 등을 적절하게 도입하여 집단표출 함으로써 하나의 완성된 극예술의 표현양식을 모색하고 있다.
삼신할미의 설화는 무의식적으로 우리 민족의 가슴을 지배하고 있는 반면 그것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이 없다는 것이 이 작품에 대한 우리들의 열정에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달집" "북" "탑" "소작지"등 리얼리즘 연극에 기반을 두고 역사적 사회적 상황과 인간의 운명을 다루어 온 작가 노경식에게는 이번 작업이 우리민족의 고유 심성에 접근해 보는 좋은 계기였을 것이다. "삼시랑”의 소재는 삼시랑 바위와 마마바위라 불리는 지리산속의 두 바위에 얽힌 전설이다. 삼시랑은 전라방언으로 태(胎)를 의미하는 삼이라는 순수한 우리말에서 유래된 출산과 육아를 관장하고 마마신은 역신으로서 질병을 뿌리고 죽음을 초래하는 악신이다. "삼시랑"에서 이 두 신은 "세상에서 제일 예쁜 딸”을 낳기 위해 신의 자존과 명예를 걸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히 대립한다. 이들의 대립은 지고의 미를 향한 인간 욕망의 내면세계인 셈이다. 이 작품의 발단은 삼시랑 스스로 아기를 순산하면서 부터다. 왜 삼시랑 스스로 아기를 낳는가? 존재형식의 변화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인간에게 아기를 점지해 주던 "의무"의 신격(神格)에서 스스로도 낳아보려는 "권리"의 인격(人格)으로의 변모, 그것은 주어진 존재형태에서 언제나 끊임없이 탈출하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며 세상에서 제일 예 쁜 딸은 그런 욕구의 실체인 셈이다. 문제는, 삼시랑과 마마각시의 대립으로 민초들의 생활이 엉망으로 된다는 것에 있다. 생산 활동이 불가능해 지고 병의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신의 관장이 중 단된 민초들의 삶은 무질서와 혼돈의 카오스형태인 것이다. 의무에서 권리에로의 전환을 통해 자유상태를 유지하려는 두 신은 선과 악의 개념을 떠나 동질적인 자유의지의 개념에 관련되어 있다. “삼시랑"에서 두 신이 욕구하는 지고의 미는 그 자연성 때문에 민초들에게 요청되는 평화와 통일이라는 사회적 가치에 우위성을 양보하고 파토스를 맞아 패배한다. 이 작품은 이렇듯 자유와 평화시대의 대립에 대한 보다 안정적이며 보편성을 획득한 민초들의 한판 신바람의 작품이다.
작가의 글/ 노경식
명산 지리산의 경상도 어느 산간마을에 쌍바위 전설이 하나 있다. 서로 비슷한 크기의 우람한 돌덩이가 얼굴 대하듯이 마주보고 서있는 이 두 개의 바위는 저주와 형벌의 바위로 전해져 내려온다. 한쪽 바위의 형상은 마치 만삭이 된 여자의 불룩한 배같이 반들반들하고 매끈하고 육감적인 모습으로 "삼시랑 바위"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다른 한쪽은 마마병을 앓고 난 곰보자국처럼 구멍이 숭숭 뚫리고 못생기고 험상 궂은 모습에서 "마마바위"라고 불려진다. 애기를 못낳거 나 애기를 소원하는 여인이 삼시랑바위에 빌면 그 효험 을 얻고, 마마병에 걸린 애기를 위해서는 마마바위에 가서 빌면 그 열병이 씻은듯이 낫는다는 무속이 옛부터 관념되어 있다. 삼시랑은 삼신할미의 다른 이름으로서 生育의 권능을 가진 善神이며, 마마각시는 질병과 고통과 죽음을 가져 오는 공포와 위협의 化身으로서 悪神이다. 어느 날, 삼시랑신은 “세상에서 제일 예쁜 딸”을 자기 스스로 낳는다. 이에 대하여 시샘과 질투가 많은 마마신이 삼시랑 애기보다 더 예쁜 딸, 아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딸"을 자기도 가지기를 욕구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의 권능과 명예와 자존을 걸고 갈등과 대립을 벌인다. 두 신 사이에서는 결코 양보하거나 양도할 수도 없는 피나는 싸움이며, 그것은 곧 지칠 줄 모르는 불굴의 용기와 도전이고, 무한 욕망에의 끝없는 집념이다.
여기서 작자는, 항상 지고의 가치 -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 욕망의 무한대와 그 보편성을 읽어보고, 또한 현대의 극한적 대립과 단절에서 오는 비극성과 그 승화를 되새김질해 보고자 한다. 끝으로, 이 작업에 참여해 주신 스탭진 여러분과, 특히나 반년 가까이 각고의 열과 성을 다해준 출연자 여러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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