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한국극작가협회 신춘문예 당선작
폭설로 기차가 연착하면서 일본 홋카이도의 어느 역에서
20대의 한국인과 40대의 일본인의 우연한 만남과 가슴아픈 사연이
서로 만나는 내용이다.
심사평 - (심사위원 차근호, 오세혁, 김도경)
2025년 (사)한국극작가협회 신춘문예에는 총 128편이 응모했습니다. 이는 작년에 비해 46편이 증가한 수치로 희곡을 향한 관심과 열정을 실감하게 합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극문학인 희곡이 여전히 창작의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점은 무척 고무적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신춘문예에 정성을 담아 작품을 보내주신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올해 신춘문예에는 동시대의 문제부터 먼 미래를 다룬 SF까지 다양한 소재를 담은 희곡들이 접수되었다. 응모작들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삶과 죽음, 인간성의 의미, 가족과 결혼, 세대 간의 갈등, 직장 내 문제, 고독사, 돈과 자본 등 다양한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소재의 참신함에 비해 깊이 있는 주제를 보여주지 못한 작품들이 많았다.
그리고 응모작 중에 단막희곡의 기본적인 구조를 벗어난 작품들이 많은 것도 아쉬웠다. 단막희곡은 말 그대로 하나의 막을 가진 희곡이다. 그렇기에 단막희곡은 공간의 통일성과 구성의 밀도가 중요하다. 그러나 응모작 중에는 지나치게 많은 장면 전환을 사용하거나 영상 매체의 대본처럼 신(Scene)과 같은 구성으로 쓰여진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 부분은 응모자들도 한 번 고민해 봐야 할 지점으로 보인다.
희곡은 공연을 전제로 한 문학으로 연극과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이다. 이런 관계 때문에 희곡을 대본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엄격히 두 용어는 지향점이 다르다. 희곡은 문학 장르로서 불특정 다수의 독자에게 완결된 이야기로 읽히는 것을 지향한다면 대본은 독자를 연극 작업자로 한정한다. 물론 희곡은 연극의 요소이며 연극 현장에서는 대본으로 불린다. 그러나 처음부터 독자를 연극 작업자로 한정하는 것은 작품의 완성도에 영향을 미친다. 희곡은 텍스트로서 홀로 존재할 수 있지만 대본은 공연이 없이 홀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희곡과 대본의 차이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128편 중 <낯선 인연>, <이사계획>, <공용공간>, <흔들리지마>, <어 보더라인>, <두 번째 기회>가 본심에 올랐다.
<이사계획>은 청약에 당첨된 커플이 이사를 준비하는 일상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후반부에 이사할 곳이 지구가 아닌 행성임을 드러내는 반전이 흥미로웠다. 작가의 독창적인 발상과 위트를 통해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 그러나 행성 이주라는 중요한 정보를 초반에 지나치게 숨긴 탓에 결말이 당혹스럽게 다가올 수 있는 점이 아쉬웠다.
<공용공간>은 한국 사회의 주거 구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동시대적 갈등을 잘 풀어낸 작품이다. 시의성 있는 주제를 흥미롭게 다루었으나 극의 구조는 단막희곡보다는 장막희곡에 더 적합해 보였다. 단막희곡이 갖는 함축성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흔들리지마>는 층간소음과 청년 세대의 문제라는 동시대적 화두를 담아낸 작품으로 현실적인 문제의식을 잘 드러냈다. 그러나 극적 갈등과 사건 없이 대화 중심으로 극이 진행되는 것은 아쉬웠다.
<어 보더라인>은 이성과 감성의 대비를 알레고리로 표현한 작품으로 인물 설정과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뛰어났다. 그러나 이성과 감성의 대비가 이분법적으로 느껴지고 이로 인해 작품이 단선화되는 것은 아쉬웠다.
<두 번째 기회>는 2인극으로 단막희곡의 함축성을 잘 살린 작품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 방향을 잃은 분노의 에너지를 표현한 점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그 분노가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일방적이어서 자칫 세상에 대한 대안 없는 한탄으로 여겨질 우려가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낯선 인연>은 서로 다른 국적과 문화를 가진 두 사람이 기차역에서 짧은 시간 동안 교감하고 소통하며 서로의 아픔을 치유해나가는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대화의 함축과 은유, 생략은 독자로 하여금 상상과 관조를 가능하게 하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특히 단막희곡이 가져야 할 구조와 인물 구축, 관계 설정 그리고 안정적인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돋보였다. 다만 자판기의 존재가 작품에서 특별한 의미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쉬웠다.
심사위원들은 심도 깊은 논의 끝에 본심에 오른 여섯 작품 중 〈낯선 인연〉을 만장일치로 당선작으로 선정했습니다. 당선된 작가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전하며, 앞으로 활발한 창작 활동으로 한국 극문학과 연극계를 이끄는 주역으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또한 한국극작가협회 신춘문예에 응모해 주신 모든 극작가 지망생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여러분의 건필과 도전이 계속되기를 기원합니다.
당선소감 - 김다솔
동생과 함께 삿포로를 여행했던 겨울이었습니다.
철길에 소복이 쌓여가는 눈으로 기차는 자꾸만 연착되었고, 기차의 도착 시간을 알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낯선 사람에게 일본어로 "저기요!"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습니다. 당황하면서도 친절히 시간을 알려주던 일본인의 목소리가 기억납니다. 마주했던 그 순간, 낯선 이들 사이의 다정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현재 농업 공부를 하고 있고, 박사과정 학생입니다. 배고픈 사람이 없도록 하고 싶은 마음에 선택한 전공입니다. 그 마음을 어떻게 실현할지는 느릿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연극하기를 꿈꿨습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누군가와 소중히 나누는 연극이 좋았습니다. 공부하면서도, 연극 또한 지속하고 싶은 마음은 늘 진심이었습니다. 현실에 치여 한가지를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등을 두드려주는 순간이 생깁니다. 덕분에 버틸 수 있는 용기를 얻습니다. 힘이 닿는 곳까지 연극과 공부, 모두 꽉 쥐고 놓지 않으려 노력하겠습니다. 한국극작가협회에서 열어 주신 극작수업을 들으며, 비전공자였던 제가 희곡을 쓰게 되었습니다. 박지선 작가님을 통해 신춘문예에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고, 시놉시스에서 희곡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함께 극을 썼던 수강생분들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뜨겁고 즐거운 24년 여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의 이야기를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구석구석 도움이 닿지 않은 순간이 없습니다. 저를 만들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와 사랑을 보냅니다. 받은 마음 잊지 않고, 따뜻하게 그리고 다정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유난히 춥고, 참 낯선 겨울입니다. 계절이 흘러 곧 봄이 오겠지요. 그때까지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