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셰익스피어 원작 정형석 재구성 '어둠 속의 햄릿'

clint 2025. 1. 14. 14:08

 

 

 

햄릿이 숙부인 클로디어스 왕에게 협력하여 숙부는 80세에 달하기까지 
덴마크를 통치한다. 물론 햄릿도 중년의 나이가 되었고, 
오필리어와의 사이에서 햄릿 주니어가 태어나 그 역시 장성한 청년이 된다. 
왕비인 어머니 거트루드와 오필리어는 호사생활의 극치를 누리며 살고 있다. 

재상 폴로니어스의 아들 레어티스도 무장(武將)으로 나라에 충성을 하면서 
차기 통치권 자리를 넘보고 있다. 햄릿의 절친인 호레이쇼는 선대왕 암살에 
관한 진실을 알고 있기에, 진실은폐라는 정치적 차원에서 감옥에 갇힌 채 
평생을 보내고 있다. 당연히 햄릿과 레어티스 사이에 통치권에 관한 암투가 
전개되고, 레어티스는 선대왕의 비밀을 만천하에 공개하려고, 광대들을 
초청해, 햄릿 선왕이 그의 아우인 클로디우스에게 독살당하는 장면을 
꼭두각시극으로 연출해 내 햄릿이 우유부단하고 기회주의자적인 성격으로 
부친의 복수는커녕 자신의 안일만 유지하려하고, 왕위 계승권자로서의 
자격이 없음을 만천하에 공개하려한다. 
그러나 공연이 끝나자 광대들은 전원 살해당하고 만다. 
당연히 레어티스는 분노를 터뜨리고 햄릿을 비난한다. 
바로 그때 인접국이자 적대국인 노르웨이의 포틴 브라스 2세가 
덴마크를 침공한다. 햄릿이 적군저지에 곧바로 나서지 않고, 우물쭈물하자 
레어티스는 총사령관이 되어 앞장서 노르웨이 군에 맞서 전쟁터로 나간다. 
햄릿의 아들 햄릿 주니어는 일찍이 정치적이나 경제적인 문제보다는 
문학과 예술 쪽에 더 관심을 두고 자라났으나, 부친 햄릿의 강권으로 
무관직을 택했기에, 햄릿과 오필리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에서 
레어티스와 함께 출전한다. 그러나 레어티스와 햄릿 주니어는 전쟁터에서 
전사한다. 다행히 덴마크 군이 승리를 했기에, 햄릿은 레어티스 일파의 
여하한 저지나 방해도 없이 클로디어스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햄릿은 비로소 회의에 빠진다. 자신이 바라고 선택한 희극적 결말이 
어쩌면 비극적 결말보다 더 비극이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어둠 속의 햄릿>은 원작의 비극적 결말을 의도적으로 바꿔 재창작한 극이다. ‘햄릿이 복수 대신 권력을 택한다면 어찌될까..’라는 궁금증에서 시작하게 된 ‘어둠 속의 햄릿’은 현 시대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현실적인 작품이다. 전혀 새로운 햄릿을 만난다. 부조리한 현대사회를 향한 신랄한 비판이자 상실 되가는 인간 본성의 회복을 향한 외침이지만....  아들의 죽음 소식에 ‘2세는 또 가지면 된다’며 자신의 권위상승에 기뻐하고, 꿈속에서 당신 작품의 결말은 너무 비극적이고 나는 희극을 원한다고 셰익스피어에게 소리치는 햄릿의 모습에서 헐벗은 인간의 나약함을 보게 되고 그 모습이 낯설지 않다는 것에 무력감을 느낀다. 권력만을 쫓은 햄릿은 인간다움을 포기하였고 더 비참하게도 스스로 어떠한 삶을 사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재구성및 연출의 글 - 정형석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원전으로 한 이 작품은 햄릿이 선왕의 복수를 하지 않고 권력을 탐하는 인물로 재설정하여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원전에서의 햄릿은 그 자신 앞에 운명처럼 놓인 굴레를 피하지 못해 갈등하고 고뇌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피하고 싶었으나 그럼에도 그 운명을 따라야하는 나약한 인간이다. 이 작품은 햄릿을 도덕과 윤리, 본능과 도리를 벗어 던진, 현대 사회의 부조리한 권력층을 상징하는 인물로 변환시켜 인간으로서의 갈등과 고뇌가 사라진 비인간적인 인간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그리려 한다. 이 공연은 다분히 파격적인 시도를 담고 있다. 무대의 공간 일부 또는 무대 전체를 밝히는 조명을 사용하지 않고 극단적인 스폿 조명으로만 제한적이고 상징적인 부분만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연출이다. 관객은 그로 인해 시각적 관람을 제한 받으나 그 대신 상대적으로 귀로 듣는 대사와 이펙트, 음악 등의 소리에 대한 청각적 집중도는 더 상승하게 될 것이고 오감 및 상상력은 더 발현 될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곧 이 작품이 전하고자하는 메시지, 어둠속에 놓인 햄릿과 어둠속에 놓인 세상, 그리고 역시 어둠속에 놓인 관객을 잇게 하려는 의도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