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를 앞둔 어느 날, 다은이가 사고로 죽었다.
갑작스럽게 친구들을 위한 심리 치료가 시작되고.
“우릴 위한 생각은 아닐 걸”
평소처럼 시험을 준비하는 혜민, 한결, 재우, 그리고 연주.
“똑같아, 아무 일도 없어.”
그러나 시간은 결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두려움, 의심, 자책, 질투, 회피. 온갖 감정들이 위태롭게 뒤엉켜
굳게 닫힌 다은의 사물함을 자꾸만 두드리게 만든다.
“왜 열려고 한 거야?”
"숨 쉴 때마다 냄새가 나."
같은 반 친구 다은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 후 어그러져버린 일상 속에서 혜민과 세 친구들(한결, 재우, 연주)은
자신들만의 균형을 찾기 위해 저마다 발버둥치기 시작한다. 극은 죽은 친구의 사물함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라는 모티브에서 출발해 청소년과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조명한다. 우리는 그 '냄새'와 무관하게 다시 일상을 숨 쉬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작품 '사물함' 의 가장 큰 사건은 편의점에서 최저시급도 받지 못하고 일하다 창고가 무너 죽은 17살 다은의 죽음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곧 사건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된다. 다은의 죽음은 아마도 곧 잊혀질 것이다. 다은의 죽음 이후 이전의 일상으로 복귀하려는 세 명의 친구들이 있다. 그리고 다음의 죽음 덕분에 그 전부터 욕망해왔던 세계에 진입할 수 있는 티켓을 얻게 된 한 친구가 있다. 견고한 안전장치가 약속되어 있는 집단, 다은의 죽음 이후, 그 집단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 이후 그 죽음에 애도하기보다, 자신이 손에서 쥐고 있던 것을 빼앗기게 될까 두려워하는 '아직 어린' 동시에 '너무나 어른스러운' 청소년들이 걸어 나온다. 다은의 죽음 이후 다은의 사물함에서는 냄새가 난다. 친구들은 사물함에서 다은이의 가난이 썩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썩고 있는 것은 정말 다은의 가난일까? 비밀처럼 잠겨 있는 사물함을 열면, 무엇이 나오게 될까. 나는 그 사물함에 다은이가 꿈꾼 세계, 일상 혹은 다은이가 좋아하는 것들이 들어있길 바랬다. 죄책감이나 부끄러움 혹은 윤리로 포장되었던 실체가 감춰져있는 곳이 사물함이 아닐까. 그래서 그 사물함을 그토록 열기 어려운지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말 - 김지현
청소년극이란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인공이 누구든 결국 '청소년 문제'를 돌파하는 극이 청소년극인 것 같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현재 청소년 문제에 가장 예민한 것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때 돌아온 답은 '생존'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청소년기엔 자의든 타의든 언제나 고민하던 것 중 하나가 '죽음'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나는 과연 살아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법적으로 성인이 된 지금도 저는 제가 어른이 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른은 여전히 제게 너무나 먼 것이고 영원히 될 수 없는 것이라고만 느껴집니다. 더군다나 어른에 의해 아이들이 죽어가는 시대를 바라보며 아직 저는 고민합니다. "우린 정말 살아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언젠가 이 고민이 끝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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