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어느 시골.
차숙이네가 옛날 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 집을 짓고 있다.
집의 기초공사가 마무리 될 무렵 차숙의 큰아들이 기초가 비뚤어진 걸 발견한다.
공사는 중단되고 땅을 바로 잡으려는 와중에 차숙이네 삼남매는
옛날집이 택지가 아닌 농지위에 불법으로 지은 집이었으며
돌아가신 아버지가 군청 몰래 집을 늘려짓고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제 다시 새 집을 반듯하게 고쳐 지으려는데 셋째 딸이 이의를 제기한다.
새 집을 비뚤게 짓자는 것이다. 집에 대한 의미와 가치가 각자 다른 삼남매와
어머니 차숙이는 회의를 하는데....
인물이 아닌 집을 주인공으로 하는 [1동 28번지, 차숙이네]는 삶의 필수 공간인 집을 향해 새로운 시선과 의미를 부여한다.
작품은 3남매를 둔 60대 엄마 이차숙의 집이 지어지는 건축학적인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내는데, 극적인 드라마 구성이나 인간관계의 갈등이 드러나진 않지만 실제 현실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노력과 수고의 시간들을 지켜보게 한다.
무대 위에서는 실제로 배우들이 집을 짓는 모습을 보여주며, 집을 짓는 노동을 배우들이 몸짓과 소리로 표현해 노동에 숨어 있는 리듬감은 볼 수 있다. 또한, 작품은 집을 지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그 속에 숨어 있는 본질과 소요된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 집은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 등의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1동 28번지, 차숙이네]는 집의 진정성을 담아내, 집을 따뜻한 가족의 보금자리에서 벗어나 투자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집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만든다.
<1동 28번지, 차숙이네>(2010)는 최진아에게 대산문학 희곡상, 동아연극상 작품상 등 굵직한 상을 안겨주었다. 일부에서는 신인에게 너무 일찍 큰상을 준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들렸다' 이 작품은 공연이 희곡의 기능성을 다 풀어내지 못했던 다른 경우들과 달리 희곡이 공연(역시 최진아 연출)의 덕을 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만큼 요즘의 경향이기도 한 수행성(퍼포먼스)의 측면을 많이 품은 희곡이기도 하다. 극은 50일 간의, 시골의 한 허름한 집이 지어져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집을 짓는 도중 설계도가 변경되기도 하고 지반이 꺼지기도 하며 급기야 땅 일부의 주인이 따로 나서는 바람에 집은 미완성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최진아가 관객과 함께 나누고자했던 경험은 그러한 극적 사건이나 위기나 갈등이 아니다. 하나의 집이 이렇게 저렇게 지어지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 대한 섬세한 성찰이다. 작가는 반듯한 집 모양새보다는 집안에서 바라보는 산의 풍경이라는 삶의 경험을 중시하며 집을 이루는 모래와 자갈과 물과 바람에 관해 사유한다. '집과 더 친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을 보듬어주는 햇볕'이라 하며 '집이 가장 예쁜 제 모습을 내보이는 것은 완성하기 직전과 허물기 전'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무대에서 허름한 집 한채가 제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직접 지켜보며 관객은 최진아가 차려준 경험과 사유의 장에서 행복감을 함께 한다.
작가 인터뷰 - 최진아
-'차숙이네'는 집에 관한 이야기다. 전세난과 집값 상승으로 집은 더 이상 우리에게 단순한 집이 아니다. 혹시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로 집에 관한 희곡을 쓰게 된 것이 아닌가?
△5년 전 시골에서 집 짓는 것을 봤는데 시멘트 벽 하나에 철근, 거푸집, 레미콘 등 많은 공정이 들어가더라. 집을 만들기까지의 고민과 과정을 보면서 집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집의 재료와 구조, 시간, 느낌을 통해 지금까지 인류와 집의 관계가 다르게 느껴졌다. 집이 저렇게 귀하게 지어졌다는 것을 연극을 통해 보여주면서 지금과는 다른 시선으로 집을 보게 하고 싶었다.
-대본엔 집 짓는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돼 있다. 집 짓는 현장을 경험하고 쓴 건가?
△마침 대학로 작업실 근처에서 새로 극장을 짓고 있었다. 덕분에 두 달 가까이 매일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인부들과 매우 친하게 지냈고, 인부들이 주인보다 더 자주 가는 나에게 더 열심히 설명해 줬다.
-이전 작품 '연애얘기 아님'도 그렇고, '차숙이네'에서도 극 중 캐릭터가 관객에게 직접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연극은 1시간 반 동안 관객과 함께 지내는 과정이다. 어떤 연극은 희로애락과 같은 감정을 나누기도 하고, 갈등상황을 풀어내기도 한다. 이 작품은 그냥 사람 사는 집을 짓는 이야기다. 집이 주인공이다. 얘기하다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 있다면 직접 설명할 수도 있다고 본다.
-'차숙이네'는 서울에서 공연돼 호평을 받았다. 동아연극상과 대산문학상도 수상했다. 시립극단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는 이번 작품은 두 번째인 셈인데, 초연과 재연, 부산시립극단 배우들과의 공연이 어떤 차이가 있나?
△이 작품이 기존 작품처럼 뚜렷한 기승전결이 있지도 않고 특별히 결말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래서 초연 때는 연습과정에서 의심도 많이 가졌다. 초연 때는 의심이 원동력이 되었다면, 지금은 배우들이 작품에 대해 믿고 잘 따라와 준다. 무엇보다도 시립극단 배우들은 감정표현이 좋다, 인물이 갖고 있어야 할 감정의 기복을 잘 표현한다.
-원래 연극 전공도 아니고, 남들이 부러워할 다른 직업도 가졌었다. 본업을 버리고 연극에 빠져든 이유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수준이 내 연극의 수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세상을 잘 봐야 제대로 연극을 만든다. 세상을 잘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하게 만드는 연극의 이러한 점이 좋다. 그의 저력과 진정한 카리스마는 세상을 보는 시선에서 나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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