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재림을 열렬히 믿는 광신도 여인이 남편을 끔찍하게
살해한 사건이 일어난다. 이 여인의 정신 상태를 확인하고
살인동기를 찾아내려는 정신과 의사와의 대화 속에서
여인은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하는 연극을 펼쳐 나간다.
예수가 재림한다는 말에 천차만별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
그 과정에서 벌여지는 잦은 소동과 해프닝이 보여지고
예수의 재림을 방해하려는 기득권 세력들은 결국 예수를 이 땅에서
쫓아내고야 만다는 간단한 내용의 연극을 통해
이 여인은 예수 재림을 방해하는 악의 세력들을 神의 대리자로서
심판해야 한다는 자기논리를 획득하고 자신에게 악마같이 굴었던
남편을 살해한 것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그러나 의사는 신의 대리자인
이 광신도의 모습에서조차 이미 신이 부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신이 이렇게 끝끝내 침묵한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라고 묻는다.
결국 신의 침묵이라는 것은 신 자신이 우리 인간의 사고와 가치와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사이클을 갖고 존재함으로 생기는 것이고
남은 것은 인간들 자신이 “이 세상을 좀더 살만한 곳으로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것이냐, 말것이냐"하는 문제뿐 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은 국내에 이미 여러번 소개된 바 있는 Mtwa, Ngema, Simon 공동 창작 <Woza Albert>를 새로운 시각에서 각색한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Woza Albert>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열악한 인권상황과 인종차별이라는 특수한 조건하에서 예수의 재림을 가정하여 사회변혁에의 의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공연은 이러한 원칙의 메시지를 휴거설과 종말론이 횡행하는 혼돈스러운 이 시대의 神의 문제로 굴절시켜 본 작품이다.
외국 작품을 공연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원작에 충실하게 무대에 재현하는 것과, 부분적으로 각색하는 방법, 그리고 주제의 각도를 달리해서 전면 재구성하는 방법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는 그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의식은 물론 상연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이번처럼 원작의 주제가 특수성을 띨 때 각색은 중요한 자리매김을 갖게 된다. 「일어나라 알버트」는 남아공의 인종 차별 문제를 극대화시킨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벌써 80년대에 여러 번 공연된 바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회적 상황이 군사정권 하에 있었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당대의 모순을 인식하는 우회적인 통로를 마련해 주었다. 따라서 원작의 공로는 대단한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이 작품의 주제는 유효한 면이 많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그 방향을 크게 바꾼다. 관점을 인종 차별 문제에 두지 않고 신과 인간의 구원으로 잡았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요즘 전철을 타고다니다 보면 지하도나 전철 내에서 어깨에 띠를 두르고 손에 성경과 마이크를 들고 '예수를 믿으라'고 외쳐대는 사람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어떤 이는 아예 예수 재림의 날짜를 잡아놓고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과연 어떤 요인이 저들의 거리로 내몰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누구나 갖기 마련일 것이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세기말적 현상일까. 그런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원인은 바로 이 사회에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소외의 문제이며 참된 인간 관계의 상실이다.
한국 자본주의가 점차 공동화되가면서 흔한 말로 모든 가치의 척도가 '돈'(또는 자본)으로 귀결되고 있다. 여기서 인간의 고귀한 가치 마저 돈에 의해 재단되고 점수가 매겨진다. 자본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궁핍한 삶을 살수밖에 없다.
또한 인간 관계를 돈으로 환산하는 부류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당신의 침묵」에 나오는 남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보고 결혼했지만 남자는 여자의 돈을 보고 결혼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성 파괴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번안 재구성의 글 - 김현묵
이 작품의 주인공은 남편으로부터의 소외감을 종교에 귀의함으로써 해소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도피일 뿐이다. 그런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없다. 현실은 언제나 그것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려는 자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이렇게 현대인의 구원문제는 부패한 자본의 논리와 맞물려 있다. 오늘날의 종교가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갖는 것도 그만큼 한국 자본주의의 부패성이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남편의 폭력을 이겨내지 못해 결국 정신이상 상태에서 남편을 도끼로 살해한다. 그리고 아내는 정신병원에서 심리검사를 받게 된다. 우리는 주인공의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현대 사회에서 소외되어가고 기계화되고 있는가를 엿보게 될 것이다.
이렇게 봤을 때 원작의 주제는 거의 배제되어 있다. 그러나 일맥상통하는 면은 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인간 해방의 문제이다. 단지 어디로부터의 해방이냐만이 다를 뿐이다. 각 나라의 문화는 항상 보편성과 특수성을 지니게 마련이다. 특히 연극의 경우 이 두 가지가 잘 조화될수록 명작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 해도 외국작품은 일정한 한계를 지니게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문화의 이질성이다. 따라서 외국작품을 한국에서 공연할 때에는 먼저 그 작품이 당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면밀히 검토해봐야 한다. 이 작업에 참가한 김광림 연출과 두 배우 모두 이런 관점을 지니고 시작을 했다.
원고의 초고는 몇번에 걸쳐 본인이 썼지만 네 사람이 가진 토론과정에서 다시 재수정되었다. 특히 연출을 맡으신 김광림 선생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따라서 「당신의 침묵」은 우리 네 사람을 공동창작극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다른 연극인들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 이제 판은 벌어졌다. 남은 것은 관객들의 판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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