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이희준 재창작 '줄리엣을 위한 바이올린 소곡'

clint 2024. 11. 29. 09:54

 

 

로미오는 독약을 마시고 죽어가며 줄리엣에게 자신의 목걸이를 걸어준다.
뒤늦게 깨어나 자살하는 줄리엣. 
이때 로말도와 로메리아(로미오의 이복형과 형수)가 들이닥쳐 
죽은 로미오의 옷을 뒤져 목걸이를 찾는다.
죽은 이들이 모여있는 여러 별들 중 하나. 
이사도라 덩컨과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머물고, 늙은 천사가 이들을 관리한다.
알버트는 바이올린을 이용해 시간을 되돌리는 실험을 하고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도착하는데, 로미오가 줄리엣을 기억하지 못한다.
자살할 때 먹은 약이 너무 독했던 것이다!
이사도라는 로미오를 춤 파트너로 점찍는다.
로말도와 로메리아는 로렌스 신부를 협박해 줄리엣이 먹었던 약
(48시간 동안 가사상태에 빠지는)을 얻어먹고 이곳까지 로미오를 쫓아온다.
이들은 목걸이를 어디에 두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로미오를 압박하지만, 
로미오는 자신이 누군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이때, '로미오는 독약에 취해 가사상태에 빠져 있으며 곧 살아나 
지상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줄리엣은 상심에 빠지고, 로말도와 로메리아는 다급해진다.
목걸이에 새겨진 문구를 알아내, 로미오보다 빨리 돌아가 
유산을 상속받아야 하는 것이다.
줄리엣은 이사도라에게 춤으로 로미오의 기억을 깨워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춤에 사로잡힌 로미오는 이사도라에게 키스해 버리고,
줄리엣은 홧김에 로미오의 목걸이를 이사도라에게 줘버린다.
줄리엣은 사랑을 되찾기 위해, 로말도와 로메리아는 목걸이를 찾기 위해 
로미오의 기억을 되살리기로 의기투합하나 계속 실패한다.

 



로미오 송별 파티. 이때 알버트가 부족했던 부품을 장착해 실험에 성공했다며
바이올린을 들고 나타난다. 바이올린에 박혀있는 목걸이!
로말도와 로메리아는 목걸이의 문구를 확인하고 서둘러 사라진다.
바이올린 연주에 맞춰 로미오와 줄리엣은 춤추기 시작하고, 
시간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로미오의 기억이 되살아나자 
이제는 다시 이별할 시간이다.
지상으로 내려가는 로미오에게 천사가 거래를 제안한다.
사랑의 기억을 자신에게 준다면 줄리엣에게 돌아가게 해주겠다는 것.
줄리엣에 대한 기억을 포기하고 줄리엣에게 돌아갈 것인가,
기억을 간직하고 지상으로 돌아갈 것인가...
로미오는 기억을 포기하고 줄리엣 곁으로 돌아간다.
기억을 잃은 로미오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줄리엣.
기억을 훔친다고 사랑을 알 수 있는 게 아님을 깨달은 천사는
로미오의 기억을 돌려준다.
이때, 로말도와 로메리아가 황당한 표정으로 비틀거리며 나타난다 
알고 보니, 눈이 나쁜 로렌스 신부가 실수로 그들에게 가사약이 
아닌 진짜 독약을 주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 다음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재해석 또는 
재구성하자는 것이 아니다. 전혀 다른 톤의 전혀 다른 이야기다.
너무나 '유명한' 연인의, 안타깝고도 '유명한' 죽음을 스프링보드 삼아
새로운 줄거리로, 새로운 상상의 세계로 튕겨나가는 것이다.
거기에 역사 속 실재인물들과, 원작에는 없는 로미오의 이복형과 형수가 
광대로 등장한다. 이른바 <그래서 그 후 그들은...>이라는 설정에서 출발하는 
코미디이다. 죽을 때 마신 독약 때문에 기억을 잃은 로미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로미오를 애타게 바라보는 줄리엣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사후의 한 바탕 소동.
천국도 지옥도 아닌 사후세계에서 저마다의 욕망으로 얼키고 설키는 
인간들의 모습! - 무한시간의 세계인 사후 세계에 '48시간'이라는 
조건부 상황이 발생하면서 이들의 갈등은 더한층 달아오른다.
절박하기에 더욱 우스꽝스러운 슬랩스틱 코미디 안에,
젊은 연인의 순수한 사랑이 마침내 꽃을 피우는 모습을 아름답게 그린다.
그들의 사랑이 깨끗한 눈처럼 내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다시 죽음에 대하여 - 작가 이희준
여전히 삶에 자신이 없다.
게다가, 죽음이라는 문을 언젠가 한 번은 지나야 하다니!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플 때, 만사 꼴보기 싫어질 때,
또는, 자연을 상대로 한 인간의 장난질이 도를 넘는 걸 볼 땐
'죽음이란 게 있어서 그나마 다행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두통이 심하던 날,
문득, 세 개의 '유명한' 죽음을 가방에 쑤셔 넣고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뛰어? 어디로? XXX 초기 증상? 설마... 그래서... 뜨레플레프의 죽음을 놓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으려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소동을 그려본 것이
<박제갈매기>였다. 이번엔,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을 놓고,
죽음이라는 문 저편의 소동을 그려 보았다.
하나 남았다. 그거 쓰고 나면 두통이 가실까.
여전히 삶에 자신이 없다. 
하긴, 죽음을 문으로 보는 건 구차한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공포. 어떻든, 문 밖의 세상을 전제하는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