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주택. 노모를 모시고 둘째아들 수빈, 아내 경숙, 외동딸 주리와 산다.
가장인 수빈과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는 며느리 주경숙의 언성이 높아지며
싸움이 벌어진다. 배경엔 출판사를 운영하는 수빈이 책이 안 팔려 은행대출로
담보로 잡힌 이 집이 넘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노모는 오랜 동안 학교 교편을 잡았던 선생이었고 주관이 뚜렷한 분이다.
슬하에 2남1녀, 큰아들 황빈은 미국으로 이민갔고, 배경엔 드센 며느리가 있다.
남편과 식당을 하는 막내 딸 원빈이 있다. 자주 들락거리는 원빈은 출가외인이란
말로 자기 것만 챙기는 걸 노모는 알고 있다.
어느 날, 은행의 재산압류 통보 전화를 받은 노모는 사태가 급박한 걸 알고
자식들을 모두 부른다. 노모가 직접 미국의 장남에게도 연락했다.
며칠 후 가족들이 전부 모인다.
노모는 수빈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너희들이 대책을 마련해보라고 한다.
3남매는 이런저런 대안을 얘기하나, 수빈을 제외하곤 모두 소극적이다.
그러다가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모시자는 데서 수빈과 싸움이 일어난다.
결국 노모가 개입하려다가 혈압이 올라 쓰러진다.
노모는 병원에 입원하고, 집을 비워야 할 시간은 다가오고,
손녀딸 주리가 병간호를 하고, 경숙은 동생집으로 가있고,
한시적으로 6개월 정도 미국에서 모시겠다는 큰아들,
그러나 노모가 반대한다.
여기에 노모의 애제자이자 집이 가난해 같이 살기도 한 김인숙이 있다.
지금은 금융회사 사장부인이다. 그 인숙이 이 사정을 알고
필요한 돈을 가지고 수빈을 만나나 마음만 받겠다며 거절한다.
결국 노모는 요양원으로 가게 된다.
수빈은 노모의 전화를 받는다.
"네, 어머니, 사랑이 가기 전에 꼭 다시 모여야지요."
<사랑이 가기 전에>는 개인주의. 이기주의· 물신만능주의로 정의되는 우리 시대의 갖가지 부정적인 풍조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회를 이루는 최소 단위로서의 가정과 그 가정을 이루는 가족, 그것의 의미와 존립가치를 묻는 작품이다. 존중하고, 사랑하고, 돌보고, 또 서로 용서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종교가 지향하고 학교가 가르치지만 사회가 그 이상을 실현할 장치로서의 제도를 오히려 짓밟고 전진하는 것처럼 우리의 가정에서도 이미 그 지표는 무시되고 있다. 기회균등이라는 경쟁시대의 공격적인 명제 아래에서 사회는 투쟁하고 개인은 거기 휩쓸려 지치고, 거칠어진다. 현실 속에서 지치고 거칠어진 영혼을 달래줄 사랑의 샘물- 가족은 무엇인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한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가족의 의미를 되묻는 감동과 슬픔이 어울어진 작품이다.
사랑, 잊혀져가는 그이름을 위하여 - 조성현 (극작가)
짧고 덧없는 사람의 일생 에서 최고의 가치로서 우리가 추구하고 존중해야 할 덕목, 그것은 사랑이다. 사랑의 심성이다. 세상의 종교가 대개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알지만, 정작 사랑을 실행하며 살기는 그렇게 쉽지가 않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까지도 이제는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 주기 싫고 덜기 싫어하는 편협한 이기심이 사랑을 막는다. 주지 않으면 사랑이 아닌데, 나누지 않으면 사랑이 아닌데, 사실을 그렇다고 알면서도 사람들은 오히려 그것을 모른 척한다. 안락한 소파에 앉아 실직 노숙자들의 춥고 배고픈 하루살이 정경을 TV로 보면서, 신문화보로 보면서, 와인을 마시고 보석함을 만지작거리는 부자들에게 사랑을 애원하면 들릴까?
이 작품은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다가 연쇄부도에 휘말려 넘어진 한 친구의 가정을 모델로 하여 꾸민 소품이다. "가족은 서로에게 누구인가, 가정은 가족에게 무엇인가?" 잠시 생각하다가 졸속으로 지은 극본이어서 한동안 주저했지만 젊은 연극동지 김순영군의 탄탄한 연출력에 의탁하며 민망함을 무릅썼다. 만약 극평이 좋다면 마땅히 그 칭찬은 연출자와 연기자 여러분, 그리고 제작진의 것이며, 아닐 때, 연극의 모든 허술함은 모두 작가의 역부족으로 지적받아야 한다. 끝으로, 널리 애송되는 시 <사랑이 가기 전에>의 제목을 빌려주신 조병화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1941년 서울생.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졸업.
1969년 동아일보사 장막희곡 공모 <죽은 나무 꽃피우기>, 대한일보 신춘문예 <희화-경범들> 당선. <우리생애의 어느 하오>, <디아스폴라의 생애와 죽음>, <미열>, <회담> 등 장·단막희곡과 수편의 소설, TV 및 라디오 드라마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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