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니콜라이 예브레이노프 '즐거운 죽음'

clint 2024. 12. 2. 06:03

 

 

 

작가의 이름으로 단 몇 개의 결정적인 언급과

프롤로그로 이루어진 크지 않은 1막의 해학극이다.
극이 시작되면 삐에로가 친구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과 극중 시간을 좀 당겨서

전 상황을 알아야 한다며 관객에게 설명한다.

그러면서 멀쩡한 친구같은 아를레낀이 일어나고

의사와의 진료와 상황이 재미있게 전개된다.

임종이 몇 시간 남지 않은걸 환자한테는 알리지 않고 삐에로한테 설명하는 의사

그런 의사는 진료비를 달라고 하여 받으나 그걸 환자는 충고비 조로 회수한다.

삐에르의 부인인 깔람비나는 남편과의 불화로 아를레낀과 연인사이이고

남편인 삐에로는 얼마 남지 않은 친구를 위해 묵인한다.

다소 침묵과 무관심으로 복수하는 설정이다.

환자인 친구는 죽는 시간 전까지 즐겁게 즐기며 죽음의 춤까지 추며

마지막 기력을 소진한다.

죽음의 사자가 등장한다. 여자이다..

결국 삐에로는 친구도 잃고 부인도 잃고

뭐 이런 연극이 있냐고 작가를 나무라며 막이 내린다..

 

 


1908년에 쓰고 공연된 초기 대표작으로 분류되는 이 작품은 작가의 독창적인 연극관이 스며들어있는 작품으로 분류된다. 마치 중세 코메디아델아르떼의 소극과 현대극을 믹스시킨 것 같은 작품구성이며 재미 있는 소극외에 뭔가의 철학과 연극 표현방식이 사실주의나 자연주의 연극이 대부분인 그 당시엔 파격적인 것으로 당시엔 전위연극이라고 불리울 정도 였단다. 자신이 주창했던 '삶의 연극화'의 한 부분을 느낄수도 있다.. 그리고 죽어가는 친구 아를레낀을 통하여 작가의 대변인인 것 같은 자신의 얘기를 말한다.. 죽음도 삶의 일 부분이다 그리고 즐겁게 생을 살며 웃으며 가자라는 그의 철학이 중세 연극 현식과 현대기법과 어우러져 재미를 더해준다. '아름다운 독재자'에서도 마지막에 현실세계와는 멀어지는 과거로의 춤이 벌어지는데 역시 카르페디엠이다.

이 단막극 「즐거운 죽음」은 예브레이노프의 연극관을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가장 연극적인 연극양식으로 여겨졌던 꼬메디아 델 아르떼 형식으로 연극성을 실현하고 있으며, 삶의 연극화를 통한 죽음의 극복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연극관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연극성을 보여주고 삶의 연극화를 실현하는 것은 코메디아 델아르떼의 주인공이자 예브레이노프 자신의 연극적 분신인 아를레킨이다.

 

 

 

 

스타니슬라프스키, 메이에르홀트 등 기라성 같은 동시대 연출가들에 가려져 국내에는 거의 소개된 바 없는 러시아의 연출가이자 극작가 니콜라이 예브레이노프 (Evreinov : 1879~ 1953)의 연극론은 언제 읽어도 흥미롭고 도발적이며, 또 애잔하다. 흔히 '삶의 연극화'라는 테제로 요약되는 그의 연극론은,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인생론이다. '연극이라는 마약에 중독된 아편쟁이'라 불리던 이 기이한 연출가는 1913년에 출간한 연극이론서 '극장 그 자체'를 필두로 러시아혁명 전후에 집필한 수많은 저서들을 통해 '삶의 연극화' '삶 속의 극장' '자신을 위한 극장' '연극으로서의 삶' 등 어찌 보면 동어반복처럼 보이는 개념들을 쏟아냈다. 세계 연극사와 러시아 연극사뿐 아니라 심리학, 생리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는 현란한 수사로 풀어낸 그의 연극론은 이 비속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말고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연극화하라!'라는 정언명령으로 수렴되었다. 
예브레이노프 연극론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연극성은 '미학'의 문제가 아니라 변형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인간 '본능'의 문제, 즉 인간 삶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의 문제였다. 이러한 가설 위에 그는 '자신을 위한 극장'을 세우고 '연극'이 인생의 메타포를 넘어 실존의 또 다른 이름이 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출구 없는 현실의 고통과 맞서 싸울 유일한 방편으로 삶을 연극화하기를 원했고, 무엇보다 자신의 삶으로 그러한 철학을 살아냈다. 그의 극작과 연출작, 20여 권에 달하는 연극이론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삶 자체는 방울 소리를 울리는 왁자지껄한 한 편의 퍼포먼스였다. 그의 연극론에서 풍기는 유사종교적인 색채 역시 실존을 걸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는 그의 연극론의 존재론적인 속성에서 비롯된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죽음마저도 ‘삶의 연극'의 화려한 피날레가 되기를 갈망했던 이 열정적인 연극인의 비극적인 인생사와 쓸쓸한 죽음을 생각하면 자신의 실존을 담보하여 쓴 그의 연극론은 어딘지 애틋하게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