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인배 '횃불'

clint 2024. 12. 3. 08:50

 

 

전태일 굿 어둠 속에서 배우들이 촛불과 전태일의 초상을 들고 입장한다. 
<전태일 추모가>를 부르고 제주가 제문을 읽는다. 
<횃불을 들자> 노래가 웅얼웅얼 고조되면 배우들이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춤춘다. 
돈을 벌러 왔단다 시골에서 올라온 태형과 용호는 돈을 벌기 위해 구로 공단에 온다.
거리에서 성매매 여성을 만나지만 돈이 없다고 핀잔만 듣는다. 
상무가 신체 건강한 노동자들을 구한다. 동생이 아파도 집에 돈을 보낼 수 없고 
집주인에게 방값을 독촉 받는 노동자들의 삶의 풍경. 
작업장의 하루 전체의 구조가 하나의 노래판굿으로 구성된다. 
상무의 독촉과 장구 장단에 맞추어 출근준비, 출근부에 도장 찍기, 생산목표 달성, 
점심 시간, 지쳐 쓰러지는 것을 표현한다. 
임금 좀 올리자는데…… 월급날 잔업. 노동자들이 빠듯한 월급봉투를 받아 들고 
신세타령이다. 잔업이 끝나고 가리봉 시장의 허름한 밥집에서 
임금인상과 노동조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사장님 사장님 돈 욕심 그만 내세요”로 시작되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부른다. 
노동자 역할을 했던 배우들이 역할 바꾸기를 하여 노조를 만들려는 노동자들과 
말도 안 된다며 반대하는 사장과 장관과 관리자를 연기한다. 
노동자들은 분야를 정해 열심히 해보기로 한다.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임금은 생활비는 물론, 최저 생계비의 절반도 
미치지 못한다. 노동자들이 단결해야 임금 투쟁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이들은 노조를 결성한다. 노조는 비타협적으로 나오는 회사측과의 
접전 끝에 임금 인상에 성공한다.

 



<횃불>은 극단 현장의 창단작품이며, 제1회 민족극한마당 참가작이기도 하다. <횃불>은 노동조합이 없는 한 회사에서의 임금인상투쟁을 그린 작품으로, 노동현장에서 축적되어온 노동자적인 표현원리에 입각해서 노동자적인 리얼리티를 성실하게 엮어내고 있다. 전반적으로 의식적 대동놀이 구조에 기반하고 있으며, 스토리의 연결보다는 각 장면마다의 상대적 독립성이 철저히 보장되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1988년 3월 13일에서 17일까지 미리내소극장, 5월 17일에서 31일까지 청파소극장에서 공연되었으며 이후에도 각 대학과 노동현장에서 총 1백여 회 공연되었다. 

 



<횃불>은 노동자들의 생활과 임금인상투쟁에 관한 이야기다. 모두 5장으로 되어 있는데, 1장과 5장은 노동열사를 모시고 보내는 굿으로서 작품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구실을 하고 있으며, 2·3장은 노동자들의 일상생활을 옴니버스식 장면모음과 강강술래, 진풀이 등 민속놀이를 이용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작품의 중심이 되는 것은 4장인데, 4장은 임금인상투쟁을 앞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만든 일종의 교육극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임금교섭 과정이나 임금인상의 논리 등을 역할 바꾸기를 통해 재미있고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작품 전편에 흐르는 일상적인 노동자들의 분위기이다. 2장과 3장에서 취업, 출근길, 작업시간, 식사시간, 오후작업, 잔업 등 노동자들의 일상생활이 간결한 마임(mime)으로 처리되어 있는데, 그 마임들은 간결하면서도 매우 사실적이어서 노동자들의 일상생활과 정서를 왜곡·과장하지 않은 그대로 상업무대의 유료관객들에게 전달하기에 적절하였다. 또한 4장은 상당 부분 노동자들의 촌극들 중 좋은 부분을 골라 엮어 놓은 것이어서 노동자들의 생활·정서 등은 매우 잘 형상화되었다. 이 작품은 미리내극장뿐 아니라 서울·인천·마산 등지의 공단 주변과 사업장 안에서 여러 노동단체나 노조 등의 초청으로 20여 회 공연되었는데, 이들 노동자 관객들이 전문인이 하는 이 공연에 대해서 아무런 벽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고 재미있게 관극했던 것도 바로 이 작품의 정서·분위기·일상생활 묘사가 현재 노동자들의 그것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일상정서·분위기·생활의 모습이 충실히 형상화되었다는 점은 단지 노동자가 아닌 지식인 예술인이 얼마나 노동자와 꼭 같이 흉내내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 작품에서는 노동자들의 정서·분위기 속에서 노동자적인 낙관성·자긍심·건강함·현실성 등이 들어나고 있고, 바로 이러한 것이야말로 노동자들이 세계를 변환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이 노동자적인 생활정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작품을 작품답게 만든 것에는 군더더기 없는 내용 정돈과 스피디한 전개 등이 큰 몫을 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한편 이 작품이 일관된 줄거리를 갖는다든가 인물 간의 갈등이 극적으로 전개된다든가 하는 방식이 아니라 과장별(科場別)로 독립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구체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을 요한다. 즉 연극에서의 구체성 확보는 인물과 인물 간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사실주의적 갈등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체성과 갈등을 담지하고 있는 작은 장면들의 모자이크적 구성 방법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4장에서는 실제 임금인상투쟁에 임하여 노동자들이 필요로 하는 인식, 즉 임금인상 주장의 여러 논리(임금의 개념, 최저임금, 생산성·경영부실, 수출부진 등과 임금인상과의 관계 등)를 쉽고 재미있게 보여주어, 극적 구체성 보다는 교술적(敎述的) 구체성이 강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극적 전개를 요하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엉성하게 처리된 감도 없지 않다. 따라서 앞부분에서 확보된 노동자적 낙관성·자긍심이 뒤의 엉성한 마무리 때문에 그 깊이나 폭이 깎이고 상대적으로 얕아져 버린 것이 아쉽다. (……) 이영미, <창작과 비평> 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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