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타마르 반 덴 도프 '블라인드'

clint 2024. 12. 1. 07:33

 

 

하얀 눈으로 뒤덮인 마을의 거대한 저택. 얼굴이 온통 흉터로 뒤덮인 마리가

시력을 잃어 앞을 보지 못하는 귀공자 루벤을 돌보기 위해 고용된다.

촉각을 통해서만 세상을 느낄 수 있는 남자와 누군가가 자신의 얼굴을 만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여자의 아이러니한 만남은 곧 시리도록 아름다운 사랑으로 발전하고,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의 아름다운 이미지가 그들의 슬픈 사랑과 함께 변주된다.
그러나 새로운 의술이 발견되고 루벤이 시력 회복 수술을 받기로 하자,

그가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되는 것을 두려워 한 마리는 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가의

고통스러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사회에서 ‘장애’라 이름 하는

육체적인 조건들로 인해 자아를 초월하는 깊은 사랑을 발견해낸

그들만의 공간이 근대 과학의 침입으로 위기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러나 루벤은 시각이 우위를 선점하는 이성의 세계가

그들의 환상적인 공간을 파괴하도록 방관하지 않는다.

마리를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생각하는 루벤과 그에게 아름다운 것만 보여주고 싶다는

엄마의 말은 비수가 되어 결국 마리를 떠나게 만든다. 

 

 

 

 

연극 '블라인드'는 동명의 네덜란드 영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영화는 국내 미개봉작이지만 제32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제1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등

국내외 영화제를 통해 소개돼 높은 평점을 받으며 마니아들 사이에서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

<눈의 여왕>을 작품 속 텍스트로 인용하면서 이 작품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박힌 ‘악마의 거울 조각’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인 루벤과 마리의 세계를 창조하고,

그것을 다시 시각화 해내는데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

작품 속에 내재하는 이런 모순이 이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루벤이 느끼는 것처럼 시각보다는 청각과 촉각 등 다른 감각을 더욱 강조한다.

미세한 손끝 떨림과 동공의 움직임 등 움직임 지도로 한층 사실적인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로 구성된 라이브 연주는 그들의 감정을 표출한다.

대사가 많이 없는 정적인 작품임에도 극적인 감동과 몰입도를 전한다.

작품은 시각을 잃고 스스로를 어둠 속에 가두어 버린 청년 '루벤'이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여자 '마리'를 통해 세상을 알게 되고,

진정한 교감을 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여기에 아들이 상처로 가득한 여자에게

마음을 주는 것을 원치 않는 엄마 '여인'을 통해 극에 갈등과 긴장감을 더한다. 

극중 마리가 루벤에게 읽어주는 책인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은

진실한 사랑의 위대함을 이야기한다. 이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소중함과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타마르 반 덴 도프 (Tamar van den DOP)

네덜란드. 여성 연출가. 마스트리히트의 연극 학교 졸업.

〈Wolfsbergen>(2007) 등의 TV 시리즈에서 배우로서 출연, 여러 연극 기획사와 함께 연극 작업을 하기도 했다. 단편영화 〈Lot>(2002)과 〈Schat>(2004)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특히 〈Lot>은 2003년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서 최우수 단편영화에게 주어지는 골든 게이트상 등을 수상했다.<블라인드 Blind>는 그녀의 장편 데뷔작이다.